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안데스에 서다

희망의 땅 안데스에 서다(1)-나는 왜 남미에 갔는가-

박찬운 교수 2024. 1. 14. 05:31

희망의 땅 안데스에 서다(1)

-나는 왜 남미에 갔는가-

 

20년 이상 남미여행을 꿈꾸는 데 있어 마추픽추의 존재는 절대적이었다. 나는 저곳에 반드시 가서 마추픽추의 실체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남미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먼 곳이었다. 가기 힘든 곳이었다. 작년 12월 13일 한국을 떠났다. 로스엔젤레스를 경유해 페루 리마에 도착했다. 한 달간의 여행을 마치고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를 출발해 상파울로를 거쳐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거기서 또 비행기를 갈아 타 인천으로 돌아왔다. 시계는 2024년 1월 12일 오후를 가르키고 있었다. 오고 가는 것만으로 지구를 완전히 한 바퀴 돈 것이다. 이제껏 해 본 여행 중 가장 먼 곳을 가장 길게 돌아다녔다.
 

남미여행의 시작은 페루 리마였다. 리마의 아르마스 광장. 저 앞에 보이는 성당이 리마 대성당이다. 저기에 잉카제국을 멸망시킨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묻혀져 있다.

 
이런 여행은 두 번 다시 할 수 없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나이나 건강을 고려할 때 다시 이런 여행을 한다면 천수를 누리기 힘들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이 여행이 내 스스로에게 준 최고의 선물, 최고의 위로였다고 고백한다. 이 여행을 통해 남미 대륙을 내 두 다리로 걸으며 아름다운 산하를 보고 이 시대를 사는 남미인들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한다. 곰곰이 생각하니 내 삶에 감사할 일이다. Gracias a la vida!

지난 한 달간이 머릿속에서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여행을 많이 해왔지만 이렇게 일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여행하긴 처음이다. 외국에서 상당 기간 살아도 보았지만 몸만 외국에 있었지 일에서 벗어난 여행은 언제나 열흘을 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이번 여행은 특별하다. 일에서 벗어나 한 달간 오로지 여행에 집중했다. 여행 전 나름 준비도 했다. 일과 관련 있는 사람들에게 정말 급한 일이 아니면 가급적 앞으로 한 달은 나를 찾지 말아 달라고 했다. 그럼에도 한 가지 일이 마음에 걸렸다. 올 연초 출간하기로 되어 있는 내 인권법 교과서 개정판 작업. 작년 11월 탈고를 하고 출판사에 원고 파일을 보내 출국 전까지 2번 이상 편집본을 점검했지만 여전히 부족한 것이 있었다. 내가 서울에 있었다면 한두 번 더 점검해 오류를 잡았을 텐데 그것을 하지 못해 영 마음이 찝찝했다.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 나는 저곳에서 잉카제국의 흔적을 찾았다. 남미여행의 백미 중 하나였다.

 
원래 이런 긴 여행은 정년을 마치고 느긋하게 할 일이지 아직 몇 년 더 일해야 하는 나 같은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이번 여행을 감행했다. 결코 즉흥적인 것은 아니다. 오랜 기간 계획했으니 말이다. 다만 시점을 잡지 못했다. 원래 남미여행이란 세 가지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한다. 돈과 시간 그리고 체력. 이것들을 고려할 때 나는 지금이 적기라 생각했다. 특히 이번 학기는 연구 학기라 수업 부담이 없었다. 지난 1년간 교수로서 그 어느 때보다 집중했다. 1학기 강의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최상의 평가를 받았고, 2권의 책을 출판했으며, 논문 한 편을 썼다. 거기다가 교과서 개정 작업까지 끝냈으니 누가 봐도 학자로서의 본분은 지킨 것이다. 연구 학기를 끝내면서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갖는 데 마음에 부담감을 느낄 필요는 없었다.

