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타클라마칸 실크로드

타클라마칸 실크로드 기행(3)

박찬운 교수 2015. 9. 26. 20:17

타클라마칸 실크로드 기행(3)

천하절경 천산신비대협곡


여행 3일째, 우린 서역북로의 중심 오아시스 쿠차에 도착했다. 이곳은 한나라 시절 타클라마칸에 있었던 36국 중 최대의 왕국 구자국이 있었던 곳이다. 또한 여기는 당나라 시절 안서도호부의 본거지로서 고선지 장군이 서역출병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현장은 이곳에서 2개월을 머물었고, 100년 뒤(727년) 혜초도 인도에서 당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곳을 들렀다고 왕오천축국전에 기록했다.


나는 쿠차로 들어오면서 묘한 생각에 빠졌다. 신라인 혜초와 고구려 유민 고선지가 혹시나 이곳에서 만나지는 않았을까? 두 사람에 대한 사료를 분석하면 혜초가 이곳에 머무는 동안 고선지도 여기에 있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아마도 그때쯤이면 고선지는 안서도후부의 초급장교이었을 것이다. 이 둘은 역사상 이곳에 머문 최초의 한국인임이 틀림없다. 둘이 만났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 둘은 무슨 말을 하면서 헤어졌을까? 상상이 상상을 낳았다.


쿠차는 이처럼 이런저런 역사적 상상을 가능케 하는 곳이다. 그러나 그런 상상 때문에, 이곳에서 실크로드와 관련된 많은 유적을 기대했다면, 실망이 클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도, 궁궐도 간데없다. 실크로드 문명 교통로로 번성을 구가할 때는 이곳 쿠차에 수많은 서역상인들과 승려들이 몰려들었다고 하지만 지금 쿠차 시내에서 그 흔적을 찾긴 어렵다. 그저 신장에서 빠르게 발전하는 현대도시일 뿐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우리 일행은 시내에 있다고 하는 과거 쿠차(구자)고성 터를 찾아 나섰다.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런데... 아! 이건 아닌데... 우린 망연자실했다. 고성의 터는 찾았는데, 그것은 단지 쓰레기 더미에 올려 진 흙더미에 불과했다. 고성의 터를 알리는 표지석은 있었지만, 글자가 지워져 그 내용을 거의 알 수 없을 정도다. 과연 이래도 되는 건가.


순간 이런 생각을 했다. 실크로드상의 문명유적은 누구의 것인가? 중국인의 것? 아니면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하려는 위구르인의 것? 모두 아니다, 그들만의 유산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인의 문화유산이다. 이름하여, 인류공동의 유산(common heritage of mankind)이다. 그러니 우리도 이 문화유산에 일말의 책임이 있는 것 아닌가. 중국 정부에 이 사라져가는 유적을 잘 보호하라고 당당히 한마디 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그나마 쿠차 시내에서 2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스바시 고성은 단순한 흙더미만은 아니었다. 비록 원래의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긴 했지만 잘 살피면, 동쪽과 서쪽으로 큰 사원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때 이곳에는 수많은 승려가 모여 불법을 닦던 곳이다. 서역으로 가는 현장도 이 사원을 보고 그 규모에 놀랐다고 그의 대당서역기에 쓰고 있다. 그러던 이 고성이 어떻게 이같이 폐허가 되었을까? 마침 입구에 간이 전시관이 있어 들어가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어느 날 고성 사이를 흐르는 천으로 천산산맥에서 토사와 함께 급류가 내려왔다. 그것으로 하루아침에 고성 전체가 땅속으로 사라졌던 것이다.


쿠차의 사라져간 영화를 생각하니 마음이 쓸쓸하다. 우린 씁쓸한 맘을 안고, 쿠차에 오면 필수코스인 천산신비대협곡을 찾았다. 쿠차에서 70여 킬로미터 떨어진 이곳은 천산산맥의 비경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산이 어찌 비경이랴. 하지만 여행자들은 이 산을 보는 순간 입이 딱 벌어진다. 우리가 보는 여느 산과는 도통 비교가 안 된다. 수만 년의 조산활동이 만들어낸 자연의 조화다. 유라시아판과 인도판이 충돌하면서 셀 수 없는 화산폭발이 만들어져 그 때마다 용암이 흘렀고, 그것이 식은 다음에는 또 수 만 년 동안 풍화와 침식이 계속되어, 오늘의 황토색 기암괴석을 만들어낸 것이다.


협곡은 말 그대로 암석과 암석 사이의 좁은 길이다. 협곡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넓은 광장이 나타나는가 하면 몸 하나도 간신히 빠져나가기 어려운 협곡 중의 협곡도 나타난다. 일행 중 누구는 이곳 협곡에 들어서는 순간 단번에 요르단의 불가사의 페트라를 연상해 낸다. 그래, 이 협곡에 구멍을 뚫고 동굴을 만들어 신전을 조성한다면 그게 바로 페트라다.


실크로드가 번성했을 무렵 동서의 순례자들은 이 근처를 지나치면서 이 협곡을 방문했을 가능성이 크다. 현장도, 혜초도 쿠차에서 머무는 동안 이곳을 한 번 와봤을지 모른다. 말을 타고 온다면 하루에도 올 수 있는 길이니 충분히 올만한 곳이다. 만일 그들이 이곳에 왔다면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탄성을 질렀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 협곡의 은밀한 그늘 아래에서 며칠을 유숙했을 지도 모른다.


협곡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곳곳에 실개천이 흐른다. 한 여름 협곡의 자연동굴이나 암석지붕 밑에 있다면 시원한 골바람이 부는 별천지다. 불국토가 따로 없다. 사막에선 여기가 바로 그곳일 것이다. 사막의 살인적 열기를 피할 수 있는 천혜의 피난처에서 잠시 쉬고 있는 현장과 혜초를 그리면서 나는 느린 걸음으로 이 신비의 협곡을 산책했다.


천산신비대협곡의 입구. 황토빛 암석으로 이루어진 협곡이다.



협곡 내에는 이런 광장도 있다. 하늘을 쳐다보면 하늘이 암석에 의해 거의 가려져 있다. 옛날 대상들이 낙타를 끌고 와 이런 곳에서 며칠 묵었을 것 같다.


협곡을 올라가다 보면 이런 비좁은 협곡을 보게 된다. 한 사람이 간신히 빠져 나올만한 진짜 협곡이다.


스바시 고성, 서쪽 사원에서 유적 원형이 그중 많이 남아 있는 불탑 앞에서 찰칵!


스바시 고성의 서쪽 사원, 멀리 천산산맥이 보인다.


여기가 구자고성, 곧 쿠차의 옛 성 자리다. 성벽의 일부는 남아 있지만 관리가 안 돼 얼마 견딜 것 같지가 않다. 표지석은 있지만 글자가 다 지워져 그 내용을 알 수가 없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