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소설

어느 형제 K와 H

박찬운 교수 2017. 2. 15. 11:25

소설 아닌 소설(7)

어느 형제 K와 H

 


어느 집안의 형과 아우 이야기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은 내게도 형제가 있고 그 관계가 오늘 이 형제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나로선 동병상련을 느끼는 바다. H는 환갑의 나이로 몇 년 전 불치병이 찾아와 병상에 누워 있다. 동생 K는 유명대학의 교수인 바, 학문적으로 뛰어난 업적을 내고 있어, 세상에 꽤 알려져 있는 학자다.

 

1.

어두워질 무렵 K는 학교를 나서 택시에 올라탔다. “강남 인터콘티넨탈 호텔로 갑시다.” 오늘 대한변호사협회 이사회가 거기에서 열린다. 회의장에 들어서자 많은 이사들이 일어서 K를 맞는다. K는 변협회장과 함께 회의장 맨 앞의 헤드 테이블에 착석했다. 사회자가 K의 이름을 불렀다.

 

귀하는 각고의 학문적 연찬을 통해 수준 높은 저서와 논문을 저술함으로써 우리나라의 법률문화 창달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이에 본 협회는 귀하의 학문적 업적을 기리는 의미에서 본회가 수여하는 법률문화대상의 수상자로 귀하를 선정했습니다.”

 

순간 K의 머릿속엔 몇 장면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어려웠던 고시공부시절, 맨땅에 헤딩한다는 기분으로 공부했던 미국 유학시절, 그리고 지난 20년간의 대학교수시절....

 

2.

서울 변두리 어느 요양병원 병상에 H는 누워 있다. 몇 년 전 갑자기 몸의 중심을 잡지 못해 병원에 갔더니 파킨슨 유사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희귀병인지 증상에 맞는 약을 찾을 수 없었다. 하루가 다르게 몸의 이곳저곳에 마비가 찾아오고 급기야 병원 침대를 떠나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H는 혼자 일어서지도 못한다. 말도 하지 못한다. 밥은 먹지만 먹을 때마다 입에선 연신 밥알이 떨어진다. 가족 간의 의사소통은 눈짓으로 한다. 가끔 무언가를 특별히 말하고자 할 때는 옆에 있는 종이에 흔들리는 필체로 몇 자 적는다.

 

H는 하루 종일 누워있지만 의식은 살아 있다. 몸과 정신이 따로 놀고 있는 것이다. 간병하는 처에게 눈짓을 보낸다. 자신을 일으켜 달라고. H는 잠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종이에 무언가를 어렵게 썼다.

 

“K, 어머님 기일이 다가오는데 내가 제사를 지낼 수 없구나. 미안하지만 네가 나를 대신해다오. 아버지도 부탁한다.”

 

3.

내가 아는 바로는 이 두 형제는 충청도 어느 산골에서 태어났다. 70년대 초 서울에 올라와 동생 K는 대학을 나와 고시에 합격하고 소위 남들이 말하는 출세를 했다. 하지만 형 H의 삶은 고단했다.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서울로 올라왔지만, 어려운 형편에 학업을 포기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시장 노점상, 승용차 개인기사, 택시운전기사, 다단계 판매 등등. H는 평생 어렵게 살았다. 제대로 여행 한 번 해본 적이 없고, 변변한 옷 한 벌도 없다. 서울에서 전세를 전전하면서 돈을 모았지만 결국 집 한 채 장만하지 못하고 인천으로 이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몇 년 전에서야 인천 후미진 동네에 조그만 연립주택 하나를 구했을 뿐이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 연립주택 맨 꼭대기 집이라 불편한 몸을 이끌고 지내기가 보통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4.

사람들은 잘 모를 거야. 내가 매일같이 얼마나 아픔 속에 사는지를

그렇지 자네야 잘 나가잖아. 변호사에, 박사에, 교수 그것도 자네 분야에선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지 않는가.”

그래 나는 지난 30년간 많은 것을 경험하고 많은 것을 얻었지. 어딜 가도 부족함을 느끼진 않네. 나 혼자로선.”

그런데 말이야. 내가 이룬 것은 딱 그것뿐이야. 내 능력으로 집안을 일으키지 못했어. 돈을 좀 벌었어야 했는데... 내가 학교에 가지 말고 돈 버는 변호사가 되어 부모형제에게 큰 힘이 되었어야 했는데... 병상에 누워 있는 형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리네. 한 번도 호강이란 것을 모른 형, 그 형이 점점 사그러 들고 있거든.”

나 하나는 뭐든 할 수 있지만, 그게 형에겐 큰 도움이 안 돼.”

 

5.

KH가 쓴 비뚤비뚤한 메모를 보면서 눈시울 붉혔다. 형이 카톡은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간단한 답장을 썼다.

 

, 아무 것도 걱정 마요. 어머니 기일 챙기는 것은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그런 것 걱정하지 말고 즐겁게 지내요. 이번 주 말에 병원에 갈게.”

 

6.

K의 연구실에 올해 대학을 졸업하는 제자 C가 찾아 왔다. C는 지방에서 올라와 지난 5-6년 간 어렵게 공부를 했다. 그 결과 다행스럽게도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취업을 했고 이제 졸업을 앞두고 있다. 그가 가지고 온 꽃 한 다발이 연구실 한 가운데서 빛을 발한다.

 

선생님, 졸업식이 내일입니다. 이제 사회로 나가는 데 한 마디 해주십시오.”

“C, 축하한다. 이 어려운 시절에 너는 무엇인가를 이루었구나. 시골에 부모님과 형제들이 있다지? 네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겠구나. 그 짐이 너무 무겁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슨 일이 있어도 희망을 포기하지 말자. 좋은 세상을 만들도록 각자 처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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