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LUND 의 추억

사진으로 추억하는 룬드6(죽음에 대하여)

박찬운 교수 2015. 12. 25. 20:09

-6- 사진으로 추억하는 룬드


죽음에 대하여

-공원묘지와 묘지공원의 차이-


 룬드 교회묘지공원 중앙대로, 학생과 주민은 룬드 시내로 나가기 위해 이 길을 통과해야 한다. 매일같이 묘지에 들어와야 하는 것이다.


룬드에 있었던 시절 내 일상사 중 가장 중요한 일은 산책이었다. 룬드 올드 타운 곳곳을 천천히 산보하며 성당, 광장, 공원 등을 돌아보았다. 점심 무렵에는 시내를 산책했고, 저녁에는 룬드 외곽을 산책했다. 이 산책에서 뺄 수 없는 코스가 있었으니 세미터리(묘지)였다. 한국에서라면 아무리 잘 꾸며 놓은 묘지라고 해도 그것은 일상과는 거리가 먼 공원식 묘지, 곧 공원묘지지만, 그곳은 사람들 일상의 사색의 공간으로서의 묘지식 공원, 곧 묘지공원이었다.


교회묘지 공원은 이런 아름드리 나무들이 빽빽히 심겨져 있다. 그 덕에 한 여름에 와도 시원한 그늘이 곳곳에 있다. 


대부분의 묘지는 2평 정도의 크기로 구획되어 있다. 주변은 숲이 울창해 고적한 묘지공원으로서의 격을 갖추었다.


룬드 시내에는 묘지공원이 두 개가 있다. 하나는 과거 룬드가 성벽에 의해 둘러싸인 성곽도시일 때 성 내에 조성된 묘지공원(보태니컬 공원 옆)이고, 또 하나는 이 묘지공원이 수용능력의 한계에 도달했을 때 성곽 밖에 만들어진 교회묘지공원(룬드대학 부속병원 건너 편)이다. 나는 이 두 공원 중 교회묘지공원을 특별히 좋아했다. 규모도 크고 곳곳에 벤치가 놓여 있어 사색의 공간으로선 그보다 좋은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교회묘지공원 벤치에 앉아 생각에 잠기거나 책을 읽고 일기를 썼다.


산책 도중 묘지공원에 도착하면 내가 자주 앉는 지정 벤치가 있었다. 마음이 심란할 때는 그곳을 찾아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안식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그곳 벤치에 앉아 책도 읽고 일기도 썼다. 그리운 사람 하나하나를 기억해 내기도 했다

룬드에 있던 시절 카톡을 많이 했는데 한국 시각으로 저녁 무렵 내게서 카톡문자나 사진을 받은 친구들이 있다면 그게 바로 이 묘지공원에서 보낸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순간이 눈에 선하다.

어느 가을 날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햇빛은 공원의 아름드리 나무 사이로 간간히 들어와 포근한 양지를 만들었다. 나는 바로 그곳에 앉아 부드러운 가을 태양을 즐기면서 하늘을 보기도 하고 공원을 둘러보았다

철학이란 학문이 무엇인지 몰라도 이런 환경 속에 철학자가 나오지 않으면 이상하리라. 생각해 보니 종교적 실존주의자 키에르케고르도 룬드에서 백 리도 떨어지지 않은 코펜하겐에서 살고 있었다. 그가 살던 시대도 이런 분위기는 코펜하겐 곳곳에서 경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묘지는 가족들의 취향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조성되어 있다. 이렇게 매우 자연적으로 조성한 묘지도 있다. 묘역에는 조금만 돌 하나와 그 옆의 벤치가 전부다. 봄이면 이곳에 이렇게 꽃이 핀다.


나는 묘소 하나하나를 둘러보며 거기에 있는 조그만 비석의 비문을 살폈다. 묘소마다 얼마나 많은 사연이 있을까? 그 중에는 이런 묘소도 있었다. 아주 작은 비문이 있고, 꽃 한 다발이 놓여 있고, 그 뒤에 벤치 하나가 놓여 있다. 묘소 앞의 저 벤치는 무엇일까? 생각할 것도 없이, 가족이 묘소를 둘러보면서 죽은 이를 회상할 때 잠시 앉는 곳이리라.


내가 좋아했던 묘지. 이곳 벤치엔 가족들이 산책을 하며 앉아 있었다. 망인에 대한 애뜻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가끔 어느 노부인이, 노신사가 묘소의 작은 벤치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석양의 노을 아래에서 그들은 먼저 간 남편을, 먼저 간 아내를, 먼저 간 어느 사랑하는 이를 회상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노인은 하루에 한번 씩 묘소를 다녀갔다. 올 때마다 그녀는 묘비 앞에 촛불을 켜고 갔다.


어느 묘지에는 화사한 꽃들이 이렇게 반발했다. 대부분의 묘지는 조그만 꽃밭을 조성해 봄부터 늦은 가을까지 예쁜 꽃을 볼 수 있다.  


교회묘지공원에는 이런 애뜻한 사연의 묘지도 있었다. 공원 중앙대로 변에 한 눈에 들어오는 묘지였는데, 다른 묘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예쁘게 장식된 묘지였다. 이 묘지의 주인공은 어린 꼬마다. 2007년 소년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가족들은 소년을 추모하기 위해 정성들여 묘지를 조성했.

 

어린 꼬마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자 가족들이 닌텐도 놀이를 하는 그 꼬마를 이렇게 조각해 놓았다. 할머니는 매일 이곳에 와 촛불을 켠다.


꼬마는 평소 닌텐도 놀이를 즐겼다. 가족은 이태리의 유명 조각가에게 부탁하여 천사에 의해 둘러싸인 채 닌텐도 놀이를 하는 소년 조각품을 이곳에 남겼다. 이곳엔 매일같이 소년의 할머니가 머물다가 간다. 할머니는 잠시 기도하고 손자를 추모하는 촛불에 불을 밝힌다.

룬드의 묘지는 사람들의 삶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교회묘지공원의 중앙도로는 룬드대학의 북쪽과 남쪽을 연결하는 주 통로 구실을 한다. 학생과 주민들은 룬드시내로 나가기 위해서는 이곳을 걸어서 혹은 자전거를 타고 통과해야 한다. 

룬드 사람들에겐 죽음이란 그리 두려운 게 아니다. 산 자는 산책 중에 죽은 영혼을 만난다. 그들은 죽은 영혼과 매일 만나는 것을 일상생활로 여기며 산다. 망자는 급한 일이 있어 먼저 하늘나라에 갔을 뿐 결코 그들 사이에선 영원한 이별은 없다. 곧 만날 남편이요, 아내요, 연인이다.

나의 어머니는 15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다. 양지바른 공원묘지에 모셨지만 서울에서 10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라 자주 간다는 게 쉽지 않다. 명절 날도 찾아뵙지 못하는 때도 있다. 어머니가 내 사는 동네의 작은 공원에 예쁜 비문과 함께 계시다면 얼마나 좋을까. 산책을 좋아하는 아들이 매일같이 꽃 한 송이 갖다 드리고 때때로 촛불을 켜드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어찌하여 망자를 저 멀리 보내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 우리는 어찌하여 밤이 되면 귀신이 춤을 추는 곳에 망자를 묻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 산 자가 죽은 영혼과 함께 살 수는 없는 것이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