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 학부 강의(자유란 무엇인가)를 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한다. 내 강의에 중국 학생들이 대거 들어왔다. 정확히 세어 보진 않았지만 20여 명 되지 않을까 싶다. 과거 학부 강의 때 중국 학생들이 한두 명 있었던 것은 기억하지만 이번처럼 많은 적이 없다. 나로선 이렇게 많은 중국 학생들이 들어왔으니 이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에게 기억에 남는 유익한 강의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강의실에 갈 때마다 오늘은 이들을 위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했다.
강의를 하면서 말을 조심하려고 노력했다. 교수도 사람인지라 가끔은 실수를 한다. 인권문제에서 중국은 국제사회로부터 큰 비판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중국 관련 주제가 나오면 특히 조심해야 한다. 우리끼리만 있으면 편하게 말할 내용도 중국 학생들 앞에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곤란하다. 자칫 오해하기 쉽고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학기 전체주의의 인권을 이야기할 때는 자주 중국 상황이 그려졌다. 예를 들면 조지 오웰의 <1984>를 강독하면서 빅브라더가 전 국민을 텔리스크린으로 감시한다는 내용을 볼 때 중국의 CCTV 현황과 얼굴 인식 기술이 떠올랐다. 그렇지만 중국 이야기는 피하고 대신 우리나라의 상황을 이야기하며 기술발전이 우리 사회를 점점 통제사회로 만들어 가고 있다고 했다. 아마 중국 학생들은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머릿속에선 자신들의 조국 상황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 정도면 교육 효과는 충분하지 않은가.
나는 강의를 하면서 중국 학생들의 자존심을 세워 주려고 노력했다. 그 어떤 강의 때보다 칠판에 한자를 많이 썼다. 그들이 내 강의를 잘 이해하도록 내가 해줄 수 있는 서비스였다. 자주 중국 고전 이야기를 많이 했다. 공자의 말씀을 이야기하면서 2500년 전 성현의 말씀이 지금도 울림이 크다고 했다. 공자의 말씀은 중국의 고유사상을 넘어 인류의 보편철학이라고 말했다. 아마 중국 학생들은 나의 이런 말에서 상당한 긍지를 느꼈을 것이다.
일개 강의를 하는 교수도 수강생 중 중국 학생이 많으면 이렇게 말을 조심하면서 강의를 한다. 그들의 자존심을 살려주면서 대한민국에서 그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교육이 무엇인지 늘 고민하면서 강의를 한다.
이번 정부의 외교정책은 지혜로운 외교적 스탠스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의 전통적인 외교정책인 등거리 외교를 완전 포기하고 완전 몰빵외교에 들어섰다. 미국이 한국과 일본을 동원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외교정책에 한국은 속수무책으로 빠져들고 있다. 국익을 위한 것이라면서도 정작 미국과 일본에 대해선 제대로 된 국익적 차원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미국 의회에서 공허한 자유란 말은 수십 번 이야기했지만 그 절호의 기회에 우리의 요구를 당당히 말하지 못했다. 그런데 또 다른 생명줄인 중국에 대해선 국민의 반중감정을 실어 시원하게 배짱 있는 당당 외교(?)를 펼쳐나간다. 중국의 보복쯤은 문제없다는 자세다.
백천간두란 이런 때에 사용되는 말이다. 지금 우리 외교의 현실이 그렇다. 여야의 공방을 떠나 우리 정부가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 진짜 어떤 외교를 펼쳐나가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2023.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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