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포루투갈 기행

포르투갈 기행(1)

박찬운 교수 2022. 7. 18. 06:02

대항해의 출발점 리스본을 가다

(이 글은 2012년 스웨덴 룬드 시절 다녀온 포루투갈 이야기다. 당시 나는 리스본 일대를 다녀온 후 장편의 글을 써 놓았는데 그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과거를 추억하기 위해  6회로 나누어 이곳에 올린다.)

리스본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다. 어떤 기록에 의하면 리스본은 로마보다, 파리보다 더 먼저 만들어졌다고 한다. 리스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지리적 위치에 주목해야 한다. 리스본은 이베리아 반도의 최서단에 위치하고 있다. 대서양으로 흘러 들어가는 타구스(포르투갈어로는 타주, 스페인어로는 타호로 읽힘) 강의 바다 출구에 위치한 도시가 리스본이다. 따라서 옛날부터 리스본은 대양으로 진출하는 데 있어 천혜의 위치에 있었다. 

타구스 강은 1천 킬로가 넘는 긴 강인데 스페인에서 발원하여 스페인 땅에서 약 700킬로를 흐른 다음 포르투갈로 들어 와 300킬로를 더 가 대서양으로 흘러 들어간다. 대서양에 가까워 지는 타구스 강의 끝은 마치 바다와 같이 넓다. 따라서 대항해 시대에 접어들어 리스본은 대형 범선을 바로 도시의 한 가운데에서 출범시킬 수 있는 최적의 지리적 여건을 가지고 있었다. 유럽의 어떤 나라도 그와 같이 바로 대양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수도를 가진 나라는 없었다. 리스본이 왜 대항해 시대의 주인이 될 수 있었는지, 리스본에 와 보는 순간, 알 수 있을 것이다.

리스본의 구도시, 지금의 역사지구는 타구스 강에서 보면 세 부분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왼쪽 언덕에 자리 잡은 치아도(Chiado) 지구, 오른 쪽 언덕의 알파마(Alfama) 지구 그리고 이 두 지역 사이의 평지 지역인 바이샤(Baxia)지구이다. 지금은 리스본이 크게 확장되었기 때문에 과거의 모습을 쉽게 그릴 수 없지만 역사지구의 양쪽 언덕 정상에 올라가면 리스본의 과거를 어느 정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리스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체로 무어인들의 400년 지배, 그 이후 기독교인들의 레콩기스타를 통한 12세기의 리스본 탈환, 15세기 후반부터 16세기에 이르는 대항해 시대 그리고 1755년의 대지진을 알아야 한다. 

무어인들의 오랜 지배는 이베리아 반도 전체가 그렇지만 리스본에도 상당한 정도로 이슬람의 흔적을 남겨 놓았다. 지명과 건축양식이 대표적일 것이다. 특히 알파마 지구는 아직도 무어인들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그 지명도 이슬람 냄새가 난다. 레콩키스타를 성공적으로 이끈 알폰소 앙리케는 12세기 중반 리스본을 접수하여 포르투갈 초대 왕이 된다. 현재의 포르투갈은 바로 그에 의해 만들어졌다. 

15세기 중반 이후 포르투갈은 유럽에서 가장 먼저 대양으로 항해를 시작한다. 1453년 오스만 터키가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비잔틴 제국이 멸망한 이래 지중해의 해상권은 한동안 터키가 갖게 된다. 이렇게 되자 동방에서 오는 향신료 등의 값은 천정부지로 뛰게 되었고, 유럽 각국은 더 이상 베네치아의 해상권에 의한 향신료에 기댈 수 없게 되었다. 다른 뱃길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 때 포르투갈에 한 위대한 인물이 나온다. 그가 바로 엔리케 왕자다. 

그는 대양시대를 준비하는 적임자였다. 선원을 키웠고 원양 항해를 위한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여기서 탐험가들이 속출한다. 그러한 과실은 15세기 후반 마뉴엘 1세가 취하게 된다. 드디어 바스코 다 가마는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도착하여 인도로 가는 뱃길을 만들어 낸다. 그 뱃길로 인도로부터 향신료가 들어오고 포르투갈은 일거에 유럽의 일등국가가 된다. 이 때 벌어들인 막대한 부는 마뉴엘 왕이 각종 건축물을 만들어 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또한 그의 예술적 심미안은 마뉴엘 양식이라는 포르투갈 건축사에 길이 남는 건축 양식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정확하게 100년을 넘지 못했다. 16세기 후반 스페인에 의해 포르투갈은 독립을 잃게 된다. 같은 이베리아 반도에 있으면서도 오랜 기간 역사를 달리해 온 두 나라의 관계는 1580년을 기점으로 결정적으로 스페인 쪽으로 기운다. 하지만 포르투갈은 곧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60년만에 다시 독립국의 위치를 찾게 된다. 

