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정치 문제에 의견을 개진하지 않았다. 독립기관에서 일하다 보니 개인의 정치적 생각을 공개적으로 밝힐 수 없었다. 임기를 끝내고 자유인이 되었음에도 신중함은 계속되고 있다. 오늘 그 신중함에서 잠시 떨어져 나와 민주당에 고언을 한다. 이 나라의 정치 발전을 위해선 무엇보다 민주당이 바로 서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바람은 무엇일까?
민주당 혁신위가 1호 혁신안으로 의원 불체포 특권 포기를 발표했다. 나는 그 보도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런 것으로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그렇게 하면 민주당 지지자들과 양쪽 어디에도 가담하지 않은 중간지대 40% 국민들이 감동을 받아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을 선택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감동할만한 제안이 아니다. 국회와 국회의원의 입법권 보장을 위한 헌법적 특권을 당론으로 무제한 포기하겠다고 하는 발상 자체가 무리하다(그것이 꼭 필요하면 의원 불체포 특권을 헌법에서 없애겠다는 헌법 개정 공약을 하는 것이 맞다). 그런 정도는 필요한 경우 당론으로 정하면 될 일이다.
혁신위의 목표가 무엇인가? 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를 올려 내년 총선에 승리하고 그 여세를 몰아 차기 대선에서 정권을 다시 잡도록 민주당을 환골탈태시키겠다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국민이 민주당에 무엇을 진실로 원하는지 점검하고 그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것이 혁신위가 할 일이다. 그저 잠시 언론에 오르내리는 문제에 천착해 그에 대한 대책을 제시하는 방법을 제안해 보았자 감동은커녕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평가를 받기 십상이다.
국민은 민주당에 무엇을 원하는가? 그 답을 구하기 위해선 전문적인 조사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의 진단이 필요하고 세밀한 여론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기존 민주당 지지자와 중간지대의 유권자들이 민주당에 바라는 것, 그것이 이루어진다면 민주당을 적극 지지할 수 있는 것, 바로 그것을 찾아내 답을 주어야 한다.
내가 민주당에 바라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지난 1년간 민주당을 보면서 항상 이야기하고 싶었던 내용이다.
1. 공천혁명
민주당은 무능했다. 지지자들은 선수교체를 통해 민주당을 새롭게 건설하고 싶어 한다. 이것이 민주당 혁신의 최대 과제다.
문재인 정권은 국민 80%의 지지 속에서 출범했다. 그 여세를 몰아 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서 다수당이 되었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국민 입장에선 문재인 정권에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해주었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권의 개혁 프로그램은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 국민의 평가다. 검찰개혁 하나만 보아도 검찰을 들쑤셔놓긴 했지만 무엇 하나 속 시원하게 개혁한 게 없다. 국민 눈엔 문재인 정권은 실패했고, 민주당은 무능했다. 민주당에 대한 지지도가 30-40%의 박스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국민의 실망감이 여전하다는 반증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불만을 느끼는 국민이 60%인데도 그 국민 중 상당수는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차기 총선과 대선에서 이기기 위해선 국민에게 과거와 확실히 다른 면모를 보여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민주당의 기존 의원을 대거 신진세력으로 교체해야 한다.
혁신위는 무엇보다 그 방법론을 내놓아야 한다. 어떻게 공천혁명을 이루어 내 민주당을 유능한 정당으로 탈바꿈시켜 낼지 그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특히 2030세대의 정치적 대표성을 다음 선거에서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 이것은 현역 의원들과의 싸움을 의미한다. 이 싸움을 외면하면서 혁신을 하려고 하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2. 정책 전략 혁신
지난 1년간 민주당은 윤석열 정권과의 싸움에서 도무지 신뢰하기 힘든 잡탕 전략을 구사했다. 윤석열 정권에서 민주당은 선명하고 현명한 전략을 구사해야 하고 그것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
민주당은 야당임을 직시해야 한다. 민주당이 의회 다수당이라고 여당식 사고를 하면 안 된다. 민주당이 다수당이라고 해도 국민의 피부에 와닿는 정책을 주도할 수는 없는 게 현실이다. 정책의 실현은 정부와 여당의 몫이지 야당의 몫이 아니다. 섣불리 민주당이 국민에게 특정 정책을 약속해보았자 공수표가 되기 쉽다. 민주당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분간해 민주당다운 대여, 대정부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정부를 견재하고 정부의 독주를 막는 것은 의회 다수당인 민주당의 의지와 전략에 달려 있다. 정부가 새로운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선 법률과 예산이 필요하다. 민주당은 의회의 다수당으로 정부와 여당의 새로운 정책에 제동을 걸 수 있다. 정부와 여당의 새로운 정책에 동의하기 어렵다면 야당의 의회 지배력을 통해 무산시켜야 한다. 이것은 민주당이 해야 하고 할 수 있다. 청와대의 용산 이전, 그에 따른 국방부 및 합참 등의 연쇄적인 이동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천문학적인 비용 발생, 안보 공백 등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우려한다. 민주당은 이러한 우려에 대해 의회 지배력을 통해 확실하게 정부와 여당을 견재함으로써 화답해야 했다. 지금 상황이 여기까지 오게 된 데에는 민주당의 뜨뜨미지근한 대응도 한몫했음을 반성해야 한다.
정책을 제시해 이번 정부 내에서 뭔가를 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하는 일은 삼갈 일이다. 이런 것은 정부 및 여당의 협조가 없으면 안 된다. 다수당이라는 자만감에 정부와 여당의 협조가 난망한 정책을 발표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국민을 잠시 현혹시킬 수는 있지만 오래 가지 못한다.
김건희 특검법만 봐도 그렇다. 이것은 윤대통령이 거부하면 성사되기 어렵다. 그런데도 여론 분위기에 맞춰 민주당이 그것을 추진하겠다고 하면 그것은 한낱 정치적 공세에 불과하다. 지금 현실이 그렇게 되지 않았는가. 말만 해놓고 진전이 없다. 여당과 대통령에게 책임을 돌려 다음 선거에 유리한 국면을 만들겠다는 것은 얄팍한 수다. 이 정부에서 어떻게 해서라도 특검을 해야겠다고 하면 차선의 방법일지라도 기존의 상설 특검법 카드를 써서라도 해야 한다. 괜히 되지도 않을 일을 국민에게 약속하고 의회 내에서 설전만 벌이는 것은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실망만 안겨 줄 것이다.
대통령의 거부권이 예상되는 법률안을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여 국회 통과를 시키는 것도 큰 전략이 될 수 없다. 반드시 통과시켜 그 법률을 집행하고자 한다면 민주당의 의회 지배력을 지렛대로 협상해야 한다. 그것 없이 법률만 통과시키겠다고 하는 식의 의회 전략은 순간적으론 짜릿할지 모르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실속 없다는 것이 드러날 것이다. 그것은 지지자들에게 민주당의 무력감만 실감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문제는 이런 의회 전략을 어떻게 짜고 그것을 어떻게 실천할지다. 혁신위는 이 부분에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지지자들과 중간지대 유권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민주당의 의회 전략이 가능할 것인가?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는 각종 정책에서 민주당이 여당을 압도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해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당을 재정비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한 마디! 솔직하게 말해 민주당 혁신위에 큰 기대를 걸기 어렵다. 그 정도의 인물들로 수많은 문제가 상존한 거대 야당을 탈바꿈시킬 수 있을까? 좀 더 훌륭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을 모으고 확실한 권한을 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2023.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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