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st Essays/깊은 생각, 단순한 삶

새벽의 작은 결심

박찬운 교수 2023. 1. 1. 04:12

영국 헤이스팅스(2016년 촬영)

 

또 한 해의 마지막에 섰습니다. 매년 이때가 되면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맞는 결심을 했지만 언젠가부터 그저 조용히 보내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런 저를 돌아보면서 마지막 날 새벽 잠시 생각에 잠깁니다.

올해 저는 환갑을 넘겼습니다. 육십갑자 한 바퀴를 돌고 새로운 육십갑자를 향해 발을 내딛는 해였습니다. 이제 머리는 반백이 아니라 올백이 되었고 어딜 가나 영감님 소리를 듣습니다. 가끔 다리가 아프면 지하철에서 노약자석에 앉는 것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3년 임기의 인권위원이란 공직도 이제 마지막을 향해 달려갑니다. 제 인생에서 일로 인해 몇 번 몰입한 시기가 있었는데, 아마 지난 3년이 그런 시기의 하나로 기억될 것입니다. 제 능력의 한계가 있었지만 일에 대해선 큰 여한이 없습니다. 그만큼 열심히 일했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에 집중했고, 인권의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기를 썼습니다. 제 일과 성과에 대해서는 시간이 흐르면서 인권위 구성원과 밖의 국민들이 평가를 할 것입니다. 저는 담담히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저는 곧 학교로 돌아갑니다. 다음 학기부터는 로스쿨의 교수로서 후학 양성에 힘쓸 것입니다. 잠시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세상을 주유하며 고갈된 몸과 마음을 충전하고 싶지만 당분간은 그럴 여유가 없을 것 같습니다. 내년 여름방학이 되어서야 그럴 기회가 오지 않을까요? 그때가 되면 미국에 사는 자식 집도 가보고, 제 여행 버킷리스트 중 아직 실행하지 못한 남미여행과 세 번째 실크로드 문명기행도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그것을 위해 요즘 퇴근을 하면 열심히 운동을 하고 체중도 감량합니다. 가벼운 몸과 튼튼한 다리가 없다면 세상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일은 꿈으로 그치기 때문입니다.

지난 3년간 가장 힘든 것 중 하나는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쓰고 싶은 글을 쓰지 못한 것입니다. 공직자 그중에서도 독립기관에서 일하는 고위 공직자가 함부로 말하고 글을 쓰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그곳에서 일하는 그날부터 말하기와 글쓰기를 자제해 왔습니다. 이제 그 족쇄도 풀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존경하는 노암 촘스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지식인의 책무는 진실을 말하고 거짓을 드러내는 것이다”(It is the responsibility of intellectuals to speak the truth and to expose lies). 이제 인생 후반기에 들어선 제가 경구로 삼아야 할 말입니다. 곧 제 말을 들을 것이고 제 글을 보게 될 것입니다. 지식인으로서 대한민국에 사는 한 제가 해야 할 책무입니다.

저를 잊지 않으신 페친 여러분, 올 한 해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가오는 새해 큰 복 받으시길 빕니다.

(2022. 12.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