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영화 1987과 안상수 검사

박찬운 교수 2018. 1. 22. 14:20

영화 1987과 안상수 검사



<사진은 안상수 시장이 1995년에 쓴 책 '이제야 마침표를 찍는다'>



어제 뒤늦게 영화 1987을 보았다. 가슴이 먹먹했다.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으로서 할 말이 많다. 그럼에도 그것들은 다음 기회에 말하자. 우선 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주요 모티브 중의 하나인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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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가 맡은 최환 검사. 그는 당시 서울지검 공안부장으로 사건 초기 경찰이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시신을 부검 없이 화장하려고 한 것을 막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영화 내용처럼 그 이상의 역할을 한지는 나로선 믿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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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부검검사는 현재 창원시장인 안상수 검사였다. 형사부 검사였던 안검사는 당직 검사로 부검을 담당했고, 이어 이 사건의 수사검사로 활동했기 때문에, 세간엔 그의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다.이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는 데에는 영화에서 보듯 오연상 중대 부속병원 의사와 부검 집도의였던 국과수 황적준 박사의 공이 컸다. 특히 황 박사가 자신의 소신을 지키지 못하고, 경찰의 회유에 넘어가 사인을 왜곡했다면. 이 사건의 진상은 어찌 되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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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검사는 황 박사가 이렇게 솔직하게 부검결과를 말한 데에는 자신의 역할도 상당했다고 말해 왔다. 1995년 출간한 박종철 사건 수사검사일지 '이제야 마침표를 찍는다'에서 그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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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검이 이뤄진 한양대 병원엔 경찰이 진을 치고 있어 제대로 된 부검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안 검사는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기지를 발휘해(부검 전 기도) 분위기를 잡은 다음, 경찰관계자를 내보내고 황박사로 하여금 자유롭게 부검케 하고, 부검 직후 현장에서 물고문에 의한 질식사라는 소견을 받았다. 그럼으로써 후일 황 박사가 경찰로부터 압력을 받아 소신을 바꾸는 걸 미연에 방지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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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영화에선 이 부분이 거의 그냥 지나가고 말았다. 최환 부장의 지휘를 받는 띨박한 표 검사가 나와, 형식적으로 부검에 임하려다, 최부장으로부터 쪼인트 까이는 장면만 나올 뿐이다. 부검 검사였던 안시장이 영화 속 표 검사를 보면, 몹시 섭섭해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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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수 시장은 박종철 사건 수사를 끝으로 검찰을 나와, 변호사로 일하다가 그 사건을 자산으로,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한다. 박종철 사건에 대해 그가 털어놓은 것은, 부검 외에도, 당시 검찰 내부에선 자신을 비롯해 여러 검사들이(이 사건 주임검사는 신창언 부장검사) 이 사건의 진상을 캐기 위해 무던히 애썼지만, 당시 권력기관과의 파워 게임에서 검찰이 지는 바람에 제대로 수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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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표적인 게 범인축소와 은폐다. 안 검사는 사건이 일어난 한 달 후 조한경과 강진규를 면담하는 과정에서, 고문 가담자가 더 있다는 것을 알고 재수사를 시도했으나, 상부의 허가를 받지 못해 시간만 보냈다고 한다. 이러는 사이, 영화에서처럼 정의구현사제단이 이 사실을 터뜨림으로서, 검찰은 타의에 의한 추가 수사를 하게 된다. 검찰 입장으로선 치욕스런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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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기엔 안상수 시장의 박종철 사건수사 증언이 크게 틀리진 않을 거로 본다. 그에게 약간의 공도 있었던 것도 부인할 순 없다. 다만 범인 축소를 알고도 수사하지 못한 부분은, 시대와 관계없이, 그 자신과 검찰에겐 오욕의 역사였다고 평가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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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영화 제작자들에겐 그 점을 중요시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검사들의 보이지 않던 내부 투쟁은 1987년 역사에서 결코 명함을 내밀 수 없다는 것, 그 역사는 오로지 정권에 항거하는 시민의 힘에 의해 얻어졌다는 것 말이다. 이것이 안상수 검사가 영화에서 배제된 이유가 아닐까, 나는 그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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