리스본 역사에서 또 하나의 분기점 1755년 대지진이다. 이 지진으로 리스본은 완전히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그 중에서도 강가에 면한 바이샤 지구의 피해는 엄청났다. 지진에 이은 스나미가 이 지역을 강타한 것이다. 지진 이후 포르투갈은 이 복구 사업에 전력을 기울였다. 이 복구사업은 한 위대한 정치가의 손에 의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바로 폼발이라는 사람이다. 그는 당시 수상이 되어 이 복구사업을 진두지휘했다. 폼발은 일정한 건축양식을 복구지역에 엄격히 적용시켜 성공적으로 복구에 성공했다. 이것이 바로 폼발라인이라는 것이다. 

 

제로니무스 성당/수도원

누군가 리스본을 대표하는 문화재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제로니무스 성당이라고 할 것이다. 벨렘지역에 있는 이 성당은 수도원을 겸하고 있는데 내 서구여행 중 본 수 많은 성당 중에 아마도 으뜸으로 자리매김할 것 같다. 우선 그 규모도 너무 크다. 수 백 미터 떨어지지 않고서는 도저히 카메라의 한 화면에 담을 수가 없다. 그러나 나를 놀래게 한 것은 그 크기가 아니라 독특한 양식에서 나오는 절대적인 아름다움이었다. 

이 성당은 대항해 시대의 포르투갈의 영화를 그대로 보여준다. 16세기 초 포르투갈의 왕은 마뉴엘 1세, 이 사람은 여러 곳에 자신의 건축물을 세운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제로니무스 성당이다. 그는 이 성당에 포르투갈식 고딕양식에 북아프리카에서 유행했던 이슬람 양식을 절묘하게 절충한 양식을 선보인다. 이름하여 마뉴엘 양식이다. 이 양식의 특징은 기둥이 마치 야자수를 연상시킨다. 물이 없는 곳에서 산 이슬람인들의 영원한 이상은 야자수가 울창한 정원이다. 그것을 예술로 승화한 것이 야자수 기둥이다. 온갖 기하학 문양으로 조각된 기둥이 천정으로 올라가면 고딕 양식의 볼트는 마치 포도 덩굴이 하늘을 뒤 덮고 있는 것과 같은 독특한 모습을 보여준다. 마뉴엘 양식은 마뉴엘왕의 치하에서 만들어진 대부분의 건축물에서 볼 수 있고 그것은 그 후에도 근세에 이르기까지 포루투갈의 독특한 양식으로 포르투갈 곳곳에서 발견된다.

 

제로니무스는 성당이자 수도원 그리고 왕의 거처였다. 그래서 서구 어느 곳의 성당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다. 사진의 오른쪽이 성당이 있는 곳이다. 

 

제로니무스의 내정이 있는 곳이다. 건물은 내정을 둘러싸고 있다. 기둥의 모습이 마치 야자수를 보는 것 같다. 하늘로 뻗친 첨탑은 그리 높진 않지만 어딘가에서 본듯한 모습이다. 그렇다! 바로셀로나의 가우디 건축물과 어딘가 유사하다. 나는 마뉴엘 양식에서 가우디를 발견한다. 가우디의 독특한 옥수수 모양의 첨탑과 야자수 모양의 기둥은 이 마뉴엘 양식과 어떤 형식으로든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참고로 제로니무스는 초기 기독교에서 없어서는 안 될 성인이다. 기원 후 4세기 말부터 5세기 사이에 산 사람인데 이 사람의 최고의 업적은 희랍어로 된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 번역 성경을 불가타 성경이라 한다. 그는 만년을 베들레헴의 토굴에서 지내면서 성경을 번역했다. 이런 이유로 서양화 중 성경과 관련된 것 중에는 제로니무스 그림이 대단히 많다.

 

푸른 하늘, 그림자, 야자수 모양의 기둥, 기하학적 모양의 내정, 어딘가 모르게 그라나다의 알함브라궁을 닮았다.

 

제로니무스 성당의 천정, 전통적인 고딕 양식의 볼트에 비해 매우 화려하다. 마치 포도 덩굴이 천정에 붙어 있는 느낌을 준다.

 

제로니무스의 화려한 천청 볼트, 이러한 볼트는 포르투갈의 곳곳의 역사적 기념물에서 발견된다.

 

제로니스 성당의 중앙 채플의 모습이다. 기둥은 일반적인 고딕양식에 비해 가늘다. 기둥의 표면은 온갖 문양으로 조각되어 있고 천정의 볼트는 화려하다. 이것이 바로 마뉴엘 스타일이다. 기둥이 가느니 내부가 시원하게 뚫린 느낌이다. 

 

제로니무스 성당의 화려한 천정

 

성당의 입구에는 두 개의 무덤이 있다. 대항해 시절을 대표하는 두 명의 위인의 무덤이다. 하나는 1497년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도착한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의 무덤이고, 다른 하나는 16세기 포르투갈의 최고의 시인 카몽에스의 무덤이다.(1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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