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박찬운 교수 2020. 7. 19. 10:19

 
공직에 있다 보니 자유롭게 글을 써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어렵다. 공직이 준 원치 않는 쉼이다. 당분간 정치와 무관한 이야기를 써 블로그에 저장해두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듯. 영화가 그 하나의 장르다. 어제에 이어 오늘 또 하나의 영화를 정리해 본다.

<모터 사이클 다이어리>

이 영화는 브라질 출신의 감독 윌터 살레스가 2004년 내놓은 작품으로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한 바 있다.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1928-1967)의 젊은 시절 남미여행을 영화화한 것이다.
 

에르네스토(뒤)와 알베르토 그리고 그들의 애마 포데로사

 
20세기 남미의 인물 중에서 체 게바라만큼 흥미로운 사람은 없다. 그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념과 관계없이, 그의 순수함과 열정 그리고 인간애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의 39년의 짧은 인생은 뜨겁고 순수하고 희생적이었다. 그의 어록 중 가장 알려진 이 말이 그의 삶 전체를 대변하리라.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우리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영화에 나오는 에르네스토(가엘 가르시아 베르날)는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의대 졸업을 앞둔 전도유망한 청년이다.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친구이자 6살 위인 알베르토(로드리고 드 라 세르나)와 함께 애마인 중고 오토바이 포데로사를 몰고, 남미대륙을 여행할 것을 결심한다. 아마도 1950년대 남미의 젊은이들 사이에선 이런 여행이 하나의 꿈이었던 것 같다. 특히 진보주의자들 사이에선 그런 도전이야말로 남미 민중의 삶을 직접 보기 위한 기회였을 것이다.
 

게바라는 힘든 하루가 끝나고 친구가 곯아떨어져도 불을 밝혀 일기를 쓰고 책을 읽었다. 그의 이런 버릇은 그가 후일 게릴라 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기름을 가장 많이 쓰는 게릴라! 이 영화가 나올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쓴 다이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알베르토도 기록을 남겼지만...

 
영화의 맨 마지막에서 에르네스트가 직접 말하지만, 이 여행은 그의 인생을 획기적으로 바꾼 일대 사건이었다. 이 여행으로 그는 남미민중이 어떤 삶을 사는 지를 확실히 목격했고, 그것이 어떤 이유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 민중이 해방되기 위해선 어떤 것이 필요한지를 깨닫는다. 반년간의 남미여행으로 체 게바라의 인생은 그 전과 후로 나누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2시간 조금 넘게, 에르네스토 삶의 영감의 원천이 된 몇 가지 경험을 보여준다. 내 눈에 들어와 기억 속에 간직한 몇 장면을 이야기해 보자. 초반 장면 중 돈 15불에 관한 이야기. 애인 치치나가 장도에 오르는 에르네스토에게 미화 15불을 준다. 당시 화폐가치로선 꽤 큰돈인 모양이다. 장난끼 넘치는 알베르토는 끊임없이 에르네스토를 유혹해 그 돈을 쓰도록 한다. 배가 고플 때는 그 돈으로 한번 배불리 먹어보자고, 포데로사가 고장 나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어 도보여행을 하게된 때는 차를 타고 가자고... 이런 유혹을 에르네스토는 단호히 거절한다. 그 돈은 치치나를 위해 선물을 사야 할 돈이라고.

그러나 그 돈은 칠레의 어느 광산에서 만난 젊은 부부의 손으로 들어간다. 자본가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광산으로 쫒겨 들어온 노동자 부부를 보는 순간, 에르네스토는 그 금쪽같은 돈 전부를 아낌없이 내놓는다.

험난한 여행 속에서도 낭만은 있다. 알베르토는 어딜 가도 웃음과 로맨스를 달고 다닌다. 포데로사를 몰고 어느 마을에 도착해 댄스파티에 참석한다. 거기에서 에르네스토를 유혹하는 여인, 춤을 추다가 그를 꼬여 밖을 나가려 하다가, 남편에게 들키고 만다. 그러자 그녀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에르네스토를 치한으로 몬다. 에르네스토와 알베르토는 출행랑을 치고 모터사이클 페달을 밟는다.
 

산 파블로 한센인촌을 떠나는 두 사람, 한센인들은 이들의 헌신적인 봉사에 눈물로 환송한다.

 
아무래도 이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페루의 산 파블로 한센인촌에서의 봉사활동이다. 두 사람은 이곳에서 3주 동안 헌신적인 봉사활동에 참여한다. 당시 이 한센인촌에선 누구도 한센인의 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러나 에르네스토는 한센병의 특성을 이해했던지 환자의 손을 잡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실비아라는 젊은 여자는 수술을 받아야 함에도 삶을 포기한 듯 누워만 있다. 에르네스토는 그녀에게 다가가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용기를 준다. 그 덕에 그녀는 수술을 하고...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에르네스토의 24세 생일을 맞이해 축하 파티가 열리는 장면이다. 병원 관계자와 즐거운 파티를 한 다음 그는 강 건너 한센인 마을을 향해 수영을 하기 시작한다.
누구도 수영으로 건너보지 못한 거리다. 그의 생일을 한센인과 함께 하기 위함이다. 천신만고 끝에 한센인들의 성원에 힙입어 그는 마을로 도착해 그들로부터 진정어린 축하를 받는다.

영화의 마지막에 자막이 흐른다. 에르네스토가 후일 체 게바라로 불려지며 39세의 삶을 어떻게 살았는지, 그리고 친구 알베르토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그는 게바라가 쿠바 혁명에 참여한 후 게바라의 초청으로 쿠바로 와 의대를 설립, 헌신하다가 2011년 88세의 일기로 사망). 영화를 보면서 맨 마지막 자막을 이렇게 자세히 본 적이 있었는가. 내 마음에 잔잔한 감동이 울리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