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티벳에서의 7년

박찬운 교수 2020. 7. 21. 05:56

 

 

 

 

 

주말 동안 연속 3개의 영화를 보았다. 마지막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브래드 피트 주연의 1997년 작 <티벳에서의 7년>(감독 장 자크 아노). 제작된지 20년이 넘었으니 이미 고전 축에 속하는 영화다. 아마도 브래드 피트가 출연한 영화 중에선 가장 철학적 내용이 많이 담긴 영화가 아닐까. 잊지 않기 위해 스토리를 정리하면 이렇다.

 

 

 

피타와 함께 히말라야를 넘어 천신만고 끝에 티벳에 도착하는 하인리히

 

 

 

오스트리아 출신 하인리히 하러는 유럽의 유명 산악인이다. 고집스럽고 자아가 똘똘 뭉친 사나이다. 그는 1939년 2차 세계 대전을 앞두고 임신한 아내의 원망을 받으며 히말라야 낭가 파르바트(히말라야 14좌 중 9번째 높이, 8,125미터)를 향해 떠난다. 당시 이 산은 독일계 산악인들에겐 난공불락이었다. 번번이 등정에 실패하자 나치는 하인리히에 기대를 걸고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하인리히 원정단은 순조로운 초반등정에도 불구하고 예기치 않은 사고와 기상악화로 결국 정상을 앞둔 지점에서 철수를 결정한다. 설상가상 하산 중 2차 대전의 발발로 영국군의 포로로 잡힌다. 영화를 1, 2부로 나눈다면, 여기까지가 대체로 1부에 해당한다.

하인리히는 인도 소재 영국군 포로 수용소를 탈출해, 동료 산악인 피터와 함께, 히말라야를 넘어 천신만고 끝에 티벳으로 들어간다. 이들이 처음부터 특별히 티벳 불교에 흥미를 있었기 때문에 그곳을 찾아 간 것이 아니다. 그저 가고자 했던 중국은 너무 멀고 티벳은 가까운 곳에 위치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거기서 운명적으로 티벳 불교를 만나 삶의 근본적인 물음에 답한다. 피터는 티벳 여인(옷 재단사)과 결혼해 새로운 티벳인으로 재탄생한다. 하인리히는 어린 소년 14대 달라이 라마와의 만남을 통해 삶의 극적인 변화를 체험한다. 그에게 있어 티벳생활은 인간의 삶을 성찰하는 기회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라사를 향해 오체투지를 이어가는 티벳인의 모습에서 만인의 박수를 받으며 1등을 추구해 온 자신의 모습이 초라해 보인다. 전쟁 중 아내와의 이혼, 아들의 탄생과 아내의 재혼...마음속 번민은 컸지만 티벳에서의 7년은 그의 마음을 평화롭게 만든다.

 

 

인민해방군이 티벳에 도착했다. 승려들이 몇 날 며칠 정성스레 만든 만다라를 행방군 대표가 짓밟고 지나간다.

 

 

전쟁은 끝났다. 그러나 이제 티벳의 정치적 격동기가 시작되었다. 영화는 중국 공산정부가 티벳의 직접 지배를 선언하고 군대를 보내 티벳인을 학살하고 사원을 파괴하는 것을 고발한다.

 

 

 

하인리히와 함께 영국군 포로수용소를 탈출한 피터, 그는 티벳에서 티벳여인을 만나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나는 작년 여름 티벳을 여행했다. 영화 속의 여러 장면이 내 여행 동선과 겹친다. 라사의 포탈라궁, 티벳인의 성지이자 오체투지 순례의 최종 목적지 조캉사원과 그 주변 바코르 광장, 달라이 라마의 여름궁전...순박한 티벳인들의 구릿빛 얼굴...만일 내가 티벳을 모른채 이 영화를 보았다면 그저 미지의 불타세계에서 벌어진 어느 서구인의 이채로운 경험 정도로 이 영화를 받아들였을지 모른다.

 

 

하인리히와 달라이 라마 14세, 달라이 라마는 1959년 인도로 망명하여 다람살라에 망명정부를 세웠다. 이 둘은 지금까지 친구관계를 유지한다고 한다.

 

 

내 경험에 비춰본 이 영화는 나름 기억을 새롭게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갈증을 일으키는 지점도 있다. 영화는 라사를 비롯해 매우 한정적인 공간을 보여줌으로써 티벳의 신비로운 속살에 접근하는 데엔 성공하지 못했다. 암드록초나 남초 같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영묘한 호수를 보여주었다면... 그리고 그곳을 순례하는 티벳인을 보여주었다면... 하인리히 삶에서 달라이 라마와의 만남이 극적인 의미가 있었다면 그들의 대화에 좀 더 비중을 두었으면 어땠을까? 그러면 영화가 재미없었을까?

인간으로서의 삶에서 서구인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일까, 영화는 어떤 길이 있음을 강력히 제시하는가. 그런 면에서 이 영화가 주인공의 내면세계를 드러내는 데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 영화가 서구인들을 위한 불교계몽 영화는 아닌 것도 분명하다. 그렇지만 티벳에서의 7년의 삶이, 우리 모두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는 관전 내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내 친구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는 것을 머뭇거릴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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