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데이비드 게일(The Life of David Gale)

박찬운 교수 2020. 7. 25. 10:28

 

 

 

사형을 주제로 한 영화는 매우 많다. 사형제도를 비판하는 영화는 대체로 사형의 잔혹함을 극적으로 묘사한다. 그런 유론 아주 옛날 영화지만 수잔 헤이워드 주연의 <나는 살고 싶다>가 볼만하다. 사형이 확정된 한 여인이 집행 때까지 얼마나 큰 고통을 겪는지 보는 이마저 공포로 몰아 넣는다. (사형은 국가가 인간의 생명을 법의 이름 하에 거두는 것이 가장 큰 문제지만, 집행 때까지의 기다림 그 자체도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다. 미국은 그 대기 평균 기간이 9년에 이른다고 한다.)

세계에서 사형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는 중국이고 그 다음쯤이 미국이다. 중국의 사형은 인권을 논의하는 사람들로선 인권선진국과는 동일 선상에서 말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니, 영화계를 주름잡는 사형영화는 거의 모두 미국의 사형을 소재로 한다. 유럽의 대부분 나라는 이미 사형이 폐지되었거나 사실상 폐지되었기 때문에 이런 소재의 영화가 있기 어렵다.

 

 

하버드 출신의 천재 철학교수 데이비드 게일

 

우연히 넷 플릭스에서 사형 영화를 하나 보았다. 앨런 파커 감독의 2003년 작 <데이비드 게일>. 처음엔 그저 스릴러 영화로 알고 화면에 집중했는데, 시간이 가면서, 이게 그런 영화가 아닌, 본격적으로 사형폐지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영화의 자세한 내용은 짧은 글로 소개하긴 어렵다. 영화가 무슨 탐정영화처럼 스토리가 매우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저 내가 보고 이해하는 선에서, 후일 내 기억을 위해 정리하고자 한다.

텍사스의 주도 오스틴 소재 텍사스 주립대학(UT)의 철학과 교수 데이비드 게일(케빈 스페이시)은 하버드 출신으로 저서가 두 권이나 있는 역량 있는 학자다. 그런 사람이 사형수가 되어 집행을 며칠 앞두고 언론사 인터뷰를 한다. 이 인터뷰를 담당하는 기자가 벳시 블룸(케이트 윈슬렛). 벳시는 처음엔 긴가민가했지만 인터뷰가 지속될수록 게일은 무고하고 그에 대한 사형선고는 잘못된 것임을 확신하게 된다. 영화는 게일의 진술을 토대로 과거 화면과 벳시와 동료 인턴기자 잭이 진실을 밝히고자 동분서주하는 현재 화면으로 채워진다.

 

 

사형폐지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게일과 절친 콘스탄스

 게일은 여자 동료 콘스탄스(로라 리니) 함께 사형폐지 운동단체인 Death Watch의 열렬한 회원으로 이 단체를 이끌면서 활발하게 활동한다. 게일은 주지사와 일 대 일 토론 프로그램에도 나가서 열띤 토론으로 사형폐지의 당위성을 알린다.

이런 게일 앞에 시련이 다가온다. 강의 시간에 지각을 하고 성적이 나쁜 여학생 베를린이 성적을 받기 위해 게일을 유혹하나 실패한다. 이 과정에서 베를린을 수치심을 느끼고 게일에게 보복하기 위해 또 다른 시도를 한다. 야간 파티에서 게일이 술에 취해 있을 때, 베를린은 화장실에서 다시 그를 유혹하고, 게일은 결국 이를 이기지 못한다. 이 일이 있은 후 베를린은 자신이 게일로부터 강간을 당했다고 신고하고 사라진다. 비록 이 사건으로 게일은 감옥까진 가지 않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게일의 교수생활과 가정생활은 엉망이 된 것이다. 그의 모든 명성은 사라졌다.

 

 

게일이 강간살인범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는 빛치와 잭

 

이런 상황에서 게일의 운명을 결정하는 사건이 터진다. 콘스탄스가 살해된 것이다. 그것도 강간을 하고 나체 상태에서 뒷수갑을 채워 고무봉투를 씌워 질식시켜 죽여버련 것이다. 그리고 위에선 수갑열쇠가 발견되었다. 이 사건의 범인은? 게일이었다. 하버드 대학 출신의 천재 철학교수가 동료를 강간해 죽이다니! 게일은 사형선고를 받았고 그 후 9년을 감옥에 있다가 이제 집행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과연 게일이 콘스탄스를 죽인 것인가?

빗치의 뛰어난 직관력과 민완한 조사로 밝혀진 것은 콘스탄스는 게일에 의해 살해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친구 더스티의 협조 아래 자살했다는 것. 콘스탄스는 당시 백혈병을 앓아 시한부 인생이었다. 자살의 동기가 있었던 것이다. 게일은 누명을 쓰고 그가 그리도 반대해 온 사형제도의 희생양이 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진실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 빗치는 사형집행 몇 분 전에 그 것을 알리기 위해 집행현장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그러나...그녀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게일의 사형집행은 종료. 빗치의 억장이 무너진다. 이런 억울한 일이 어디 있는가...이것이 바로 사형제도의 문제다! 콘스탄스가 자살하는 장면을 보는 시민들은 사형제도를 맹렬히 비판한다.

 

 

사형집행 나흘 전부터 3일 동안 게일은 기자 빗치를 만나 인터뷰를 한다.

 

영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우리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사건의 전모를 알 수 있는 테이프 한 개가 빗치에게 우송된다. 콘스탄스가 자살하는 장면과 그것을 도와주는 사람, 거기에... 아! 게일이 보인다. 도대체 이게 무엇이란 말인가.

사실은 이런 것이다. 게일과 콘스탄스는 사형폐지를 위해 서로 순교할 것을 결심한다. 콘스탄스가 자살하면서 이를 게일에 의한 강간살인으로 위장한다. 게일은 그것으로 사형선고를 받는다. 게일은 사형집행 전 민완한 기자 빗치를 불러들여, 콘스탄스의 죽음이 타살이 아니고 자살임을 밝히도록 한다. 그리고 자신이 억울하게 죽는 것을 만인에게 보여준다. 게일은 이 사건이 자살사건이라는 것을 충분히 밝힐 수 있음에도 사형집행에 응한 것이다. 영화의 맨 마지막 부분 비디오 테이프의 그의 얼굴은 친구의 죽음과 자신에 대한 사형집행이 그 자신이 기획한 것임을 밝히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다. 이 모든 죽음이 사형폐지를 위한 순교라는 것이다!


사형폐지를 주장하는 방법이 매우 복잡하다. 하지만 여운이 남는 영화다. 영화를 보면서 사형제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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