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타클라마칸 실크로드

타클라마칸 실크로드 기행(6)

박찬운 교수 2015. 9. 26. 19:58

타클라마칸 실크로드 기행(6)

옥의 고향 호탄에서 용산중앙박물관을 생각하다


타클라마칸 실크로드에서 남로의 중심도시는 뭐니뭐니해도 호탄(현 허텐)이다. 호탄은 옥의 고향이다. 옥이란 게, 나는 잘 모르지만, 동서양을 불문하고 꽤나 값나가는 보석인 모양이다. 나는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보석이란 데에 일체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것이 다이아몬드든, 황금이든, 그 무엇이든, 나에겐 돌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너도나도 갖고 싶어 하는 것은 희소성 외에 그 무엇인가 인간에게 주는 유용성이 더 있기 때문일까. 사우나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옥의 유용성은 옥 사우나에서나 발견하는데, 그 외에 옥의 유용성은 무엇일까?


호탄은 과거 실크로드가 번성을 구가할 때, 서역을 오가는 사람들이 남로를 거치는 경우, 반드시 들르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었다. 현장도 인도에서 공부를 마치고 당으로 돌아갈 때(644년)는 이곳에서 잠시 머물면서 당태종에게 편지를 보내 귀국을 보고했다. 또한 그의 대당서역기에선, 호탄을 설명하길, 둘레 4천리의 매우 큰 나라이며, 백옥과 흑옥이 나는 옥의 고장이고, 곡식 또한 풍부하며, 주민들은 불교를 신봉한다고 하였다.


호탄이 특별히 옥으로 유명한 것은 쿤룬산맥과 관련이 있다. 호탄은 쿤룬산맥에서 발원한 두 개의 강, 백옥하와 묵옥하가 흐르는 곳으로, 이 두 강은 얼마간 흘러가다가 합류하여 호탄강을 만든다. 옥은 이 두 강의 범람이 일어나는 매년 5-6월 쿤룬산맥으로부터 다량의 암석이 강을 따라 내려올 때 섞여온다. 사람들은 이 옥들을 하상에서 채취하여 중국으로 혹은 서방으로 내다 팔았다. 후세의 사람들은 이 사람들이 옥을 가지고 간 길을 옥의 길이라고도 명명했다. 옥의 길은 실크로드와 겹칠 수밖에 없으니 이 두 길은 사실상 같은 것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우리 일행은 여행 6일째 호탄시내에 있는 박물관을 방문했다. 일견 초라한 박물관이다. 입구를 들어서자 큰 옥 원석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옥의 고장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전시물이다. 이곳 박물관을 세계적으로 유명한 박물관과 비교해서는 안 된다. 화장실을 들어가면 세상에 이런 박물관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관람실 들어가는 것이 주저될 정도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이곳은 이제 갓 깨어나 현대화 되어가는 중국의 변방도시에 불과하다. 이런 곳에 박물관이 있다는 것 자체가, 그래도 과거의 번영을 보여줌으로써, 민족적 자존심을 지키려는 위구르인들의 몸부림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아니, 이 정도의 박물관이라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 서구인들에 의해 유물이 약탈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는, 현지인들의 강한 의지의 표현이 아니겠는가.


박물관엔 대체로 니야 유적지와 라와크 불사유적을 비롯한 주변의 여러 유적지에서 나온 유물들이 전시되고 있다. 전시실 중앙에는 2구의 미라가 눈길을 끈다. 역시 타클라마칸은 사막지역이라 수천 년 동안 시신이 썩지 않고 자연 미라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2천 년의 비단으로 만든 카펫 유물도 그만하면 훌륭했다. 가죽으로 만든 주머니는 조금만 손질하면 지금이라도 사용할 수 있을 건만 같다.


나는 이곳 유물을 보면서 한국에서 가져온 사진 몇 장을 꺼내 보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날 용산 중앙박물관에 가서 찍은 사진이다. 이미 페북에서 잠시 설명한 바 있지만(2015. 7. 31. 게시), 나는 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5층의 중앙아시아관에서 이미 이곳에서 발견된 유물들을 보고 온 것이다. 용산의 것은 바로 일본의 오타니 탐험대가 1902년부터 1914년까지 3차에 걸쳐 타클라마칸 탐험을 하면서 약탈해 온 것이다.


전시실을 둘러보다가 눈에 익은 유물을 발견했다. 바로 내가 찍어 온 사진과 비교에 들어갔다. 백문이불여일견! 여러분들도 보시라. 용산중앙박물관에서 찍은 봉수형 물병과 이곳 전시실에 찍은 봉수형 물병을. 세부적으론 차이가 있지만ㅡ예술성에선 아무래도 용산의 것이 호탄의 것보단 낫다ㅡ 일견 유사하지 않은가. 아마 이 둘은 사촌지간임이 틀림없다. 만든 사람이 틀리다 해도 동일한 공방, 아니 동일한 지역에서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내가 찾아보고자 한 또 다른 유물은 보이지 않았다. 용산에서 본 호탄 불상이다. 우리 중앙박물관 중앙아시아관을 대표하는 유물(오타니 컬렉션) 중 하나인 호탄 불상(호탄 근처의 라와크 불사유적에서 발견됨)과 같은 것을 어쩜 이곳에서도 또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을 갖고 왔지만 내 눈엔 띄질 않았다.


이런 탄식이 저절로 나왔다. 아, 20세기 초 서구탐험대와 일본탐험대가 이곳에 와 과거 유물을 모두 쓸어갔다는 게, 틀리지 않는구나. 호탄의 최고 보물이 대한민국 서울에 있다니... 중국인이여, 위구르인들이여, 호탄의 보물을 보고자 한다면, 서울로 오라. 아니 영국의 스타인은 오타니보다 몇 배를 더 가지고 갔으니,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가보라. 거기에 가면, 당신의 선조가 어떤 불교미술을 이루었는지, 생생하게 볼 수 있으리니.



호탄박물관, 호탄의 고대유물을 전시하고 있지만 그 규모나 관리수준은 동네 박물관 수준도 안 된다. 하지만, 나는 이나마 박물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 서구인들에 의해 유물이 약탈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는 현지인들의 의지에 기한 것이라 생각했다.


박물관 현관을 들어가면 커다란 옥 원석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역시 호탄은 옥의 고장이다.


호탄 박물관 내의 미라. 이것은 여자 미라인데, 옆에 남자 미라도 있다.


호탄박물관의 봉수형 물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