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교육

암울한 한국 법학과 나의 자화상

박찬운 교수 2016. 9. 8. 07:06

암울한 한국 법학과 나의 자화상


내가 있는 런던대학(SOAS)은 공대가 없는 순수 문과대학으로 지역학으로 유명하다.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각국의 웬만한 학술도서는 이곳에서 다 접할 수가 있다. 그래도 법학분야에서야 무슨 제대로 된 컬렉션을 가질 수 있겠는가? 별 기대를 갖지 않고 도서관을 돌아보다 깜짝 놀랐다. 이 세 지역의 각국 법률관련 도서가 나라별로 컬렉션되어 있는 게 아닌가. 아프리카의 들어보지도 못한 나라의 법률관계 도서가 영불자료 및 때론 현지어 자료로 서가에 그득 꽂혀 있다.


이곳이 옥스포드도 아니고 케임브리지가 아니라고 무시해선 안 된다. 이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나이지리아 법학도, 우간다 법학도 연구할 수 있고, 아랍법학을 넘어 한국, 일본, 중국 그리고 아시아 여러 나라의 법학을 연구하는 데 지장이 없다.


나는 런던대학의 도서관 서가를 둘러보다 대한민국 법학을 생각한다. 우리나라에 말레이시아 법학을 전공하는 학자가 있는가? 우리나라에 인도네시아 법학을 전공하는 학자가 있는가?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물론 나이지리아를 비롯해 아프리카 법학이나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아랍법학을 전공했다는 사람은 더더욱 들어보지 못했다. 이게 한국 법학의 현실이다.

......

“L 박사, 미안해요. 참 안타깝군요. 이번에는 설강되는가 했는데 또 폐강되다니... 수업준비 많이 했을 텐데... 참 미안합니다.”


며칠 전 한국의 L 박사와 이런 문자를 나누었다. 그는 내가 그 실력을 인정하는 몇 안 되는 국제인권법학계의 유망주다. 나는 그에게 한국을 떠나면서 이번 학기 우리 로스쿨 국제인권법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내 부탁을 선뜻 받아들여 지난 여름 그 복중 더위에도 수업준비를 위해 힘을 쏟았다.


그런데 결국 그 강의가 폐강되고 말았다. 나도 작년 이 강의를 살려보려고 했지만 폐강의 쓴맛을 당한 터다. 연속 2년 째 폐강! 사실 이 강의는 우리 로스쿨 특성화 영역인 인권법 강의에서 중요부분을 차지함에도 로스쿨 생 300명 중 단 3명을 확보하지 못해 연속 폐강의 쓴맛을 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게 나만의 일은 아니다. 이번 학기 폐강되는 강의를 살펴보니 로스쿨에서 10여 과목이 폐강되고, 일반대학원에선 그 보다 더 많은 수의 강의가 무더기로 폐강될 상황이다. 대부분 기본법 강의 외의 과목에서 생기는 문제다. 전임교수들도 지금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교수생활 오래한 분들도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위기다.


나는 로스쿨 출범 당시부터 기본법 외의 특성화 교육에 반신반의했다. 특성화 교육은 전문적인 법률가를 양성하기 위한 것인데, 과연 우리 로스쿨에서 그게 가능할까? 특히 법학 배경 없이 로스쿨에 들어오는 학생들이 기본법을 배우기도 짧은 기간에 어떻게 특성화 교육까지 받을 수 있을까?


내 예상은 맞아 떨어졌다. 로스쿨 초기에는 다행히도 내 인권법 강의도 폐강은 면했다.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10여 명 안팎의 학생들이 들어와 그런대로 매 학기 의미 있는 교육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이 강의를 유지하기 어려워졌고, 비법학부 학생들의 입학이 늘면서 상황은 더 악화되고 말았다.


현재 로스쿨 학생들 대부분은 비법학부 출신이다. 이들에게 3년은 너무 짧은 기간이다. 이 기간 내에 법률가의 기초소양을 쌓아 변호사시험을 합격하는 것도 무리한 상황이다. 더욱 시험은 매년 어려워져 2명 중 1명만이 합격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니 이들에게 변호사 시험과목도 아닌 선택과목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나하고 가장 가까운 내 멘티 학생들도 내 강의에 들어오지 않는다. 섭섭한 마음이 없지 않지만 역지사지하면 그들 마음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3명을 확보하지 못해 내 인권법 강의가 매 학기 폐강 위험에 노출된다는 것에 대해 나는 망연자실할 뿐이다. 학교에 온지 10년, 이제 11년째를 맞이한다. 앞으로 10년 이상은 학교에 있어야 하는데, 어찌할까? 생각 같아서는 인권법 강의를 전부 없애고 학생들 잘 들어오는 강의 한 두 개를 맡고 싶다. 그래서 교수로서 폐강 걱정하지 않고 매학기를 맞고 싶다.


원래 나는 실무가 출신이지만 실무과목을 강의하기 위해 대학에 온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인권법을 다양한 각도에서 강의하길 원한다. 인문적으로 접근하는 교양 인권법, 인권의 역사와 철학을 연구하는 기초법적 인권법, 기존 법학에서 등한시 하는 사각지대의 소수자 인권법 등을 연구하고 강의하고 싶다. 그런데 이런 강의가 과연 오늘의 로스쿨에서 과연 가능한 강의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강의는 로스쿨보다는 법학부와 일반대학원에서 맞는다. 기초적인 실무법학을 공부하길 원하는 로스쿨 학생들에겐 관심 밖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움은 내 분야 말고 선택과목 대부분에서 맞닥뜨리는 현실이다. 여러 로스쿨이 출범 당시 다양한 특성화 프로그램을 선보였지만 제대로 운영되는 곳은 거의 없다. 적어도 로스쿨이 이대로 흘러간다면 그런 분야에서 연구하고 강의하는 교수들이 설 자리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물어보자. 우리나라 대학에서 이런 교육이 필요 없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반드시 필요하다. 누군가는 연구해야 하고, 누군가는 배워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나는 이 문제를 그동안 수차례 언급하면서 우리 로스쿨과 법학교육 전반의 개혁을 말한 바 있다. 법학부를 부활시켜 법학의 학문성을 확보하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나는 법학부가 부활되면 맨 먼저 그곳으로 옮기고 싶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 그런 논의가 과연 진행되어 내가 학교에 있는 동안 현실화 될 것인가. 한 숨이 나온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나이지리아 법학을 연구하고, 인도네시아 법학을 연구해야 한다는 말은 사치에 가깝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의 법학도 언젠가는 그런 것에도 관심을 갖고 인재를 키워야 한다. 언제까지 한국 법학이 사법시험이나 변호사시험을 위해 존재하는 수험법학의 수준일 수는 없지 않은가?

......

그러나 나는 현실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한국법학이 살아날 때까지 나는 버텨내며 살아야 한다. 어떻게 말인가? 나도 어쩔 수 없이 매 학기 3명의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우리 로스쿨 생들에게 열심히 밥 사주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적어도 그것이 김영란법에 위반되지는 않을테니... 이것이 바로 나의 자화상이다.


그나저나 L 박사에게 미안해서 어쩌나. 옆에 있으면 술이나 한 잔 사주면서 미안함을 대신할 텐데...


(한국 법학을 생각하고, 내 전공의 앞날을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아 이 글을 쓴다. 이곳 런던은 지금 시각 새벽 2시다)


(2016. 9.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