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소설

눈카마스

박찬운 교수 2015. 9. 27. 05:02

소설 아닌 소설(4)

눈카마스


1.
6월 4일 저녁이 다가온다. 나는 천주교 신자가 아님에도 매년 이날 저녁 7시가 되면 성당을 찾는다. 저녁 미사를 보면서 추모할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년 동안 내 스스로에게 한 약속이었다. 그를 추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그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그 약속을, 나는 오늘도 지켜야 한다. 성당의 종소리가 들린다. 나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2. 
1995년 6월 7일 아침이었다. 나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 그 순간을 똑똑히 기억한다.

“어, 이게 뭐야. 김수상? 어디서 들어 본 사람인데...”
“여보, 누구? 김수상이 뭐하는 사람이야”

“아ㅡ ”
내 입에서 장탄식이 터졌다.

그날 조간 맨 뒷면 사회면에는 이런 기사가 1단으로 나와 있었다.
“김수상, 27세, 대전교도소에서 복역 중 6월 5일 목메어 자살”


3. 
며칠 전 가족과 함께 속초 동명항을 들렀다. 식사를 하고 산책을 하다가 주변 절경 중의 하나인 영금정을 올랐다. 망망대해 동해가 눈앞에 펼쳐졌다. 바닷가에는 수영을 하는 아이들과 노를 젓는 몇 척의 2인승 보트가 보였다. 연인인 듯한 두 남녀가 열심히 노를 저었다. 하지만 파도 때문인지 아무리 노를 저어도 멀리 가진 못했다.


“서연아, 저기 두 사람이 젓는 조그만 보트 보이니? 저 보트를 저렇게 저으면 저 사람들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을까? 맘먹고 저으면 저 북한까지도 갈 수 있을까?”

“아빠, 그게 말이 되나요. 저런 보트를 타고 어떻게 망망대해로 나가요. 고작 몇 백 미터 나가는 정도지요. 그리고 나간다 해도 어떻게 북쪽으로 갈 수 있겠어요. 아마 십 분 쯤 나가다 보면 경비정이 달려올걸요. 대한민국, 모르세요? 저기 안 보이세요. 군 초소요?”


4. 
1992년 여름 어느 날 한 여인이 사무실을 들어섰다. 나이는 갓 서른이 되었을까? 머뭇거리면서... 그럼에도 매우 애절한 음성으로, 내게 말했다.

“변호사님, 제 동생 사건을 맡아 주세요.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 받았어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믿을 수가 없어요. 내 동생이 북한으로 탈출을 하려고 했다는 게 말이에요.”
“국가보안법 사건은 항소해도 별 실익이 없습니다. 제가 맡아도 별 소용은 없을 거예요. 그래도 맡기겠습니까?”


5. 
김수상. 당시 25세. 그는 고등학교를 나온 뒤 특별히 직업도 없이 집안에서 소일하면서 지내 온 젊은이였다. 무척 예민한 친구였는데, 내가 사건 수임 후 이리저리 알아보니, 여러 가지 면에서 정상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내 앞에서 계속 귀에서 무슨 소리가 난다고 호소했다. 일종의 이명 현상인데, 과거에도 그랬다고 한다.


수사기록 중엔 속초경찰서에서 훈방조치를 받은 게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속초 동명항 근처에서, 누군가의 나무 보트를 훔쳐, 바다로 나갔다가 곧 경찰 경비선에 걸렸다. 당시 그는 경찰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보트를 타고 북한으로 가고 싶었다.” 경찰은 이 말에 더 이상 조사도 하지 않고 훈방조치를 했다.


그러던 그가 마침내 국가보안법 위반사범이 된 것이다. 그는 92년 초 누이의 도움으로 생애 최초로 비행기를 타고 대만을 갔다. 누이의 말에 의하면 동생이 따뜻한 남쪽 나라를 가고 싶어 했다고 한다. 누이는 매일 집구석에서, 귀에서 소리가 난다며 중얼거리는 동생이 안쓰러워, 어렵게 돈을 만들어 대만 비행기 티켓을 사준 것이다.


그는 타이베이의 어느 여관에 투숙을 했는데, 거기서 며칠을 보내지도 못하고, 대만에 나가 있는 안기부 직원에게 잡혀 국내송환을 당했다. 혐의는 ‘타이베이의 북한대사관을 통해 북한으로 탈출하려고 했다’는 것인데, 급기야 그는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가 지배하는 영역으로의 잠입탈출미수죄로 기소되었다.


