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티벳여행기

위기의 티벳, 과연 그 미래는 무엇일까(티벳여행기3)

박찬운 교수 2019. 7. 8. 05:03

라사공항에 도착해 밖으로 나가니 무장경찰이 시위를 하고 있다. 근접 촬영을 하고자 했으나 큰 일 날 것 같아 ㅎㅎ 뒤에서 몰래 한 장만 찍고 말았다.

이제 티벳은 더 이상 은둔의 세계, 미지의 세계, 불국토의 나라가 아니다. 1949년 중국 공산당이 중국을 통일한 다음, 중국과 티벳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바뀌었다. 티벳에 대한 중국의 종주권은 역사적으로 길지만 그것은 매우 특수한 관계이었다. 역사적으로 중국은 티벳을 직접적으로 통치하지 않았다.

중국은 티벳의 정치세력과 종교를 존중했고 오히려 티벳불교의 지혜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원나라 쿠빌라이는 티벳 고승 파스파를 스승으로 삼았고 그의 영향 하에 티벳문자와 유사한 몽골문자를 만들었다. 청나라도 마찬가지였다. 청은 달라이 라마가 티벳을 통치하는 것을 인정했고 그에 대해 특별한 예우를 제공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보면 청의 건륭제가 티벳불교에 대해 어떤 대우를 했는지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조선의 건륭제 70세 축하 사절단이 열하에 도착했을 때 건륭제는 조선의 사신들로 하여금 당시 열하에 머물던 판첸라마 6세(참고로 판첸라마는 달라이 라마 다음 권위를 갖는 종교지도자)에게 고두례의 예를 하라고 명한다. 이에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 온 사절단은 일대 혼란에 빠진다. 아니 어떻게 유교의 나라에서 온 선비들이 중에게 절을 한다는 말인가! 박지원은 사신들이 고두례를 하지 않고 적당히 판첸라마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쓴 바 있다(그러나 최근 연구에 의하면 박지원의 이 이야기는 거짓말일 가능성이 크다고 함).

조캉사원 광장, 한 가운데를 보면 무장경찰이 시위를 하고 있다. 건물 옥상엔 여기저기에 무장경찰이 올라가 있어 사원에 온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다.

여하간 티벳은 현 중국이 티벳을 직접 통치하기 전까지는 사실상 독립국이었다. 그런데 이 티벳이 중국혁명 후 완전히 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티벳을 침공해 중국령화 했으며 티벳인들에게 중국화의 길을 강요해 왔다. 티벳을 다스리던 달라이 라마(14)는 이를 거부하고 1959년 인도로 망명해 히말라야 기슭 다람살라에서 망명정부를 세웠다. 그리고 중국은 1965년부터 서장자치구를 만들어 이곳에 티벳을 넣어 직접 통치하기 시작한다.

그로부터 6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티벳의 면모는 완전 일신했다. 이제 라사에 도착하면 과거의 라사를 찾기 어렵다. 포탈라 궁과 몇 개의 사원이 티벳의 과거를 말할 뿐이다.

시안에서 라사공항에 도착한 후 밖으로 나가자 우리를 응시하는 사람이 있었다. 중국의 무장경찰이다. 장갑차를 공항 앞에 대고 선글라스를 쓴 경찰관은 자동소총을 맨 채 우리들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시내로 들어가자 곳곳에 중국 정부기관과 중국인민해방군 부대 사령부 건물이 나타난다.

가이드는 일성으로 이곳에서 조심할 일 하나를 알려준다. 관공서나 군대 건물은 절대 사진 찍지 말라고. 만일 그것이 발견되면 득달 같이 무장경찰관이 달려들어 사진기를 뺏는다고 한다. 심지어는 요즘 라사에 불고 있는 개발열풍에 대해 티벳인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는 정도의 질문에도 난감해 한다. 우리를 태운 버스에 6개의 CCTV가 달려 있다는 말로 대답에 갈음한다.

포탈라 궁과 그 앞 광장에 있는 화평기념비 그리고 중국최고지도자의 대형사진

라사의 어느 사원을 가도 그 문 앞은 무장경찰관이 지키고 있다. 아마 테러를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무력시위일 것이다. 조캉사원의 경우 사원으로 들어가는 길목마다 바리케이드가 설치되어 있고 무장경관 초소가 있다. 사원 바로 앞 광장엔 무장경찰관의 수가 더 많다. 심지어는 사원과 인근 건물 옥상에도 경비병들이 올라가 있다. 마치 저격병들을 보는 듯하다. 과연 라사는 경찰국가가 무엇인지 웅변적으로 말해 주는 도시다.

로밍폰을 켜 인터넷을 시도해 보았다. 속도는 좀 느리지만 안 되는 게 아니다. 다행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간 내가 잘 들어가는 앱을 몇 개 눌러보자 되는 게 없다. 듣던 대로 구글도 안 되고 페이스북도 안 된다. 우리나라의 카톡도 되다 말다를 반복한다. 네이버도 다음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인터넷 강국과 4차 산업혁명 운운하는 중국의 현실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냥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순 없다. 서울을 떠나기 전에 다운로드한 우회 앱을 작동시켰다. 성공이다! 중국 땅에서도 페북도 카톡도 할 수 있다! 아마도 나 같은 중국인들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나는 티벳인들이 자신들의 전통 그중에서도 불교를 수호하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장면을 보았다. 그것은 조캉사원에서 수많은 티벳인들이 오체투지를 하면서 전국에서 모여드는 그 현장을 보았을 때다. 그들은 중국 중앙정부의 정책이 무엇이든 구애되지 않고 사원에 모여든다. 그 속에 들어와 절하고 작은 돈이지만 아낌없이 내고 두 손을 모은다.

조캉사원 앞에서 오체투지를 하고 있는 티벳인들, 중국당국의 공안통치가 아무리 거세다 하더라도 저들의 저 신앙만큼은 어찌하기 힘들 것이다.

뿐만 아니다. 이젠 그들에게도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무기가 있다. 바로 스마트 폰이다. 오체투지를 하는 무지랭이 같은 티벳인들의 손에도 스마트폰은 들려 있다. 조캉사원 앞에서 쉼없이 오체투지를 하면서 기도하는 사람들 상당수에게서 나는 스마트폰을 발견하고 저것이 티벳의 앞날을 바꿀 것이고 예언했다. 중국당국의 엄혹한 통제도 저것은 다른 길을 알려 줄 것이라고...

조캉사원 앞에서 오체투지를 하는 한 티벳인의 깔판 위에 놓인 스마트폰, 이제 그들에게도 저것이 무기다.

중국 중앙정부도 티벳의 전통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포탈라 궁 앞의 라사 중앙광장엔 중국정부가 세운 거대한 서장화평비가 포탈라궁을 바라보고 있다. 그 양옆엔 중국 역대 최고 지도자-모택동, 등소평, 강택민, 후진타오, 시진핑-의 대형사진이 광장의 시민을 맞고 있다. 한쪽엔 이미 지나간 정권, 그렇지만 티벳 인민들의 마음을 지배하는 달라이 라마의 궁전, 또 한쪽은 현실의 정권, 경찰국가를 만들어 티벳인들을 옥죄고 있는 중국. 이 둘이 팽팽히 기 싸움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

다만 급격히 변모하는 티벳의 사정을 생각하면 앞으로 10년 후 20년 후의 티벳을 그리기 어렵지 않다. 과연 이대로 티벳은 중국화의 길을 걸어갈 것인가. 과연 티벳인들이 이 티벳 땅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살 길은 없을까. 여행을 하면서 계속된 의문이었다(3편 끝/2019. 7.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