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티벳여행기

불국토 티벳은 어떤 곳인가(티벳여행기2)

박찬운 교수 2019. 7. 8. 04:32

 

티벳은 인도, 네팔, 부탄과 바로 붙어 있다.

 

티벳은 세계 역사상 매우 독특한 지리적 위치에서 역사를 일구어 왔다. 마야문명이나 잉카문명은 세계의 주류문명과 완전히 절연한 상태에서 15세기 이후 서구문명과 맞닥뜨렸다. 그들 문명은 서구인들에 의해 발견(?)되기 전까지는, 동서양의 문명교류가 전혀 없었다. 그들은 고립 속에서 스스로 문명을 발전시켰지만 결국 타 문명에 의해 정복되었다.

반면 티벳은 주변에 주요 문명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남으론 인도문명이, 북으론 중국문명이 있었다. 따라서 티벳은 언젠가는 인도나 중국의 영향을 받을 운명에 처해 있었다. 문제는 세계의 지붕이라고 불린 이 산악지방에 어떻게 이들 문명이 다가갈 수 있느냐이었다.

오늘 날 티벳은 대부분의 영역이 중국령으로 행정구역은 시짱(서장)자치구에 속한다. 면적은 우리 한반도의 5배, 실로 광대한 땅이다. 그럼에도 인구는 고작 3-4백만 명. 15억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이라고는 하기에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다.

지리학적으로 티벳과 그 주변엔 세계 최고봉의 고봉준령이 즐비하게 자리 잡고 있다. 라사를 기준으로 남쪽은 히말라야 산맥이, 서쪽으론 카라코람 산맥이, 북쪽으론 쿤룬산맥이, 동북쪽으론 칭하이, 동남쪽으론 위난 등 중국 최고(最高)의 산악지역이 이어진다.

나는 사실 티벳에 오기 전까진 이곳이 인도나 네팔에서 그렇게 가까울 줄 미처 몰랐다. 그런데 와보니 과연 이곳과 인도, 네팔, 부탄 등은 말 그대로 지척이다. 라사에서 차를 몰고 몇 시간만 가면 바로 부탄이나 인도국경에 닿는다. 우정공로라 불리는 국도를 따라 하루쯤 가면 네팔의 카두만두에 닿는다.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도 그 길목에 있다.

이곳은 중국 본토보다 이들 국가가 훨씬 가깝다. 그러니 티벳은 운명적으로 이들 국가들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다만 이들 국가와는 히말라야라는 거대한 산맥에 의해 가로막혀 있어 교류를 위해서는 수  천 년을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었고,  그 막힘이 뚫릴 때 티벳의 역사는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티벳의 산하, 어딜 가도 민둥산이 있을 뿐이다.

 

티벳은 사람들이 살기엔 너무나 척박하다. 산엔 나무 하나 없는 민둥산이 끝없이 동서남북으로 이어진다. 감히 누가 이곳에 오려고 했겠는가. 감히 누가 이곳을 정복해 정복자의 이름을 남기려 했겠는가. 그것이 티벳 역사에서 전쟁의 그림자가 크게 남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티벳 주변의 주요 문명이 티벳에 도달하는 데에는 실로 긴 시간이 필요했다. 불교가 대략 인도에서 기원전 6세기에 발흥했음에도 티벳에 이것이 도착한 것은 1천년이 지난 시점이다. 중국에 비해 300년이 늦다. 중국도 파미르 고원과 타클라마칸이라는 지리적 장애물 때문에 타문명과 교류를 위해서는 오랜 시간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었으나, 티벳에 앞서 기원 전후 실크로드가 개척됨에 따라, 동서양의 문명교류가 시작되었고, 불교가 들어왔다.

오랜 세월 문명세계와 단절되었지만 티벳은 자연에 순응한 산악유목민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일구고 사는 삶의 터전이었다. 이들은 주로 티벳고원에서도 저지대라고 할 수 있는 남쪽 얄룽짱뽀 강 유역에서 살았다. 제 1의 도시 라싸, 제2의 도시 시가쩨가 모두 그 강 유역이다. 이들이 역사의 전면에 나선 것은 기록에 의하면 중국의 당나라 때다. 이곳 고원엔 토번이란 세력이 고원 일대를 대표하는 정치세력으로 부상하면서 송첸감포((미상-649)라는 걸출한 왕을 배출한다.

 

송첸감포(미상-649)

 

송첸감포는 티벳고원을 통일하고, 당과 인도로부터 선진문물을 수입해, 왕국을 일신해 실질적인 토번왕국의 창업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당의 공주 문성공주를 비롯 네팔공주와 정략결혼을 해, 주변 강국을 동맹관계로 만들면서 (인도로부터) 불교를 수입한다. 엘리트를 인도로 보내 산스크리트 문자에 기초해 티벳문자를 개발하고, 그것을 토대로 불경 번역에 나선다.

이 같은 송첸감포의 업적은 8세기 트리송 데첸 왕으로 이어져 티벳은 대승불교의 불국토가 된다. 트리송 시절 인도에서 온 산트락시타와 파드마삼바바는 티벳불교의 기초를 닦는데 핵심적 역할을 한다.

 

파드마삼바바,  '소중한 스승'이란 의미의 구루 린포체라고 불림, 아미타불의 화신으로 티벳불교의 종조라고 할 수 있음, 한국에서도 번역된 '티벳 사자의 서'의 저자이기도 하다.

 

이렇게 만들어진 티벳불교는 지난 1천3백년의 역사 속에서 티벳을 지배해 왔고 주변국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비록 티벳은 군사강국이 아니었지만, 현대 중국의 땅이 되기 전까지는, 결코 주변국으로부터 정복을 당하여 그들의 영토가 되거나 정체성을 잃은 적이 없다. 몽골과 청이 침입해 왔지만 그들과 화평을 맺었으며, 티벳 고승들은 중국 황제의 스승이 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중국과 티벳은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갔다. 티벳은 중국으로선 정치적으론 자신들의 영향권 내에 있지만, 정신적으론 그들이 자신들의 스승이라는 생각을 오래 동안 했던 것이다.

이것이 티벳이다. 그러니 티벳여행에서 티벳불교를 만나는 것은 불가피하다. 거의 모든 여행지가 티벳불교와 관계가 있으니, 그것을 모르고서는 눈감고 다니는 여행이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티벳여행을 끝낸 나로서는 불교를 몰라도 티벳은 한번 가볼만한 곳이라고 말하고 싶다.

 

티벳의 하늘, 포탈라궁에서

 

티벳의 하늘은 어딜 가도 눈물 나도록 파랗다. 마치 코발트 물감이 뚝뚝 떨어질 것 같다. 뭉게구름이 떠다니는 것을 보면, 마치 신화 속에 나오는 모든 이야기가 거기에 있는 듯하다. 밤의 별은 서울에서 보는 것보다 10배 아니 20배나 그 수가 많다. ‘별이 쏟아질 듯‘ 하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려면 티벳을 가야 한다. 해발 4천 미터 이상의 고원지대에 있는 푸른 호수는 티벳인이 말하지 않아도 그것을 보는 순간 성호(星湖)임을 알 수 있다. 금지 표지판이 없어도 함부로 발을 담궈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절대적인 미를 그냥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티벳은 가볼만한 곳이다. (2편 끝/2019. 7.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