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야기13(영국박물관이야기3)
하늘 아래 새 것은 없다
영국박물관에서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방이 이집트관이다. 이곳에 가면 우리가 잘아는 고대 이집트 파라오 람세스2세의 석상을 비롯해 눈이 휘둥그래질만한 유물들을 셀 수없이 볼 수 있다. 그 중 한 유물을 보자. 이 유물은 고대 이집트 신왕조 18왕조의 투탕카멘 시절 군 최고사령관이었고 투탕카멘 사후엔 왕조의 최후 파라오가 된 호렘햅 내외의 조각상인데, 이집트 관에서 그리 눈에 띄는 유물은 아니다.
영국박물관 이집트 관 내의 18왕조 최후의 파라오 호렘햅 부부상, 필자 촬영
이런 조각상이 영국박물관을 비롯 고대 이집트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에서 곧잘 보이는 것으로 보아, 3천 년 전 이집트에선, 파라오 부부 조각상 제작이 꽤나 유행했던 모양이다. 지금으로 보면 국가원수 부처의 공식 포토(근영)라고나 할까. 영국 박물관의 도록을 찾아보니, 이 박물관엔 이 조각상 외에도 유사한 조각상이 몇 개 더 있다.
영국박물관이 제공하는 도록에는 이런 고대 이집트 18왕조의 부부상도 있다. 이 조각상은 내가 직접 보진 못했다.
내가 이 조각상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 파라오 부부상을 보는 순간 뭔가 머리속에서 짚이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일까? 그게 오늘 이야기의 주제다.
나는 이 유물을 보는 순간, '하늘 아래 새 것은 없다'고 소리를 질렀다.
백문이 불여일견! 아래 사진을 보자. 이 사진은 내가 며칠 전 영국박물관이 아닌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만일 영국에 와서 영국 회화 전반을 알고자 한다면 바로 이 미술관을 가시라. 영국이 자랑하는 터너, 콘스터블 등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에서 찍은 헨리 무어의 <왕과 왕비>라는 작품이다.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이 작품과 위 이집트관의 파라오 부부와는 뭔가 상통하는 게 있다고 보여지지 않는가.
헨리 무어는 영국이 자랑하는 20세기 최고의 조각가다. 그는 천재적인 창조성을 동원해 종래의 조각과는 한 차원 다른 새로운 조각품을 보여주었다. 그는 물체를 단순화하고 굴곡화함으로써 조각의 추상화를 이루었다. 그런데 그의 창조성이 말 그대로 그 자신만의 능력에서 나온 것일까? 아니다. 내가 보기엔 그의 창조성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모방을 통해 자신의 18번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 증거를 나는 영국박물관과 테이트 브리튼에서 찾았다.
무어는 젊은 시절 수없이 영국박물관을 출입했다. 일주일에 두 세번은 박물관에 와서 몇 시간 동안 유물을 보았다고 한다. 그것이 그의 작품으로 연결된 것은 두말하면 잔 소리다.
헨리 무어 <왕과 왕비>, 런던 테이트 브리튼 소장, 필자 촬영.
무어의 또 하나의 작품을 보자. <가족>이라는 이 작품인데, 내가 며칠 전 테이트 브리튼에서 위의 <왕과 왕비>를 찍을 때 같은 방에서 찍은 것이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이 <가족>은 눈에 꽤 익었다 할 것이다. 사실 무어의 이 작품은 많은 조각가들에게 영향을 주어 이것을 모방한 상당 수의 작품들이 전세계에 널려 있다. 우리나라에도 서울 시내를 걷다보면 <가족>이라 이름을 붙인 비슷한 조각상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이 <가족>이 헨리 무어의 독창적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이 작품도 무어가 박물관의 유물을 통해 만들어낸 또 다른 제2차 창작에 불과하다. 무슨 말이냐고?
헨리 무어 작품 <가족>, 런던 테이트 브리튼 소장, 필자 촬영
몇 년 전 우연히 청계천 변을 걷다가 이 조각상을 발견했다. 자세히 살피니 그 제목도 <가족>이다. 위의 헨리 무어의 <가족>과 비교하면 어떤가? 이것이 이 작가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되는가? 필자 촬영.
아래 사진을 보자. 이것은 에게해의 어느 섬에서 발견된 조각품(이것은 Cycladic civilization의 유물인데, 이 문명은 지금으로부터 4-5천 년 전 에게해의 여러 섬에서 일어났다. 고고학적으론 초기 청동기 시대에 해당한다.)인데, 현재 독일 바덴 주립박물관 소장되어 있는 것이다. 무슨 설명이 필요한가, 이것이 헨리 무어의 <가족>과 유사하다는 것을.
에게해의 어느 섬에서 발견된 크레타 문명의 조각품(독일 바덴 주립박물관 소장), 사진 위키티디아.
나는 몇 년 전 아테네 국립고고학박물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거기서 4천 년 전 에게해 섬 지방에서 발견된 조각품들을 다수 보았는데, 그것들은 마치 20세기의 추상작품과 거의 다름없는 것들이었다 (영국박물관에도 몇 점 있지만 그 수나 예술성에 있어서는 아테네의 것을 따를 수 없다.).
세부적인 묘사를 생략한 채 사람들의 모습을 조각한 작품들은 이미 그 당시 사람들의 미적 감각이 추상적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말해준다. 특히 몇몇 작품은 헨리 무어의 작품을 보는 듯했다. 신기할 따름이다. 무어가 이들 작품에서 어떤 힌트를 받은 것은 전문가가 아니라고 해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아테네 국립고고학 박물관에서 발견한 4천 년 전의 에게해 섬지방의 조각품. 필자 촬영.
영국박물관에서 발견한 4천 년 전의 에게해 섬지방의 조각품. 필자 촬영.
그런 고로 나는 오늘 다시 한번 이 말을 외친다. "하늘 아래에 새것은 없다."
(2016.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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