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타클라마칸 실크로드

타클라마칸 실크로드 기행(5)

박찬운 교수 2015. 9. 26. 20:05

타클라마칸 실크로드 기행(5)

세계에서 제일 긴 사막 길을 달리다


사막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다. 무턱대고 타클라마칸에 들어간다? 그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다. 사막은 인간에겐 경원의 대상이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절대미가 있다.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가 없어도, 사막 자체가 발광하는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나의 실크로드 기행의 꿈은 한 분의 선배 법조인과의 만남에서 비롯되었다. 최영도 변호사님이다. 최변호사님은 민변 회장과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원로 법조인이신데, 내 변호사 초년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큰 영향을 끼치신 분이다. 이분은 법조계에서는 알아주는 인문주의자로서, 음악, 미술, 문명기행 등에 일가를 이루었으며, 이미 몇 권의 관련 저서까지 내셨다. 또한 일찍이 우리나라 토기를 수집하여 소장품 전부를 국가에 기증하셨다. 용산 중앙박물관 5층의 겸산 최영도관은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상설전시관이다.


십 여 년 전 나는 최변호사님과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변호사님, 세계 여기저기를 다니셨는데, 그 중에서 어디가 가장 아름다웠습니까?” 
“내가 본 경치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은 둔황의 명사산이었다네. 나는 사막이 그렇게 아름다운지 그 때야 알았네. 그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나. 직접 가서 보고 느껴야지. 그 아름다움을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다네.”


나는 이 말씀을 듣고 스스로 약속했다. ‘그래, 그 아름다움을 내 직접 확인하리라.’ 그렇게 해서 나의 실크로드 기행은 시작된 것이다. 2010년 여름 나는 그것을 마침내 직접 확인했다. 둔황에서 명사산과 월아천을 보았고, 거기에서 더 서쪽으로 가 타클라마칸의 외곽이라고 할 수 있는 투무타거 사막까지 봄으로써 사막의 절대미를 온전히 느꼈다.


이제 5년이 흘러, 나는 다시 죽음의 사막, 그렇지만 또 다른 절대미를 가졌을, 이 거대한 사막 타클라마칸에 왔다. 여행 5일째, 드디어 우리는 타클라마칸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사막공로에 도전한다. 과연 타클라마칸 사막의 진면목은 무엇일까. 궁금하기 그지없었다. 이 날의 목적지는 7백여 킬로미터의 사막을 달려 서역남로의 대표 도시 호탄(허텐)에 가는 것이다! 주행예상시간 11시간.


유사 이래 인간이 타클라마칸을 종단하는 일은 허용되지 않았다. 남북 직선거리가 500킬로미터에 달하는 사막을 걷는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타클라마칸 실크로드는 원래부터 사막 한 가운데에 난 길이 아니다. 그것은 북쪽의 천산산맥과 남쪽의 곤륜산맥에 연접한 오아시스를 점점이 연결한 길이었을 뿐이다.


타클라마칸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길, 곧 사막공로가 뚫린 것은, 매우 최근의 일이다. 타클라마칸 중심부에서 석유가 발견되고부터, 중국 정부는 이 자원의 원활한 수송을 위해, 사막 한 가운데에 길을 놓았다. 첫 번째 길은 1998년 완공되었는데, 서역북로의 룬타이에서 남로의 민펑까지 552킬로미터를 잇는 것이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쿠차에서 호탄을 잇는 650킬로미터의 두 번째 길(217번 도로)이 개통되었다. 이 두 개의 길은 모두 세계에서 가장 긴 사막길이다. 세계에서 제일 큰 사막이라는 사하라에도 이렇게 긴 고속도로는 없다.


우리 일행은 쿠차를 떠나 사막공로에 들어섰다. 신 사막공로에 들어선 것이다. 공로에 들어선지 30분도 안 돼 망망대해 한가운데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근데, 좀 이상하다. 사막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생각하고, 카메라를 누르다보면 어느새 오아시스가 펼쳐지고, 그런 다음 다시 사막이 펼쳐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어인 일일까. 사막공로에 들어선지, 한참이 되어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새 사막공로는 사막 한 가운데를 가긴 하지만 타클라마칸에서 가장 긴 두 강, 동서로 흐르는 타림강과 남북으로 흐르는 호탄강을,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니 망망대해 같은 사막에서도 오아시스가 많이 나타났을 수밖에.