쿠스코에서 하루 일정으로 다녀온 비니쿤카, 일명 무지개산. 이 산은 해발 5천 미터가 넘는다. 내가 저 정상에 정상에 선 것이다. 쉽지 않은 길이었다.

 
조금 불안한 것은 예전과 같지 않은 체력이었다. 수년 전부터 불면증이 찾아와 고생하고 있다. 그것이 원인인지 기억력도 예전과 같지 않다. 기억력 하나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는데 요즘은 다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이렇게 가다가는 나도 치매에 걸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공포심마저 든다. 오랜 기간 일 속에 파묻혀 너무 긴장하고 산 것이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이 아닌가? 일에서 해방되어 무언가 내 삶을 돌아보는 과정이 시급한 것 아닌가 생각했다. 게다가 다리마저 예전과 같지 않다. 몇 킬로미터를 걸으면 때때로 오른쪽 무릎에 통증 증상이 나타난다. 연골이 닳았다는 증거다.

기억력도 육체도 점점 쇠락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내 여행 버킷리스트 넘버 원 남미 여행을 서둘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뒤엔 남미여행은 아예 꿈도 꾸지 못할 일 아닌가? 이런 생각들이 내가 작년 12월 남미여행을 결행한 직접적 배경이다.
 

비행기에서 찍은 안데스 산맥. 세계에서 가장 긴 산맥이다. 남미여행에서 저 안데스를 빼고는 이야기할 것이 없다. 남미문명은 저 산 속에서 시작되었다.

남미여행에서 체력을 강조하는 것은 우선 그 위치가 우리나라와는 정 반대편에 있기 때문에 가고 오는게 쉽지 않다. 직항로가 없으니 가고 오는 데만도 경유를 포함하면 각각 24시간이 넘게 걸린다. 좁은 이코노미 좌석에서 그 긴 시간을 버틸 것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거기에다 페루와 볼리비아의 알티플라노는 해발 3천 혹은 4천 미터가 넘는 고원지대다. 고산병에 약한 사람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기후가 건조하고 밤낮의 기온 차가 심해 호흡기 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 그런 상태에서 몇 주를 버틴다는 것은 보통 체력으론 쉽지 않다. 이러니 남미여행은 하루라도 젊은 시절에 다녀오지 않으면 끝내 꿈으로만 그칠 확률이 큰 것이다.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은 세계에서 가장 큰 소금사막이다. 저곳에서 나는 하루 종일 저 차량을 타고 질주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소금사막 대지는 마치 흰눈이 내린듯 하얗다.

 
남미여행은 나로서는 꿈을 이루는 과정이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안데스를 걷는 꿈을 꿔 왔다. 여행은 걸어 다니는 독서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책을 한 발 한 발 걸으며 읽어나가는 것이다. 남미라는 거대한 땅을 돌아다니며 그것을 읽고 싶은 욕망이 적어도 지난 20년간 내 마음속 한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런 꿈은 직접적으론 법조 선배 몇 분의 경험담에서 시작되었다. 돌아가신 최영도 변호사님(제2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고 나를 그곳으로 부르신 분이며 내 여행의 멘토이었음)과 박용일 변호사님의 남미 이야기를 통해 나도 언젠가 이 분들이 뒤를 따를 것이라 생각했다. 20년 전 스페인어를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남미에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선 이 언어를 어느 정도 구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선배들의 말씀 때문이었다.

남미 여행을 결정적으로 추동시킨 이는 조용환 변호사이다. 그는 2016년 2달 간 남미여행을 하고 <안데스를 걷다>라는 책을 쓴 바 있다. 나는 그 책을 틈만 나면 읽었다. 그는 두 달간의 여행을 완벽하게 글로 재현해 남미 여행의 꿈을 갖고 있는 내게 보여주었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남미여행을 더 이상 늦추어서는 안 되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이번 여행의 절반은 자연기행이었다. 꿈에 그리던 파타고니아! 칠레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의 일부 모습이다. 설산과 옥빛 호수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한 달간의 남미여행은 페루 리마에서 시작되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끝났다. 이 여행은 크게 문명여행자연기행으로 나누어진다. 안데스를 지배했던 잉카제국의 흔적을 찾으며 스페인 식민 지배자들의 유산을 살폈다. 세계에서 가장 긴 산맥인 안데스는 남미에 독특한 지형을 선물했으니, 산과 고원 그리고 설산과 옥색의 호수.... 나는 사람이 만든 문명을 읽고 자연에서 쉼을 얻었다. 나는 인간의 흥망성쇠에서 지혜를 얻고 신이 준 절경에 감탄했다.
 

