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소설

배반의 계절에도 별은 빛난다

박찬운 교수 2015. 11. 2. 20:33

소설 아닌 소설(6)

 배반의 계절에도 별은 빛난다

 (오랜만에 '소설 아닌 소설' 시리즈를 썼습니다. 제가 만들어가는 SNS 소설입니다. 세상에 대하여 무언가 말하고 싶은데 그냥 맨 정신으로 말할 수 없어 이런 글쓰기를 시도합니다. 읽고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이것은 소설 같지 않지만 진짜 소설입니다.)


#1

강교수가 문화부 장관에 지명되었다면서. , 그 사람 나 그렇게 안 봤는데... 언제부터 BH에 줄을 대고 있었나.”

허허. 모르고 있었어. 그 사람이 지난 대선 때 그거 있잖아, 그 자문단. 강교수가 그 자문단의 숨은 실세야.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지.”

그래? 난 몰랐는데. 하기야 그 사람 최근 몇 년 사이에 많이 변한 것 같더라. 그렇게 열심히 논문 쓰고 책 내고 하던 사람이 언젠가부터 글이 안 나오더군.”

그래 맞아. 여당에서 주최하는 심포지엄엔 휴강하면서까지 뻔질나게 나가더군. 여권에서 그 사람만큼 좋아하는 경제학자가 없을거야.”

아니 그렇다고 경제학 교수가 무슨 문화부 장관을 하나. 그건 전공도 아니잖아.”

, 이 사람, 순진하긴. 전문성이 뭐 필요 있어, 전문적인 일이야 영혼 없이 일하는 머리 좋은 공무원들이 하면 되는 것이고, 장관은 그저 위와 코드만 잘 맞추면 되는 거야. 어차피 1년 이상 하긴 힘들 텐데...”


#2

강인국. 나는 강교수를 잘 안다. 나와는 고교 동창생이고, 대학도 같은 학교를 다녔다. 그 뿐인가. 미국유학도 함께 했고, 교수도 한 날 한 시에 같은 학교에서 시작했다. 그 친구는 경제학과 교수로, 나는 법대 교수로. 우리는 한 가족처럼 지난 30년 이상을 지내왔다. 우리 집 사람도 강교수의 처와는 오랜 기간 막역한 사이를 유지해 왔다. 강교수 큰 딸과 우리 집 큰 머슴애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 사이다. 그와 나는 명실상부한 평생지기다.

강교수가 장관이 돼? 가까운 친구가 장관이 되었으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마땅히 단숨에 달려가 축하할 일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다. 나는 그가 이 아사리판의 정권 하에서 장관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와 단 한마디 의논도 없었다. 그가 내게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3

우리 둘은 20년 전 미국 보스턴 한국유학생들 사이에선 꽤나 유명했다. 다른 유학생에 비해 나이도 몇 살 위였고 사회과학을 하였기 때문에 유학생들을 만나면 고국 이야기를 주도했다. 우리는 밤을 새우면서 전두환, 노태우를 감옥에 넣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말했다. 민주주의와 정의실현이 대한민국의 미래라고 피를 토했다. 빨리 공부를 마치고 귀국해 무언가를 하자고 수없이 도원결의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강인국의 변화는 10년 전부터 감지되었다. 안팎으로 경제학 교수로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정교수가 되자 돈과 권력이 소리없이 붙기 시작한 것이다. S그룹 계열사인 K회사의 사외이사가 되자 노는 물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방학만 되면 온 가족을 데리고 해외여행을 떠나고 주말이면 예외 없이 정관계 인사들과 골프모임을 한다는 소리가 들렸다. 언젠가부터인지 아내는 강교수 처가 자기에겐 한 개도 없는 명품 백을 도대체 몇 개나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고 투덜거렸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의 강교수에 대한 신뢰는 조금씩 허물어져 갔다.


#4

강인국 후보자, 모 신문을 보니 강후보자가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강력히 주장했던 데 맞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우리 학생들이 공부하는 국사교과서는 모두 좌편향 되어 있습니다. 올바른 역사를 교육시키기 위해서는 국가가 올바른 역사를 서술해 올바르게 가르칠 수밖에 없습니다.”

강후보자는 5년 전 한 세미나에서 검인정 교과서 제도를 반대하면서 자유발행제를 주장했던데 사실입니까? 그런 사람이 국정화를 주장한다? 이것은 학자로서 지조가 없는 행위 아닌가요?”

예 그런 말을 한 건 사실이지만 그것은 우리 교육계의 심각한 좌경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그저 학문적 차원에서 이야기 한 것에 불과합니다.  현실을 보니 도저히 그럴 것이 아니더군요. 그래서 국정화 지지로 견해를 바꾼 겁니다. 이건 학자적 양심과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입니다. 국가의 명운이 걸린 문제입니다.”


#5

야당의 반대에도 강인국은 문화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임명되기 전 날 강인국은 저녁 시간을 이용 학교 연구실에 들렀다. 짐을 싸기 위함이었다. 나는 거기에서 그를 만났다.

차교수, 미안해. 장관 지명되기 전엔 경황이 없어 자네에게 연락을 못 했네.”

강교수, 늦었지만 축하하네. 그런데 한 가지만 묻세. 정녕 자넨 이 정권에서 장관을 하고 싶었는가? 자네의 학자적 양심과 이 정권이 맞는다 생각하는가?”

차교수, 자네는 너무 순진해. 아직도 학생시절의 그 열정을 간직하고 사는 것 같아. 나는 그것 떨쳐 버린 지 오래 되었네. 자네가 내 모습에서 그걸 읽지 못했다면 유감이네.”

그랬는가. 자넨 어떻게 해서 그 열정을 그리도 쉽사리 버리게 되었는가. 나는 자네와 지난 30년 이상 교유하면서 자네야 말로 학자의 양심을 죽을 때까지 지켜갈 친구로 여겼는데...”

허허. 이 친구야, 인생이란 승부를 걸어야 해. 자네나 나나 이미 50대 중반이야. 이제 얼마 안 가서 우리 시대는 끝나는 거야. 그냥 이대로 살래? 남자로서 한 번 세상에 나가 뜻을 펴고 살지 않을래? 나는 그 승부를 건거야. 학자의 양심? 그게 뭐가 중요하니? 기회가 중요한 거야. 이런 기회는 다신 오지 않아. 나는 그 기회를 잡았을 뿐이야.”


#6

강인국은 떠났다. 그의 연구실 불도 꺼졌다.

차교수, 자네는 너무 순진해. 이제 우리 나이는 승부를 걸 때야.” 강인국이 남기고 간 말이 계속 내 머리를 맴돈다. 무언가 나도 답을 해야 할 시간이다.

인국아, 그래 우리가 이제는 인생 승부를 걸 때가 온 것 같다. 자네 말대로 출세의 길을 걸을 것인가, 아니면 그 길을 포기할 것인가. 답은 나왔네. 자네가 나를 친구라 여겨 같이 출세하자면서 나를 끌어들이려 한다면, 내 말은 이미 준비되어 있네. 그게 뭔지는 자네가 잘 알거야.”

나는 캠퍼스를 나오면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오늘 밤도 별은 빛난다. 별빛은 나와 강인국이 20년 전 어느 날 밤 보스턴 시내에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함께 본 그것이었다. 사람들이 아무리 배반의 계절을 살아가도 저 별빛은 저렇게 변함없이 빛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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