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정치

다시 한 번 남북관계의 기본시각을 정립할 때이다

박찬운 교수 2019. 3. 7. 04:43

다시 한 번 남북관계의 기본시각을 정립할 때이다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나자 일부 언론과 극우세력은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노골적인 공격을 해대고 있습니다. 북미관계의 조정자 역할을 자임하는 문대통령이 고작 한 것이라곤 북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미국에 전달하는 역할 외에 한 게 없다는 것입니다(미국의 블룸버그가 그런 기사를 냈다고 몇 몇 언론에선 크게 보도하고 있음). 남북문제 혹은 국제정치 전문가들은 연일 방송이나 신문을 통해 이런저런 훈수를 두고 있지만 실체에 근접한 신뢰할 수 있는 이야기는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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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들 문제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쓰긴 하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제겐 언론 보도 외에 특별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디테일한 전술적 이야기를 쓸 수 없습니다. 대신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이 문제를 둘러싼 기본적 시각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이것만큼은 어느 전문가에 뒤지지 않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이런 시각을 키운 계기는 2005-2006년 국가인권위 정책국장 시절 제 임무 중 하나였던 북한인권팀 운영에서 비롯합니다. 그 때부터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기본관점을 갖기 위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경청했고 그들의 저술을 살폈습니다. 제 이야기는 그런 경험에 기초해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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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국면에서 우리 시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이 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에 대한 판단입니다. 그 판단을 할 수 있어야 정부의 정책을 지지할 수도 비판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그것을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남북관계에 대한 기본시각입니다. 이에 대해 저는 작년 2월 10일 이 공간에서 <북한을 보는 눈, 우리가 나아가야 할 남북관계>라는 글을 쓴 바 있습니다. 저는 오늘 그 글을 꺼내 읽어봅니다. 1년이 지났지만 제가 말씀드린 시각은 여전히 옳다는 확신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글의 핵심부분을 옮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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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한은 한반도 북쪽의 국가적 실체이다.
우리 헌법이 한반도 전체와 그 부속도서를 대한민국의 영토라고 규정했다 해도 북한의 이런 성격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실재이고 현실입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선 어떤 경우에도 북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북한은 엄연한 국가적 실체로서 국제사회의 한 일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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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반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긴장완화 곧 평화이다.
남북 관계에서 절대적 명제는 평화 상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당위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운명이 걸려 있는 문제입니다. 긴장이 고조되어 만일 무력충돌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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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북한은 쉽게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북한은 오래 전부터 국제사회에서 자신들의 체제와 생명을 보장하는 유일한 길은 핵과 미사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지난 20년을 생각해 보십시오. 북한이 강대국 미국을 상대할 수 있는 무기가 무엇이었습니까. 핵과 미사일이지 않았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 국제사회(미국)가 북에 대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라고 요구한다고 해서 그것을 쉽게 받아들일 북이 아닙니다. 엄연히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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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미국도 북의 능력을 인정하고 한반도 긴장완화에 동참해야 한다.
북이 핵과 미사일로 무장한 상황에서 한반도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선 북미 대화가 필요합니다. 전쟁을 피하기 위해선 북의 핵과 미사일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가장 긴요한 것이 북한과 미국의 대화입니다. 미국과 북한의 평화협정 체결은 그것의 결정적 귀결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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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우리는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는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매우 애매한 지위에 있습니다. 한미동맹이 강화되면 남한의 역할은 작아지고,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한미동맹은 약화되기 쉽습니다. 전자로 흐르면 북한이 긴장을 고조시키고, 후자로 흐르면 미국이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역할이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북미 관계를 평화체제로 가게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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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우리는 꾸준히 남북교류를 해야 하고 그 정도를 확대 심화시켜야 한다.
남북교류는 한반도의 긴장상태를 완화시킵니다. 한반도엔 개성공단과 같은 특별평화 경제구역이 필요합니다. 하나가 아니라 둘 셋 그 이상이 필요합니다. 그 특구는 남북만이 참여하는 게 아니라 앞으론 미국, 중국, 일본 및 러시아가 참여하는 게 좋습니다. 그래야 북한이 함부로 문을 닫지 못합니다. 교류가 어떤 지점을 넘어서면 한반도는 지금보다 훨씬 안전할 겁니다. 두꺼운 외투를 벗기는 것은 추운 겨울이 아니라 따뜻한 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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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북한의 전략 전술에 우리는 열린사회의 장점으로 대응해야 한다.
북한의 대남전략이나 국제 전략은 변화무쌍합니다. 때론 북한이 우리를 가지고 노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잘 생각하면, 그것은 폐쇄사회인 북한이 보여줄 수 있는, 당연히 예상되는 행동방식입니다. 우리는 패를 보여줄 수밖에 없지만 그들은 얼마든지 패를 감출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이기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과거 냉전체제가 증명합니다. 서방세계가 폐쇄사회인 사회주의 국가에 진 게 아니잖습니까. 따라서 우리는 열린사회의 장점으로 그들을 대해야 합니다. 강력한 경제와 민주주의로 무장한 우리에게 북한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북한의 예기치 않는 전략 전술에 우리가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북한의 행동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민주주의의 꽃을 활짝 핀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면 됩니다. 그러면 북한도 언젠가는 변화의 봄날을 맞이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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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습니까. 이 기본시각이 현 정부의 대북정책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저는 이것이 바로 우리 시민사회가 지지해야 하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기본전략이라고 봅니다. 다행스럽게도 문재인 정부는 이 기본전략에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 기본전략을 수행하다 보면 때론 미국과 틈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위 5을 잘 읽어보십시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감수해야 합니다. 문제는 그런 간극이 발생해 한미 관계가 어려워졌을 때 우리 시민사회의 반응입니다. 우리 정부가 그 국면을 돌파하기 위해선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것이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2019. 3.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