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소설

밤 하늘 빛나는 별이 되어

박찬운 교수 2015. 9. 27. 04:31

소설 아닌 소설(5)

밤하늘 빛나는 별이 되어


1.
“박변호사님,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이도 기뻐할 거예요. 생전에 제일 좋아하는 선배님이셨잖아요.”
“당연히 제가 와서 술 한 잔 올려야지요. 그 친구 살아 있을 때는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만나지 못했어요. 그게 아쉽네요. 제수씨, 꿋꿋하게 살아야 합니다.”


내 사랑하는 후배 김성동이 간지 1년이 되었다. 평상시라면 혼자서 술을 마시는 내가 아니지만 오늘은 예외다. 나는 소주 한 병을 시켜 놓고 한 잔 또 한 잔을 비운다.


김성동!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향기가 나는 사람이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할 줄 모르는 의지의 사나이였다. 낭만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고통 속에서도 사랑의 연가를 불렀고, 도망가는 여인을 붙잡아 기어코 그녀의 손가락에 언약의 반지를 끼어준 사람이기도 했다.


2.
“형, 좀 아쉽네요. 이렇게 간다는 것이... 하지만 어쩔 수 없지요. 운명을 피할 순 없으니까요. 아, 운명!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여기까지 왔잖아요. 변호사가 돈 버는 시대는 지났지만 그래도 몇 가족은 책임질 수 있는 제가 아닙니까? 저만 의지하는 부모님도 살아계시고, 애 엄마며, 애들이며....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돈 좀 벌어 두는 건데.... 하하”


김성동은 저 남쪽 끝, 해남 사람이다. 대대로 땅 몇 마지기, 밭 몇 다랑이에 의지해 살아 온 전형적인 소농 가정에서 태어났다. 5형제가 있지만 오로지 성동이 그 친구만 가까스로 사람노릇하면서 살아가는 신세가 되었다. 시골에서 중학교만을 나온 뒤 서울로 무작정 상경했다. 고생은 끝이 없었다. 공장도 다니고 식당도 전전하면서 돈을 모았다. 그러면서도 책을 손에 놓지 않았다. 독학을 해 대입검정고시에 합격했고, 우수한 학력고사 성적 덕에, 내가 다니던 H대 법대 장학생으로 들어왔다. 거기서 우리는 만났다.


3.
우리는 2년 선후배 관계였지만 곧 스스럼없는 관계가 되었다. 고민 많았던 시절이었다. 우리는 바깥에서 들리는 데모 소리에 귀를 막고 공부를 했다.


“형, 나 저 소리 들으면 정말 미치겠어. 우리는 이렇게 공부만 해야 하는 것이야? 쟤들은 저렇게 데모하면서 전두환 물러가라고 외치는데, 우리는 이렇게 입신양명하기 위해 법서를 넘겨야 하는 것이야?”


우리는 함께 울기도 하고, 다짐도 했다. “야, 성동아, 우리 합격하면, 정말 무언가를 해보자. 결코 출세하기 위해 고시공부했다는 소리는 듣지 말자.”


4. 
1984년 나는 합격했다. 2년 후 성동이 그 친구도 합격했다. 나나 그나 모두 재학 중 합격한 것이었다. 지금도 그날, 그 저녁 일은 선명하게 내 머리에 남아 있다.


“형, 2년 전 기숙사 옥상에서 한 약속 잊지 않았지? 우린 지금부터야. 이제부터 뭔가 보여줘야 해. 정말 나는 뭔가 다른 법률가가 될 거야. 형, 앞장 서... 아니, 그럴 필요 없지. 형은 형대로, 나는 나대로 가면 되지.”


김성동 변호사는 그 약속을 지켰다. 나는 가끔 넘어지고 고꾸라지기도 했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노동변호사의 길을 걸어갔다. 90년대 초라면 마음만 먹으면 돈도 좀 벌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는 줄곧 노조와 노동자 편에서 일했다. 그는 거리로 나가기도 했다. 언젠가 티브이에 그 얼굴이 나오길래, 이제 언론을 타는 유명 변호사가 되었는가 하고 보았더니, 데모 대열 맨 앞에서 경찰관과 몸싸움을 하고 있었다.


5. 
작년 초 어느 봄날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김성동이었다. 우리는 오랜만에 추억을 살리면서, 학창시절부터 자주 가던, 중국집에서 만났다. 30년 전과 다름없이 반갑게 맞이해 주시는 주인 아주머니는 연신 우리 곁을 오가면서 이것저것 요리를 갖다 주셨다. 고량주 몇 잔이 들어가자 김성동이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형, 나 이제 갈 날이 얼마 안 남았어. 몇 달 전부터 속이 이상해서 참지 못하고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어. 허 참... 내게 이런 게 오다니... 위암 말기라나.”
“맙소사!”


6.
“제수씨, 축하합니다. 이런 날이 있군요. 미안합니다. 생전에 이런 일이 있어야 했는데 제가 무심했습니다.”


“......”


변호사회 100주년 기념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 이날 변호사로서 귀감이 된 몇 몇 변호사가 공로상을 받았다. 고 김성동 변호사, 그는 특별공로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노동변호사로서 20여년을 살아 온 그를 동료 변호사들은 잊지 않았던 것이다. 조금 늦긴 했어도... 나는 그날 특별한 꽃다발을 준비했다. 100 송이 장미꽃!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산 김성동, 100 송이 장미꽃은, 그를 잊지 않는 나 박동혁과 친구들이, 그의 사랑하는 아내를 통해, 그의 영전에 바치는 훈장이었다.


“너를 잊지 않으마, 결코... 사랑한다. 김성동!”


<후기>: 이 글은 소설입니다. 다만 지난 30년간 제가 만난 법조인 중엔 적어도 몇 명의 김성동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제 곁을 떠나갔습니다. 가을 밤 그들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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