새벽 3시에 떠난 피츠로이 트레킹. 해가 뜨자 피츠로이 봉이 마치 불에 타는듯 하다. 일명 불타는 고구마!

 
원래 내가 계획한 남미 여행은 조용환 변호사가 시도한 것과 같은 단독 자유여행이었다. 그러나 몇 가지 사정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하나는 기간.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은 최대 한 달, 이 기간으론 내가 보고자 하는 안데스와 파타고니아 등의 여행을 자유여행으로 하긴 어려웠다. 두 번째는 안전 문제. 남미를 혼자 여행하는 것에 가족이나 지인들 모두 걱정이 많았다. 고민 끝에 나도 마음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이유로 여행사 그룹 투어를 이용하기로 하고 나에 맞는 상품을 골랐다. 그렇게 해서 선택한 것이 남미 전문 여행사 00투어의 30일짜리 남미투어였다. 이 투어는 내가 가고자 하는 남미 여행지 대부분을 커버하면서 참여자에게 여러 옵션을 주었다. 일정과 숙소 그리고 교통수단은 참여자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지만 현지 투어는 옵션이라 내가 선택할 수 있고, 그 시간에 나는 다른 여행을 할 수도 있었다. 단독 자유여행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단기간 내에 남미를 집약적으로 여행하면서도 사이사이 내 여건에 맞춰 약간의 변주가 가능한 투어 프로그램이었다. 같이 여행할 일행들은 어떤 사람들일지 모르지만 남미를 한 달간 여행하는 것이니 다들 각오가 남다른 사람들일 것이라 기대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어딜까? 파타고니아의 페리토 모레노 빙하가 아닐까? 장엄하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다.

 
이제 한 달간의 여행을 잠시 복기해 보자. 나는 어떤 곳을 갔던가. 주요한 곳만 열거해 보면 이렇다.
 

 
페루
리마->와카치나 오아시스->피스코(파라카스)->나스카(나스카 라인)->쿠스코(성스러운 계곡, 비니쿤카)-> 마추픽추
 
볼리비아
푸노(티티카카 후수)->라파스->우유니 사막->안데스 고원지대(알티플라노)
 
칠레
아타카마 사막-> 산티아고-> 푸에르토 나탈레스(토레스 델 파이네)
 
아르헨티나
엘찰텐(피츠로이)->엘 칼라파테(페리토 모레노 빙하)->우수아이아-> 부에노스아이레스-> 푸에르토 이구아수
 
브라질
포스두이구아수->리우데자네이로
 

남미여행은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끝났다. 사진은 리우의 상징 예수상. 예수님이 리우와 대서양을 굽어보면서 평화를 축원하고 있다.

 
이제부터 내가 경험한 남미여행을 본격적으로 정리해 볼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기억력에 의존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현지에서 써 놓은 메모에 추가적인 정보와 자료를 찾아내 여정을 보완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최고의 자료는 여행 중 찍은 수천 장의 사진이다. 나는 이 사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것이다. 나로선 이 여행기 집필이 다 끝나야 비로소 나의 남미 여행이 끝난다. 그것이 끝날 때까지 내 남미여행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희망의 땅 남미 대륙을 걷다1 끝)

 

부탁의 말씀

이 블로그의 글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널리 전파해 주시는 것은 좋으나 무단전재는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전파는 링크를 달아 주시는 것으로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