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정치

하노이 선언의 불발, 그에 대한 간단한 논평

박찬운 교수 2019. 3. 1. 20:21

하노이 선언의 불발, 그에 대한 간단한 논평


고대하던 하노이 선언이 불발되었다. 애석하기 짝이 없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불발의 원인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이 문제에 대해 관심 갖고 보아온 사람으로서 짧게 몇 마디 남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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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이번 불발은 트럼프의 독자적이고도 독단적인 판단에서 기인한 것이다. 트럼프는 그동안 양국 실무진이 하노이 정상회담 직전까지 마련해 온 합의안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었지만(그것이 당연히 예상되었음), 그것을 일부러 차버렸다.


왜 그랬을까? 위기로 치닫고 있는 국내정치 때문이다. 트럼프가 워싱턴을 비우자 그의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이 의회 청문회에 나가 트럼프를 정치적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는 메가톤급 폭로를 하고 말았다. 이로 말미암아 미국 조야에선 북미 정상회담이 안중에 없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트럼프가 공들여왔던 북미정상회담은 일정한 합의가 있다고 해도 빛은 바래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북미정상회담은 그의 재선가도에서 매우 중요한 업적이 되어야 하는데, 이렇게 외면당해선 말이 안 된다. 그로선 위기의 국내정치에서 어느 정도 숨을 돌릴 때를 기다린 다음 북미정상회담을 다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오늘 그가 준비된 실무안을 깨고(미국이 북한에 영변 플러스 알파를 요구했는데, 북한이 거절해 합의가 결렬되었다는 보도가 사실이라면, 그것은 합의 결렬을 위해 미국이 판을 깼다는 것을 의미함) 워싱턴으로 돌아간 이유라고 본다.

둘째, 불발원인이 이런 것이기 때문에 3차 북미정상회담은 조만간 이루어질 것이고, 거기에서 합의가 도출될 것이라고 보는 것은 전혀 무리한 예상이 아니다. 장사꾼인 트럼프가 양쪽 실무진이 어렵게 접근시킨 합의안을 무위로 돌릴 리가 없다. 트럼프가 비록 예측불가능한 인물이긴 해도, 자세히 살피면 그에게도 일정한 패턴이 있고 행동원칙이 있다. 이익이 있으면 움직인다는 점이다.


작년 5월에도 트럼프는 갑자기 북미정상회담을 취소하고 말았지만, 그 후 며칠 만에 그것을 철회하고 정상회담에 다시 나선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다만 새로운 북미 정상회담을 통한 합의를 위해선 워싱턴의 상황이 바뀌어야 한다. 트럼프의 정치적 위기가 어느 정도 호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금 우려스러운 것은 트럼프가 국내 정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북미 관계의 판을 키울 가능성이다. 미국 조야에서 일고 있는 북한 비핵화를 위한 트럼프의 접근방식이 한계가 있다는 비판을 불식시키기 위해 북한이 감당하기 어려운 요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북미관계는 급속히 냉각될 가능성이 있고 상당기간 관계개선은 어려울지 모른다.

셋째,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를 위한 노력과 그것을 지지하는 우리들의 바람이 새로운 실험대에 올랐다. 문대통령은 이번에 하노이 선언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미국의 대북제재가 완화되면 본격적인 남북경협을 할 참이었는데, 그 계획이 당분간 쉽지 않게 되었다.


이 국면을 과연 어떻게 뚫고 가야할 것인가? 문대통령이 가진 옵션은 많지 않다. 문대통령으로선 중재노력(북에 대해선 비핵화를 설득하고, 미국에 대해선 종전 선언 및 북에 대한 제재완화를 요구)을 더욱 가속화시킬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는 중국, 러시아, EU 그리고 유엔이 우리의 중재노력을 지지토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김정은의 남쪽 방문을 실현시켜 북한이 비핵화 및 정상국가로 변화하려는 의지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남북 모두에게 좋다.


이런 노력을 하다보면 불원간 북미정상회담은 이루어질 것이고, 그 결과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2019. 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