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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야기26(박물관6) 시계와 근대성

박찬운 교수 2016. 10. 23. 03:53

영국이야기 26(영국박물관이야기6)

 

시계와 근대성

-우린 시간의 노예다-

 

16세기 말의 시계

 

 

우리는 시간의 노예다. 시간이 되면... 일어나고, 밥을 먹고, 출근하고, 일을 하고, 퇴근하고, 잠을 잔다. 우리의 모든 삶은 시간과 관련이 있다. 곰곰이 생각하면 우리가 시간을 통제하는 게 아니라 시간이 우리를 통제한다

이 노예적 삶을 일시적이라도 회피하고픈 날이 휴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늦잠을 자고, 아침을 건너 띄고, 브런치를 즐기고, 늦은 오후 느린 산책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수 십 년 시간에 의해 통제된 우리 몸은 이미 시계가 되어 있어 휴일도 평상시와 다르지 않다. 이게 바로 근대인의 모습이다

그럼 우리는 언제부터 이런 근대인이 되었을까?

미셸 푸코는 근대의 의미를 규율에서 찾았다. 근대국가란 다름 아닌 규율사회를 의미한다고 했다. 규율 중엔 시간에 의한 통제가 대표적이다. 군대의 규율을 생각하라.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정해진 시간에 훈련을 하지 않는가. 학교도 마찬가지다. 정해진 시간에 학교에 와야 하고, 정해진 시간에 수업이 진행되고, 정해진 시간에 집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규율적 사회의 모습이다.

시간의 노예인 근대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 시계다. 닭이 먼저인지 계란이 먼저인지는 모르지만 시계 없이는 근대가 불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정교한 시계가 만들어지고 그것이 우리의 삶의 중심에 들어왔을 때 근대는 시작되었다.

 

1500년 대 초의 시계

 

영국박물관을 돌면서 이런 근대성의 본질을 일깨워주는 곳이 바로 시계를 전시하고 있는 38-39번방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유럽인의 근대적 삶을 확인하고 여러 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그들은 언제부터 시간이란 것을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았을까? 우리 한국 사람들은 그 시절 어떤 삶을 살았을까? 시간과 관련된 서양과 동양의 차이가 지난 몇 세기 동안 서양이 동양을 능가할 수 있었던 원인이자 결과가 아니었을까?

 

1600년대 중반의 시계

 

이 방에 전시된 시계를 일별하면 이들 질문에 답을 얻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 없. 유럽인들은 16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매우 정교한 금속시계를 만들어 사용했. 그 시기 우리가 해시계나 물시계를 사용한 것과는 천양지차다

이 금속시계는 처음에는 벽에 걸거나 실내에 두는 추가 달린 괘종시계(clock)가 주류를 이루다가 어느 시점부터 주머니에 넣어 다니는 시계(watch)로 바뀌게 된다. 유럽인들은 19세기가 되기 전에 돈만 있으면 시계를 집에 놓을 수도 있, 몸에 지니고 다닐 수도 있게 된 것이다

 

1700년대 영국의 가정에서 사용한 시계

 

유럽인들은 산업혁명이 시작된 18세기 후반 경부터는 시계가 보급됨에 따라 시간을 정교하게 분할해서 사용했다. 한 시간 두 시간 단위가 아니라 그 10분의 1 혹은 20분의 1 수준까지 쪼개서 사용했다는 말이다

들은 19세기 초가 되면 약속을 할 때 아침 해가 뜰 때혹은 점심 먹을 시간이런 말은 없어지고 대신 오전 7시 혹은 정오 등의 시간 개념을 갖고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마저 점점 세분화해서 분단위의 삶을 사는 것조차 말 그대로 시간문제였다.

 

1500년대 후반부터 1800년 대까지 만들어진 회중시계

 

이에 비해 우리는 어땠는가? 나의 어린 시절만 생각해도 시계란 귀한 것이었다. 집에 큼직한 괘종시계를 가진 집은 많지 않았고, 손목시계는 구경하기조차 어려웠다. 나도 서울에 전학을 하고 나서 중학교 졸업 무렵에서야 아버지가 쓰시던 손목시계를 잠시 찼을뿐이다. 한 순간이었지만 시계를 차니 바로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당시 고향 시골에 가서 사람들 하는 말을 듣다보면 몇 시 몇 분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여름 방학 때 외가에서 외할머니와 나는 곧잘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나 장에 다녀올란다.”

할머니 언제 오실 거예요?”

저것 다 팔면 오지. 해 떨어지기 전에 올 거다.”

우리 외할머니는 내게 항상 해 떨어지기 전에 온다’, ‘해가 떴으니 일어나야지등의 말씀을 하셨지 정확한 시간을 이야기해보신 적이 없다. 시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게 1970년대 초의 모습이다.

내 변호사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 중 하나가 1970년 대 초에 일어난 살인사건이었다. 그 사건에서 피고인은 무죄를 주장했지만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5년 이상 옥살이를 하고 출소한 후 재심을 청구했다. 그 사건을 맡고보니 제일 문제된 게 시간이었다. 피고인이 무죄를 주장하는 핵심은 검찰이 주장하는 범행시각에 범행장소에 피고인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사건의 핵심증인들의 진술을 들어보면 어느 누구도 정확한 시간을 말하지 못했다. 그저 말한다는 것이 저녁 먹고 나서 조금 지났지요’ ‘땅거미가 지고 있었어요’... 뭐 이런 식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코리언 타임이란 말이 있었다. 한국 사람은 시간을 정확히 지키지 않는 다는 말이다. 의례히 한국사람과 약속을 하면 30분, 1시간은 늦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이런 말이 아직도 남아 있는가? 지난 십여 년간 나는 코리안 타임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외국에 나와서 생활해 보니 이젠 한국 사람만큼 정확히 시간을 지키는 사람들도 없다. 어떻게 해서 이런 변화가 가능해졌는가. 두말할 것 없이 시계 덕분이다. 우리 몸에 지금 가지고 있는 시계가 몇 개인지 세어보자. 손목시계, 노트북 컴퓨터, 스마트폰 등등... 우린 지금 시계없이는 한 시도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이제 우리 한국사람도 서양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 당당한 근대인이 된 것이다. 그것도 유럽인이 몇 세기에 걸쳐서 그렇게 된 것을 생각하면 가히 삽시간이다. 이것이야말로 압축성장이다. 

그 대가는 무엇일까. 우리 모두 시간의 노예가 된 것이다. 서서히 시간에 적응해 왔다면 그래도 품격은 간직할 수 있었을텐 데 순식간의 근대화는 그것마저 허용하지 않았다. 우린 품격없는 시간의 노예가 된 것이다.

 (2016. 10.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