앞으로 한 번 더 타클라마칸을 간다면, 그 때는 쿠차에서 차를 뒤로 돌려 룬타이까지 가 그곳에서 구 사막공로를 타고 싶다. 안내하는 사람이나 운전기사는 바보 같은 짓이라고 하면서 깜짝 놀라겠지만ㅡ이렇게 하면 쿠차에서 호탄까지 수백 킬로미터를 더 가야 한다ㅡ 타클라마칸의 여름을 진짜 느끼기 위해서는, 사막의 공포감 그리고 그 속에서의 절대미를 느끼기 위해서는, 오아시스를 기대하지 않고, 주야장창 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사막을 걷는 나그네를 생각하라. 하늘에 작열하는 태양 외에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아무 것도 없다. 거기에 내가 있다. 여기에서 절대자가 나온다. 여기에서 신이 나온 것이다. 여기서 하느님이, 여기서 알라가 나온 것이다. 나는 그것을 경험하고 싶다.


새 사막공로가 강을 따라 간다고 해도 그 강을 쉽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10시간 넘게 달려도 몇 번 보지 못한다. 여긴 사막, 그것도 타클라마칸이다. 우선 도로 주변을 보면, 나그네에겐, 매우 생소한 게 보인다. 사막공로 주변을 격자 모양으로 만든 다음 그 속에서 갈대를 키우고 있었다. 이런 사막 위의 도로란 모래바람이 불면 삽시간에 모래에 묻히기 쉽다. 그러니 그 모래바람 속에서도 도로가 견디기 위해 일종의 방풍림을 만드는 과정이다.


하지만 갈대는 실패한 듯, 어디를 보아도 무성히 자란 것이 없다. 조금 자란 갈대도 있지만 저 정도로는 사나운 모래바람을 막기는 턱도 없을 것이다. 대신 홍류라는 관목은 제법 뿌리를 내린 것 같다. 이 나무는 사막에서 뿌리가 무려 5미터까지 내려간다고 하니 제대로만 자란다면 훌륭한 방풍림이 될 것이다. 사막 길에서 방풍림을 만들기 위한 중국인들의 노력은 실로 가상하다. 도로 주변의 격자 판 사이사이로 고무호스가 보이는데, 물을 공급하기 위한 관이다. 이 긴 사막에 저와 같은 고무호스를 얼마나 깔아놓았을까, 또 그것을 관리하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해야 할까, 생각하니 아찔하다.


사막공로를 주행하면서 꽤 키 큰 나무를 발견했다. 어떤 곳은 그 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뭔가 하니, 호양나무라는 것이다. 바로 이 나무가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썩는데 천년, 도합 3천년을 간다는 나무다. 이 척박한 타클라마칸에서 가장 잘 적응한 나무다. 신기할 따름이다. 오아시스가 아닌 곳, 일 년에 강우량이 단 20밀리미터도 안 된다는, 이 사막에서 저리도 긴 세월을 버티다니 그 생명력이 놀랍다.


일행은 사막공로에서 몇 번을 쉬었다. 쉴 때마다 주변 사구를 찾아 뛰어 올라갔다. 둔황의 명사산 만큼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그 광활함은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일망무제! 사방 어디를 살펴도 끝없는 평지다. 변변한 휴게소가 없기 때문에 용변을 보는 것은 대부분 자연화장실(?)을 이용했다. 한두 번 주유소 화장실을 이용하려고 했지만, 그것보다는 아무래도 사막 한 가운데에서 실례를 하는 게, 한국 사람들 비위엔 훨씬 나았다. 중국 화장실의 그 위생 상태는 여기서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중국의 화장실 문화가 일정 수준 이상이 될 때 인류는 진정 문명시대를 맞이할 것이라 믿는다.




217번 사막공로. 도로 주변에는 격자모양의 판을 만들어 그 속에 갈대를 심어 놓았다. 방풍림을 만들기 위함인데, 성공작은 아닌 듯하다.





                               사막공로에 자동차 한 대가 달린다.




사막공로 주변에는 이런 사막 사구가 즐비하다.





죽은 호양나무, 죽어서 이렇게 천 년을 간다




이것이 바로 3천년을 간다는 호양나무, 현재는 ‘살아서’ 천 년 기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