여행과 인생/티벳여행기

티벳인의 영원한 자랑, 불교사원 (티벳여행기 5)

박찬운 교수 2019. 7. 11. 05:06

티벳은 불교의 나라니 그곳 명소는 의당 불교사원이다. 이번 여행도 자연스레 불교사원을 둘러보는 것이 중심이었다. 라사에서는 조캉사원을 비롯해 세라사원을 보았고, 우정공로를 따라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장체에서 펠코르 체대를, 시가체에서 타쉬룬포를 보았다. 이번 여행에서 아쉬운 것은 1409년 겔룩파의 창시자 쫑가파에 의해 세워진 겔룩파 제1의 사원 간덴사원과 티벳불교의 우주관을 입체적으로 재현함으로써 입체 만다라'라고 불리는 사뮈에 사원을 못 본 것이다. 어쩐 일인지 H 여행사 일정엔 이 두 개의 사원이 포함되지 않았다. 현지 가이드에게 그것들을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일반 여행사 일정으론 어렵고, 굳이 보려면 불교 성지를 전문으로 하는 여행사 프로그램으로 와야 할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과연 그것들을 언젠가 한 번 볼 수 있을까...

한 가지 티벳사원을 방문하기 전에 사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지금 티벳불교는 과거의 모습을 잃은 지 오래되었다는 사실이다. 1959년 달라이 라마가 망명을 단행하고 1965년부터 중국 당국이 티벳을 서장자치구로 편입하였으며 1970년대엔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티벳의 불교는 대부분 파괴되었다. 사원과 귀족의 영향 하에 있던 사회경제구조는 농민조합을 중심으로 한 집단체제로 바뀌었다. 수많은 사원이 폐쇄되거나 문을 닫았고 승려들은 피신하거나 투옥되었다. 한 때 수 만 명의 승려가 거리를 활보했지만 지금은 사원 근처에서 소수의 승려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들의 경제 사회적 수준은 과거에 비해 매우 낮다.

현재 티벳에 남은 불교사원은 중국 당국이 티벳의 자치를 인정한다는 전시효과에 불과하다. 중국 당국이 티벳을 중국화해 나간다면 그마저 명맥을 이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몇 개 남은 사원은 완전히 내지 중국인과 외국인을 위한 관광용 사원으로 전락할지 모른다. 지금 우린 이런 한계와 우려 속에서 티벳의 불교사원에 들어가 티벳의 과거 번성했던 불교를 체험하는 것이다.

 

조캉사원은 7세기 창건 이후 수세기 동안 보수 중건되었으므로 여러 양식이 복합되어 있다. 당나라, 인도, 네팔의 영향을 받았다.

 

 

티벳인의 영원한 고향, 조캉사원

티벳불교 사원 중 으뜸의 지위에 있는 사원. 송첸감포가 7세기 불교를 들여오면서 바로 이 사원 건립을 시작했다. 티벳불교는 바로 이 사원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곳은 1409년 티벳불교 최대의 분파인 겔룩파 창시자 쫑카파가 새로운 불교운동을 시작한 그곳이다. 티벳불교는 현교와 밀교를 융합한 겔룩파가 탄생함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걷는다. 바로 이 분파에서 달라이 라마(달라이 라마는 몽골어에서 연원한 것으로 ‘바다와 같은 지혜를 가진 스승’이라는 뜻임)가 나왔고 16세기 이후 티벳의 정치와 신앙을 지배했다.

 

조캉사원 앞 광장과 사원 앞에서 오체투지로 불공을 드리는 티벳인들

 

그러므로 티벳인들은 이곳 사원에서 와서 불공을 드리는 것이 일생의 꿈이다. 아이를 낳아도, 젊은이들이 결혼을 해도, 사람이 죽어도 이곳에 와 온 마음으로 모아 절을 한다. 라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이곳을 오체투지의 방법으로 순례하기 시작했다. 몇 십 킬로 멀게는 몇 백 킬로미터가 떨어진 곳에서 몇 달 아니 몇 십 년을 이 방법으로 이 사원까지 온다. 이렇게 원거리에서 오는 이들은 바쁜 농번기엔 집으로 돌아갔다가 추수가 끝나면 다시 원위치로 돌아와 오체투지를 계속한다.

