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소설

어느 부고장

박찬운 교수 2017. 10. 7. 13:19

소설 아닌 소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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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특별한 부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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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의 애완견 '진주' 위키피디아


1.
사람이 살아가면서 만나는 죽음, 그것만큼 사람을 슬프게 하는 것은 없으리라. 내 고교 동창 최상호에게 그 아픔이 찾아 왔다. 며칠 전 동창생 몇이 모여 저녁을 먹으며 이 슬픈 사연을 접게 되었다. 상호는 여행업으로 제법 큰 기업을 일군 사업가였다. 그런데 갑자기 그에게 우환이 닥쳤다. 바로 사드배치 여파였다. 주된 고객이 중국 관광객들이었는데, 사드배치 이후, 중국의 보복으로 일시에 중국 유커들이 오지 않는 것이었다. 회사는 부도가 났고, 가지고 있던 재산마저 다 내주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몰렸다. 20년 간 해온 사업이 이렇게 단 몇 달만에 거덜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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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승섭아, 이제 모든 게 끝났다. 내 인생에서 사업은 끝이다.”
“상호야, 너무 상심하지 마라. 너는 능력이 있으니 분명히 재기할 수 있을 거야. 사드문제도 곧 해결되지 않겠니.”
“하하, 아냐. 그게 해결된다고 해도 나는 더 이상 사업은 안 해. 이번 일을 겪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다. 내가 무언가 잘못 산 것 같아. 가족들에게 넘 미안하다. 그래서 이제부턴 모든 것을 가족들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나는 곧 떠난다.”
“어디로? 지금 우리 나이에 외국에 가서 살라고?”
“우리 가족이 그동안 바쁘다 보니, 여행업을 하면서도, 변변히 외국여행 한번 함께 못했다. 그래서 처와 함께 유럽여행을 떠난다. 가진 게 별로 없어 빈 몸으로 떠나는 거야. 이 여행은 단순히 배낭여행이 아니야. 발 가는 대로 떠돌다가 여기다 싶은 곳이 있으면 그곳에서 당분간 정착할 거야. 그래 봬도 나와 와이프가 요리는 배테랑 아니니. 어딜 가도 굶지는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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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야, 말도 안 된다. 아니 그렇게 해서 떠났단 말이야. 승섭아, 좀 말리지 그랬니?”
“나도 말렸지. 그런데, 걔 생각이 확고하더라. 할 수 없이 무운장구를 빌 수밖에 없었다.”
“그랬구나. 그래서 그 다음에 어떻게 되었니? 연락이 되었어?”
"응, 상호는 그 뒤 유럽으로 떠났고, 가끔 메일을 주고받았지. 몇 달 유럽 전역을 전전하다가 프라하에서 당분간 정착해야겠다고 연락을 받았다. 밤에 프라하 고성을 보니, 뭐 거기가 자기 고향 같은 필을 받았다나“
”상호, 참 대단하다. 그 나이에 그런 곳에 가서 정착을 한다 하니.“
”그런데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었어. 상호에게 어떤 문제가 생겼단다.“
”문제? 그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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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승섭아, 나다, 상호.“
”아니, 네가 어쩐 일이냐, 전화를 하고.“
”나 지금 한국에 와 있다.“
”뭐라고? 아니 프라하에서 한국을 왔다고? 그런데 왜 지금 연락을 하니?“
”음... 미안하다, 그런 일이 있었다. 마음이 착잡하다. 잠간 볼 수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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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야, 어쩐 일이냐, 얼굴이 무척 수척한데... 외국 생활이 어려웠던 모양이다.”
“아니야, 외국 생활이야 좋았지. 조금 불편해도 내가 외국 체질 아니니. 와이프도 오랜만에 나하고 여행 다니니 좋았고.”
“근데 무슨 일로 이렇게 갑작스럽게 나왔어?”
“음... 부고장을 받았다.”
“아니, 부고장? 그럼 어머님이 돌아가셨어? 작년에 너희 집에서 어머님 뵈었을 땐 정정하시던데... 어떻게 그리도 갑자기?”
“아냐, 어머님은 아직 정정하시다. 실은, 우리 집 둘째가 갔다.”
“둘째? 아니, 너는 외동딸 하나만 두었잖아? 언제 나 몰래 둘째가 있었니?”
“그래, 너는 모를 거다. 우리 집에 둘째가 있었는데, 이름이 진주야. 치와와...”
“아니, 이 자식 지금 장난하나.”
“승섭아, 그게 장난이 아냐. 우리 집 애완견 진주는 내 둘째나 마찬가지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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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세상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른다. 이야기인즉, 상호는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지인으로부터 손바닥만한 애완견 한 마리를 분양받아 키워왔다. 그 이름 진주. 얼마나 정이 들었는지 진주는 이 집의 명실상부한 둘째 딸이 되었다. 그 진주에게 불행이 닥친 것이다. 상호 내외가 외국 가면서 진주를 데리고 가지 못한 것이다. 진주가 이들 부부와 함께 나가는 절차가 꽤나 까다로운 것이었다. 그래서 상호 내외는 후일 진주를 데려가기로 하고 우선 형님 집에 맡겼다. 형님도 진주를 오랫동안 귀여워했기 때문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사실 상호와 와이프는 여행을 하면서도 진주가 눈에 걸려 시시때때로 슬픔에 잠겼다 한다. 특히 진주는 워낙 노쇠한지라 돌봄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이들 부부가 떠나자 진주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밥도 안 먹고 가끔 알 수 없는 소리만 냈다. 그리고 어느 날. 진주는 쓰러졌고 그 이후 일어서질 못했다. 진주는 상호 내외를 못 보고 병원에서 세상을 뜨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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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상호에게 그런 일이 났구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개는 개지, 사람은 아니잖아. 뭐 그렇게 슬퍼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모르는 소리. 너희들은 상호 맘을 몰라. 그 정도가 되면 정말 한 식구나 마찬가지지. 애완견을 키우지 않은 사람은 몰라.”
“아 그런 거니. 나는 아직껏 개나 고양이 단 한 번도 키워본 일이 없어서 잘 몰라. 그런데 사람들은 왜 그렇게 사서 고생을 할까.”
“글쎄.....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람이든 동물이든 일단 정을 주면 그 땐 정말로 특별한 존재가 되는 거 같아. 그 정은 그 사람과 그 동물을 하나로 만드는 거지. 그 때부턴 그 둘은 뗄 수 없는 관계가 되는 거야. 거기에서 기쁨도 슬픔도 그 둘은 함께 느끼는 거지. 인간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 같아.”
“아 그렇구나. 나는 그래서 함부로 정을 주지 못할 것 같더라. 정이 무서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