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타클라마칸 실크로드

타클라마칸 실크로드 기행(2)

박찬운 교수 2015. 9. 26. 20:24

타클라마칸 실크로드 기행(2)

타클라마칸 오아시스의 제왕, 보스덩 호수

아마도 때는 서기 628년 뜨거운 모래바람이 불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트루판 근처 고창왕국을 어렵게 떠난 당승 현장은ㅡ고창국의 왕 국문태는 현장을 왕사로 삼으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그의 서역행을 막진 못했다. 대신 현장은 공부를 다 끝내고 당으로 귀국할 때 그곳에 들려 3년간 가르침을 주기로 약속한다. 국문태는 현장에게 몇 명의 수행승과 많은 재물을 딸려 그의 서역행을 돕는다ㅡ 에 맺힌 땀을 연신 가사로 훔치며 천산산맥을 넘고 있었다. 목이 탄다, 시원한 물을 들이 키고 한 바탕 냉수욕이라도 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하지만 어쩌라, 이 황량한 땅에서 그런 물이 어디에 있겠는가. 눈치를 챘는지 수행승 하나가 현장에게 물병을 건넨다. 한 모금을 마시니 살 것 같다. 그러나 그 때뿐, 목은 더 타들어간다.


오후의 태양이 아직도 중천일 때 앞에 가는 수행승 한 명이 소리를 친다. “스님, 앞에 물이 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현장은 한 걸음에 달려갔다. 과연 그렇다. 저 멀리 물보라를 날리면서 한 마리 새가 솟구친다. 저건 그냥 오아시스가 아니다. 거대한 호수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첫날 여정에 있는 보스덩(博斯騰) 호수에 도착했다. 우르무치에서 아침 일찍 떠난 버스는 어느새 350킬로미터를 달려, 하루를 묵기로 한 쿠얼루 근처에 온 것이다. 보스덩은 쿠얼루에서 5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담수호수로 면적이 1천 평방킬로미터에 달하는 중국 내에서는 가장 큰 호수다. 서울 크기가 600평방킬로미터 정도니 그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이런 호수가 그 황량한 땅 한 가운데에 있을 줄은 몰랐다. 이 정도의 호수라면 이 근방 사람들이 가뭄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현장이 이곳을 들르지 않았을 리는 없다. 그의 행적을 보면 이 근처를 거쳐 쿠차로 갔다고 하니 사막을 건너는 사람으로 이런 호수가 지척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지나쳤을 리가 없다. 그러니 나의 상상력은 단순한 추측이 아닌 실제상황에 걸 맞는 것이다. 누가 내 추측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 이야기를 일행과 함께 이 호수를 둘러보면서 말했다. 실크로드를 여행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상상력 속에서 하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일천 수백 년 전의 일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극히 제한적이다. 현장이 그의 서역기행에 대해, 대당서역기를 통해 전무후무할 정도로, 자세히 남겼지만 이런 것까지 옮겨놓진 않았다. 그러니 우리가 그의 서역행을 사실감 있게 알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상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몇 가지 객관적 사실을 기초로, 나머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추측하는 것이다. 단, 그 추측은 아무렇게나 하는 게 아니다. 전후 사정상 그럴듯하게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된다.


보스덩 호수의 물은 생각보다 깨끗하다. 별 여과장치가 없어도 식수로 마시기에는 충분하다. 아마도 과거에는 분명 더 깨끗했을 것이다. 현장은 이 호수에 도착하자마자 호수 물을 들이켰을 뿐만 아니라, 옷을 훌러덩 벗고 물에 들어가, 한참 멱을 감았을 것이 틀림없다. 이번에 내가 본 연화호에서도 사람들은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마치 현장이 1400년 전 했던 것처럼 말이다.


말이 나온 김에 잠시 타클라마칸 오아시스에 대해 이야기 좀 해보자. 타클라마칸의 오아시스는 모두가 천산산맥과 곤륜산맥의 산자락 아래에 자리를 잡은 모습이다. 타클라마칸의 어떤 도시도 이 두 산맥이 가져다주는 강과 지하수를 이용하지 못하면 살 수가 없다. 이들 산맥 정상엔 만년설과 빙하가 있다. 이 눈과 빙하가 녹으면 그 물이 시내를 이루어 골짜기를 따라 내를 만든다. 그리고 그것은 때론 강을 만드는데, 이 빙하가 만든 강이 바로 타림강이요, 호탄강이다. 타림강은 타클라마칸의 강의 왕자로 그 길이가 무려 2천 킬로미터가 넘는다. 중국에서 가장 긴 내륙 강이다. 그러니 이들 하천 변에는 예부터 자연스레 사람들이 살아 왔다.


또한 빙하가 녹은 물이나 빗물은 모래 속으로 사라지고 지하의 수맥을 만나 지하수로 변한다. 그 수맥은 산 아래에 있는 오아시스 도시로 연결되는 데, 이곳 주민들은 이 지하수 개발방법을 일찍이 터득하며 살아 왔다. 그게 바로 카레즈라는 것이다. 이것은 페르시아에서 고래로부터 발달한 것인데ㅡ그곳에서는 카나트라 불림ㅡ그 방법이 파미르 고원을 넘어 이곳 타클라마칸까지 온 것이다.


트루판에 가면 카레즈를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보여주는 전시관이 있다. 이곳 사람들은 우선 천산산맥에서 내려오는 길목에 우물을 팠다. 그리고 그 우물 아래에서 터널을 뚫어 각각의 우물을 연결하여 그 터널이 트루판 시내 가까이 오도록 하였다. 이 물은 시내 가까이에서 저수지에 담겨지고 시내에는 이 물이 흘러갈 수 있는 수로가 가설되었다. 이렇게 해서 음용수와 농업용수가 확보된 것이다. 트루판에는 카레즈 지하터널이 5천 킬로미터에 달한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만리장성과 경항대운하(항주와 북경을 잇는 운하)와 더불어 이 카레즈를 중국3대역사(役事)라고 말한다. 실로 위대한 인간들이 만든 위대한 작품이다.


여행 이틀째 밤을 맞는 쿠얼루(库尔勒)는 과거 한나라 시대 웨일리(尉犁)라고 불린 소왕국이었다. 이제 이곳은 신강지역의 자원개발로 힘차게 도약을 하고 있다. 도시 여기저기에서 개발붐이 일고 있는 것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도심은 다른 신장의 도시보단 깨끗하다. 도심을 흐르는 카이두 강가에는 사람들이 나와 산책을 즐긴다. 보아하니 이들 대부분은 한족이다. 신장의 주인 위구르인들은 어느새 한족에게 이 도심을 내어 준 것이다.


보스덩호 중 연화호라는 곳이다. 호수에는 갈대가 이렇게 자라고 있다. 거대한 갈대밭 같은 호수다. 갈대 사이로 고기들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있다. 주변 도시의 식당에 가면 생선요리가 제법 많은 데 여기에서 나오는 고기임이 분명하다.



보스덩 호수의 또 다른 면이다. 어떤 곳에서 보면 이 호수는 바다같이 보인다. 저 멀리 천산산맥이 보인다. 바로 이 호수는 저 산맥이 만들어준 선물이다.


보스덩 호수는 이곳 사람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다. 지금도 저런 시설을 만들어 수영을 즐긴다.



쿠얼루의 도심을 흐르는 카이두강. 신장의 어느 도시보다 깨끗하다. 주변의 자원개발이 이곳을 이렇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