 

오체투지로 조캉사원에 도착한 여인을 발견하고 계속 관찰했다. 이 중년의 여인은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이 순례에 참여했을 것다. 이제 종착역에 도착했으니 그 기쁨이야말로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우리 일행은 아침 일찍 조캉사원에 도착했다. 벌써 수많은 사람들이 사원에 도착해 사원 앞은 장사진이다. 수 백명 티벳인들이 사원 앞에서 오체투지의 방식으로 절을 한다. 한쪽을 보니 아침에 드디어 오체투지의 방법으로 수십일 아니 수백일이 걸렸을 순례자가 도착하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그 중 한 여인을 유심히 살폈다. 중년의 여인이다. 일어선 채 세발자국을 띈 다음 온 몸을 엎드려 절을 한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세 발을 걸어간 다음 절을 한다. 눈을 보았다. 이슬이 맺혀 있다. 드디어 약속을 지켰다는 것일까, 인생의 최대 목표를 이루었다는 기쁨의 눈물일까...

 

조캉사원을 중심에 두고 그 주변 거리를 바코르 광장이라고 한다. 많은 상가와 찻집 등이 밀집되어 있다. 여기가 라사의 진정한 올드 타운이다.

 

조캉사원은 1300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한 목조건물로 보존도 탁월하다. 17세기 달라이 라마 5세 때 확장된 이 사원은 문화혁명 과정에서 상당히 피해를 입었지만 그 후 거의 완전히 복원되었다. 송첸감포의 부인이 된 당의 문성공주가 가져온 석가모니 불상이 본전에 모셔져 있다. 이곳의 양식을 찬찬히 보면 중국, 인도, 네팔 등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세라사원 내 토론의 광장에서 문답을 주고 받는 승려들

 

세라사원

라사의 중심지에서 북쪽으로 8킬로미터 떨어진 산기슭에 위치한다. 나는 이 사원을 멀리서 보는 순간 어디서 많이 본 듯 한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이집트 룩소르에 본 하트셉투스 장제전이다. 룩소르 서안의 산기슭이 바로 세라 사원 뒷산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 사원은 겔룩파의 승가대학인 셈인데, 오후 3시 경에 이곳에 가면 매우 흥미로운 광경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공부하는 학승들이 사원의 한 곳에 모여 토론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다. 백 여 명의 승려들이 모여서 왁자지껄하면서 때때로 손뼉을 치고 말하고 답한다.

 

 

펠코르 체데 전경(위)과 이 사원에서 가장 유명한 쿰붐 불탑 

 

 

펠코르 체대

암드록쵸에서 우정공로를 타고 서쪽으로 두어 시간을 달리면 티벳 제3의 도시 장체에 닿는다. 이곳에는 펠코르 체데(한어로는 白居寺)라고 하는 사원이 있다. 이 사원은 15세기 건립된 것으로 처음부터 특정한 종파와 관계없이 종합불교연구센터적인 사원으로 출발했다. 여기에서 특별히 중요한 건축물은 대법당 옆의 흰색의 스투파 곧 불탑이다. 티벳에서 가장 규모가 큰 불탑이다. 이 불탑은 ‘십만불상’이란 뜻의 티벳어 ‘쿰붐’인데, 층층의 불탑 사면에 작은 감실을 만들어 불상을 모시고 있다. 이 쿰붐은 실크로드 상의 석굴(예컨대 둔황의 막고굴)에 비견된다고 할 수 있다. 석굴은 사암 절벽에 수십 혹은 수백 개의 굴을 파고 거기에 불상을 모신 것인데, 쿰붐은 탑에 수십 혹은 수백의 감실을 만든 것이다. 감실 내에는 불상뿐만 아니라 만다라를 표현한 벽화가 그득하다.

 

 

타쉬룬포 사원의 이곳 저곳

 

 

타쉬룬포 사원

장체에서 우정공로를 타고 서쪽으로 두어 시간 달리면 티벳 제2의 도시 시가체에 닿는다. 여기에 판첸라마가 사는 사원 타쉬룬포가 있다. 이 사원은 15세기 티벳불교 최대분파인 겔룩파에 의해 건립되었다. 이 사원이 특히 유명한 이유는 이곳 승원장이 티벳불교 제2인자인 판첸라마의 지위에 오르기 때문이다. 판첸라마는 달라이 라마 5세 때 타쉬룬포 승원장에게 그 지위를 줌으로써 시작되었다. 이 사원에서 유명한 건축물은 역대 판첸라마의 영묘탑이다.

(5편 끝/2019. 7.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