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지혜

자리를 잘 찾아야

박찬운 교수 2023. 5. 3. 10:31

비슷한 시기에 심은 두 소나무. 하나(좌)는 무성하고 또 하나(우)는 빈약하기 그지 없다.

 
아침 출근 길에 아파트 정원 조경수를 유심히 보았다. 많은 나무들이 5월의 싱그러움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잎이 무성해 지고 색깔은 짙어지고 있다. 그런데 몇 나무들이 죽은 시체처럼 서 있다. 소나무들이다. 재건축을 하면서 한 그루에 수 천만원을 호가하는 소나무를 아파트 이곳저곳에 심었는데 열 중 둘이 고사되고 있다. 지금쯤이라면 솔잎은 윤기가 흘러야 하고 솔잎 끝엔 송아가루가 풀풀 날려야 정상인데, 이 소나무들은 장례 치를 날만 기다리는 중환자들이다. 아니 이미 사망선고가 내려져 밑둥을 잘라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학교에 도착해 연구동에 들어오는데 또 소나무를 만났다. 사실 나는 이 나무를 볼 때마다 미안하다. 인간이 이 소나무를 고문한다는 생각에. 2009년 로스쿨을 시작하면서 법학관을 짓고 조경차원에서 대형 화분 몇 개를 조성한 다음 소나무 몇 그루를 심었다. 대형화분은 시멘트 콘크리트 위에 나무상자를 설치하고 그 속에 흙을 부은 것이었다. 나는 이 과정을 보면서 속으로 의문을 품었다. 저렇게 해서 소나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저 정도의 토심으론 얼마 못 가서 소나무가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을 텐데....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십 수 년이 흘러도 이 소나무는 자라지 않았다. 봄이 되어도 솔잎은 윤기를 잃었고 솔방울도 제대로 맺질 못했다.

당시 소나무 한 그루는 운 좋게도 화분이 아닌 연구동 들어오는 작은 빈땅에 식재되었다. 볼품 없는 땅이지만 거긴 화분과는 달리 토심이 깊은 곳이었다. 오늘 보니 화분 속 소나무와 이 소나무가 확연히 다르다. 솔잎은 무성하고 송아가루가 소나무 전체를 뒤 덮고 있었다. 

제발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내의 어느 고급 식당에 가면 콘크리트 위에 대나무를 심어 놓은 일식집도 있다. 아마 그 대나무는 몇 달을 버티지 못하고 누렇게 뜬채 세상을 마감할 것이다. 그저 짧은 시간 인간들의 눈요기용으로 그 자리에 있었을 대나무를 생각하면 인간의 자연 학대에 미안하기 짝이 없다.

이런 이야기를 하자니, 한 마디 더 해야겠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도 자리를 잘못 찾아가면 저렇게 고사되기 십상이다. 자신의 역량과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그저 높은 자리를 찾다보면 그 자리가 그 사람을 태운다. 지금 우리나라엔 이런 공직자들이 너무 많다. 권력자는 그 자리가 그 사람에 맞는지도 확인하지 않고 자신을 지지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 자리 나눠주기에 바쁘다.

나무가 제대로 자리를 찾아야 신록의 계절에 푸르름을 뽑내듯 세상의 자리도 마찬가지다. 어떤 현자가 말하길, 자기 능력을 100이라 할 때 70 정도의 능력만 발휘하면 일할 수 있는 자리를 찾는 게 좋다고 했다. 그래야 여유 있게 일하면서 주변에게도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지식인이라면 능력에 맞지 않는 자리를 권력자가 준다고 해도 거절할 수 있는 양심은 갖고 살아야 한다.

우리나라가 지금 어려운 것은 이런 자세가 부족한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특히 나 같은 교수들이나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2023. 5.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