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LUND의 이곳저곳

룬드의 이곳저곳(2)-룬드성당-

박찬운 교수 2023. 9. 10. 05:54

룬드 여행의 시작점은 룬드 시내 한 가운데에 있는 고색창연한 건물 룬드 성당이다. 스웨덴은 개신교 국가이기 때문에 구교에서 사용하는 성당이란 말이 맞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곳의 시작은 가톨릭 성당에서 시작된 것이니 현재 개신교 교회당으로 사용되고 있어도 여전히 이곳 명칭(카테드랄)의 우리 말 번역어는 성당이 제격이다. 내 설명은 이곳을 설명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나는 룬드에서 있는 동안 하루에 서너 번은 이곳 성당 앞을 지나다녔다. 점심 때는 잠시 성당 안에 들어가 그곳 천문시계를 보거나 기도를 하기도 했다. 저녁 때는 의례히 산책을 나갔는데 그 때도 성당은 첫번째 행선지였다.

 

룬드성당, 룬드를 대표하는 성당이다. 종교개혁 이후 루터교회가 되었다 . 1080 년 공사가 시작되어 1123 년 축성되었다. 이 성당이 만들어짐으로써 룬드는 북구의 기독교 정신세계의 중심이 된다. 이 성당과 함께 신학교가 만들어지는데 그것은 현재까지도 룬드에 이름이 남아 있다. Södergatan에 있는 Katedralskolan이다. 현재는 고등학교로 사용되고 있다. 룬드성당은 북구를 대표하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다. 성당내부에는 15 세기에 만든 천문시계, 제단 주변의 코러스 의자 (14 세기), 함부르크에서 가져 온 대형촛대 (15 세기), 설교대 (pulpit, 1592 년), 지하무덤 (가장 오래된 부분) 이 볼만하다. 지하무덤에는 장사 핀이 교회 기둥을 뽑다가 돌이 된 석주가 있다 .

 

늦가을의 정취를 담은 룬드성당

 

봄을 맞은 룬드성당

 

성당 내의 천문시계, 이 시계는 15세기에 만들어졌는데 한 동안 방치되었다. 1923년 성당 개관 800주년을 맞이하여 남아 있던 부품을 사용하여 복원했다. 이 시계는 아래 위로 판넬이 두 개가 있는데 위 판넬에서는 시간, 태양과 달의 위치, 낮과 밤의 길이 등을 알 수 있고, 아래 판넬에서 는 날자, 요일, 기타 축일 등을 알 수 있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천문시계이다.

 

성당의 중앙 제단 부근, 양쪽의 의자와 제단 뒤의 병풍1 4세기에 만든 것이다. 천정에 비잔틴식 모자이크가 아름답다. 그것은 20세기 초 만들어진 것이다.

 

이 성당은 전형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이다. 벽체가 두껍고 로마네스크 양식의 특징인 반원 아치가 아름답다.

 

룬드성당의 크리스마스 예배, 벽면 설치된 설교대 (pulpit) 에는 신부가 올라가 설교를 하는 데 사용한다 . 1592 년 만들어진 것이다. 멀리 제단 위의 모자이크가 보인다. 비잔틴 양식의 모자이크인데 20 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이다 .

  

지하 예배실에 있는 장사 핀의 석주, 전설에 의하면 이 성당을 만든 이는 성 로렌스인데 그는 어렵고 힘든 일은 핀에게 다 시켰다. 그런데 핀과의 약속은 져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어느 날 핀은 성당의 기둥을 뽑아버리기로 했다. 그 찰나 성 로렌스가 핀을 보고 석주와 함께 돌로 만들어 버렸다. 나는 룬드에 와 있는 한국 학생들에게 룬드의 역사를 알려 주는 행사를 가졌다. 위의 사진 속의 학생들은 그 때 참석한 이들, 박선애, 이관호, 정재연, 유선이, 이은정 그리고 그날의 사진사 김남미. 지금 이 학생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10년이 흘렀으니 룬드의 기억이 희미할지 모르겠다. 이 글이 그들에게도 전달될 수 있다면 좋을 추억이 될 것이라 믿는다.

 

룬드에서 공부하던 유학생들에게 룬드성당을 설명하는 필자

 

룬드 성당 동편 앱스와 리베리에트(위 겨울, 아래 봄) 룬드 성당 동쪽 앱스 부분이다. 룬드성당을 스칸디나비아의 대표적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이라 부르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저런 앱스 때문이다. 왼쪽의 붉은 지붕의 건물은 원래 성당의 도서 관이었다고 한다. 룬드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다. 성당 옆의 건물은 리베리에트, 15세기의 건물로 룬드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다. 성당의 도서관으로 쓰였던 건물이다.

 

성당 옆 광장, 동상의 주인공은 헨릭 샤타우(Henrik Shatau)인데, 그는 이곳 성당의 주임신부였다. 18세기 그는 스웨덴 남부의 종교지도자로서 당시 개신교계에서 유행했던 대각성 운동의 선구자였다. 동상 뒤의 건물이 리베리에트, 지금은 성당의 순례자 기념관이지만 과거에는 성당 도서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