6.
“검찰에게 묻습니다. 북한대사관이 대만에 없는 것은 사실이지요? 그런데도 검찰은, 피고인이 대만에서 북한대사관을 통해 북한으로 탈출하려고 했지만, 그곳에 대사관이 없어 탈출을 성공하지 못하고 미수에 그쳤다는 기소를 한 것이지요?”
“예, 맞아요.”

“... 그런데 실례지만, 사실여부를 불문하고 이런 걸 가지고 국가보안법으로 기소할 수 있는가요?”
“뭐라고요, 지금 변호인이 검찰을 모욕하는 겁니까? 우린 법대로, 형사법의 판례대로 기소했을 뿐이에요. 불능미수 몰라요? 변호사가 피고인을 제대로 변호하려면 공부를 해야지요. 어디서 그런 말을... 감히...”
------

“재판장님, 이 사건 피고인은 아무래도 정상이 아닙니다. 변호인은 피고인에 대해 정신감정을 신청합니다. 그리고 대만에 있는 안기부 직원을 증인으로 신청합니다. 중국어를 전혀 못하는 피고인이 여관 주인에게 ‘북한으로 가고 싶다면서 북한대사관을 찾았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7.
“정신감정 신청은 기각합니다. 증인이 오늘도 안 나왔군요. 이 정도에서 결심합니다.”
“아니, 항소심 재판 몇 번 열렸지만, 한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결심을 하다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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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한다.”

“아니, 재판장님, 뭐 이런 법이 있습니까? 재판도 끝나기 전에 판결문을 작성해 오셨습니까? 어떻게 결심한 지 30분도 안 돼 판결을 선고합니까?”
“변호인, 억울합니까? 대법원 가보세요. 3심제 모르세요? 다음 사건 진행하겠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법정경위가 자신이 미안했던지, 평소 하지 않던 예우를 베푼다. 법정 문을 열어주면서 귀속 말로 “변호사님, 참 ... 그렇네요. 안녕히 가세요.”


8.
“서연아, 너는 아빠가 당장이라도 죽는다면 아빠의 유산 중 제일이 무엇이라 생각하니?”
“무슨 말씀? 우리 아빠, 오래 사셔야죠. 아, 그래도 꼭 말하라고 하시면 제가 그걸 모르겠어요? 아빠의 일기장!”

“그래 맞다. 아빠의 일기장이 유산목록 1호다. 이것은 나의 분신이니라. 오늘은 특별한 날이구나. 왜 그런지 넌 아니? 미래의 인권변호사, 우리 딸 박서연 변호사와 함께, 이것 좀 같이 읽어볼까. 아빤, 부끄럽고 후회스럽지만, 오늘은 꼭 그렇게 하고 싶구나.”


『1995년 6월 7일 저녁
김수상이 갔다. 그 어처구니없던 사건의 주인공은 결국 자신의 무고함을 스스로 증명했다. 죽음으로써 말이다.

나는 무엇을 했는가. 변호사로서 그 사건에서 무엇을 했는가. 그의 무고함을 그 정도로 주장한 게 맞았는가. 좀 더 혼신의 힘으로 막아야 했지 않았는가. 그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그저 평범한 한 사건으로 처리하지는 않았는가. 돈 조금 받았다고 소흘하지는 않았는가.

김수상은 갔다. 내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그의 신에게로 가자. 그래서 그의 원혼을 빌어주자. 매년 그의 기일이 되면, 성당을 찾자. 그날만은 그의 신이 나의 신이 되도록 하자. 1년에 딱 한 번이라도 그를 기억하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그의 신, 아니 나의 신에게 빌자. Nunca Mas!』


나는 서연의 손을 잡고 힘을 주었다. 서연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후기: 이 소설은 내가 직접 경험한, 어처구니없었던 한 국가보안법 사건을 토대로 각색한 것이다. 세세한 사실관계는 픽션이지만 중요 사실관계(국보법 사건과 죽음)는 사실이다.


●불능미수: 우리 형법(27조)은 어떤 행위가 범죄결과발생이 불가능하고 위험성이 없으면 처벌하지 않지만(이를 불능범이라 함), 결과발생이 불가능하더라도, 위험성이 있으면 처벌한다(이를 불능미수라 함). 다만 위험성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에 대해 여러 견해가 나누어진다.


●눈카마스: 이 말, nunca mas 는 스페인어다. 우리말로 바꾸면 ‘더 이상은 안 돼’라는 뜻. 이 말이 유명해진 것은 1980년대 남미의 군사정권이 무너지고 과거사 정리가 진행될 때 군사정권에 의해 자행된 수많은 인권유린 사건이 드러났을 때였다. 사람들은 그런 참혹한 사실을 발견하고, ‘다시는 저런 역사가 재현되어서는 안 돼’라는 뜻으로 ‘눈카마스’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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