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티벳여행기

나도 이런 사람이야!(티벳여행기7)

박찬운 교수 2019. 7. 12. 20:11

남쵸에 닿기 전 라겐라 정상 5190미터에서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갑자기 현재 위치에서 수 천 미터 위로 올라가면 제 정신을 갖고 서 있기가 힘들다. 기압이 낮아지면서 몸속으로 용해되는 산소량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티벳은 평균 해발고도가 4천 미터 이상이다. 이 정도가 되면 산소량은 한국에서 숨 쉴 때 폐 속으로 들어가는 산소의 60%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숨을 쉬고 나면 뱉기도 전에 숨이 차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이 여행기 첫 편에서 말한 것처럼 라사에 도착하는 날 나는 혹독한 고산증에 시달렸다. 라사에서 이틀을 묵고 나서야 몸이 가까스로 적응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티벳에서 라사는 저지대 중 저지대. 라사를 벗어나면 고도는 금새 4천 이상으로 올라간다.

라사에서 우정공로를 따라 서쪽으로 200킬로미터를 가 티벳 제2의 도시 시가체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그곳 해발고도는 4천 미터. 라사보다 불과 300미터 높은 곳인데도 밤새 잠을 못 잤다. 한 동안 괜찮다가도 갑자기 숨이 가빠지는 순간 몸속으로 산소공급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직감했다. 몸이 긴장되면 증상은 더 심해진다. 최대한 몸동작을 줄이면서 (몸을 이완시키고) 심호흡을 해야 하는 데 그게 잘 안 되었다. 1주일간의 티벳 여행 내내 나는 이렇게 고산증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럼에도 지금 생각하면 고도를 높여 가며 여행을 해 본 것은 나로선 짜릿한 경험이었다. 상상도 못했던 4, 5천 미터의 고원에 내 족적을 남겼다. 이제 나는 언제라도 히말라야로 떠나 세계 최고봉의 베이스 켐프에 발을 디딜 수 있다(대부분 히말라야 고봉들의 베이스 켐프는 해발고도 5천 미터 내외에 있음). 티벳을 여행한 사람이라면 거기에 갈 수 있는 게 입증된 셈이다.

이런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다. 두고 두고 자랑거리다. ㅎㅎ 여러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말한다고 해도 전혀 유치한 게 아니다.

내가 이래봬도 5천 미터 티벳 고원을 걸은 사람이야, 내가 이런 사람이야!“

여행기간 중 내 인생에서 가장 높은 해발고도에 발을 딛는 순간을 사진에 담았다. 지금도 그 사진만 보면 숨이 차오른다. 이 사진들은 오랫동안 나의 무용담을 증명하는 증거가 될 것이다. 이제 그 사진을 보자!

캄바라 패스 
캄바라 패스에서 내려다 본 티벳의 산하 

 

캄바라 패스

성호 암드록쵸를 가는 중 거치는 곳이 캄바라 패스다. 해발고도 4784미터. 라사와 고도 차이는 1천 미터. 차에서 내려 몇 발자국을 걷자 숨이 확 막혀왔다. 라사에서 무려 1천 미터 이상을 올라 온 것이다. 이곳에 서서 이제까지 거쳐 온 계곡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티벳 고원이 어떻게 생긴 지가 한 눈에 들어왔다. 정상에서 본 계곡과 하늘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압권이었다.

암드록쵸 정상 4998미터에서 
암드록쵸 호수 4441미터에서
암드록쵸

암드록쵸 정상

캄바라 패스를 통과한 후 암드록쵸 호수 전경을 볼 수 있는 정상에 올랐다. 해발고도 4998미터. 2미터 부족한 5천이다. 한 발 두 발 걸으면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저 멀리 만년설의 고봉이 눈에 들어온다. 정상에서 보는 암드록쵸의 모습. 과연 티벳인이 왜 이곳을 그토록 오고 싶어 하는 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저절로 마음속에서 기도가 나왔다. 이 대자연이 신이다. 티벳의 온 땅이 신이다!

카롤라 빙하 앞에서 해발고도 5020미터
카롤라 빙하에서

카롤라 빙하

암드록쵸에서 장체를 가는 도중 카롤라라 불리는 산을 지났다. 해발고도 5560미터. 산은 한 여름이지만 만년설로 두껍게 덮여 있다. 이 산은 티벳인들에겐 神山으로 통한다. 우리를 태운 버스가 이 만년설을 제대로 볼 수 있는 한 포인트 앞에 섰다. 해발고도 5020미터. 드디어 내 생애 처음으로 해발고도 5천을 밟은 것이다. 201972일 오후 2. 역사적인 순간이다.

남쵸에 닿기 전 라겐라 정상에서 해발고도 5190미터
라겐라 정상에서 남쵸를 바라보다 

라겐라

라싸에서 성호 남쵸를 가다보면 도착 직전 큰 산 하나를 넘는다. 라겐라. 해발고도 5190미터. 이곳에 잠시 정차해 남쵸를 바라보면 호수 전체가 눈에 들어온다. 짙푸른 하늘 아래 그 색과 똑 같은 거대한 호수가 앞에 펼쳐진다. 정상 주변엔 수많은 여행객들이 복을 빌면서 달아 놓은 타르초가 펄럭인다. 다만 이곳에서 잠시라도 정차한다면 해발 5천의 위용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인간들의 발걸음을 얼마나 무겁게 하는지... 단 서너 발자국만 떼어도 숨이 턱 막혀 앞으로 더 나아갈 수가 없다. 눈이 아득하고 아찔하다. 내가 그런 곳을 간 것이다. 내가 그곳에 우뚝 선 것이다.

(7편 끝/ 2019. 7.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