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 5

새벽 단상-어떻게 살 것인가-

새벽 4시도 전에 깨 책상 앞에 앉았다. 골똘히 생각했지만 답은 보이지 않는다. 삶이란 무엇인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50대 후반의 한 남자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묻고 또 묻는다. 아주 젊을 때 나는 교조주의에 물든 사람이었다. 원칙주의자였고 그것에 양보함이 없었다. 차 한 대 지나가지 않는 새벽 신호등 앞에서도 나는 언제나 녹색등이 들어오길 기다렸다. 불편해도 나는 이런 삶을 내 운명으로 받아들일 것을 추호도 의심치 않았다. 젊음의 본능이 넘칠 때도 나는 그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것을 통제하지 못하면 결코 상남자라 여기지 않았다. 젊은 도덕주의자로서 나는 양심에 가책을 주는 어떤 행위도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나는 법률가로서 도덕의 법률화를 찬성했다. 나는 그렇게 20대 30대를 살았다..

Best Essays 2019.06.25

시란 무엇인가

(페북에서 시를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을 보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한 때는 시인이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시를 쓰지 않는다. 시는 아무 때나 쓰는 게 아니다. 시는 써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하고 싶은 말이 머릿속을 꽉 채워 더 이상 말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심정에서 시는 나온다. 수많은 단어가 머릿속을 뱅뱅 돌지만 결국 선택되는 것은 극소수 그 상황을 묘사하는 단 하나의 단어, 그것을 찾아야 한다. 그것을 순간적으로 찾아내 배열하는 자만이 시인이다. 시는 어떤 장르의 글보다 힘이 있다. 그냥 실없이 내 뱉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치열한 언어의 경연장에서 살아남은 승리자들이다. 시를 쓰는 날, 나는 무언가에 충만되어 있다, 사랑으로, 정의감으로. 시는 그것을 표현하는 도구, 시인은 그것을..

혼인의 자유, 이혼의 자유

A와 B는 부부로 둘 다 독립적인 경제능력이 있으며, 둘 사이엔 성년의 자녀들이 있다. A는 언제부터인가 B에 대한 사랑이 식었다고 느끼고 C와 가까이 지내게 되었다. A는 B와의 결혼생활을 정리하고 C와 새 출발을 하려고 B에게 이혼을 제의하였으나 B는 결사반대다. 그러나 A는 B와 별거를 선언하고 C와 동거에 들어갔다. 이런 세월이 어느새 5년이 지났다. A는 B와의 대화를 통해선 도저히 이혼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법원에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어떤 결론을 내릴까. 설마했는데, 법원은 A의 이혼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소위 유책주의 판례에 입각해 A의 이혼소송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이혼에 원인을 제공한 A는 이혼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4년 전(2015년) 대법원..

인권 관련 학회의 필요성

지난 토요일(2019. 6. 8)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선 인권법학회, 인권학회, 국가인권위원회가 공동주최하는 인권학술대회가 열렸습니다. 두 학회가 중심이 되어 이런 학술대회를 하는 것은 처음있는 일로 자못 역사적인 일입니다. 아래 글은 학술대회 개회식에서 제가 말씀드린 축사입니다. 이 학술대회의 취지를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ㅡㅡㅡㅡ 안녕하십니까. 오늘 주말인데 쉬지도 못하시고 많은 분들이 이 학술대회에 참석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특히 이 학술회의를 공동으로 주최할 수 있도록 협조해 주신 국가인권위 최영애 위원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인권법학회와 인권학회가 공동으로 이 같은 학술회의를 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저는 우선 현 시점에서 두 학회의 시대적 존재의의에 대해 잠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아버지의 태극기

아버지 유품을 정리하면서 아버지의 손때 묻은 태극기를 발견하고 집으로 가지고 왔다. 우리 아버지는 태극기를 끔찍하게 여기셨다. 국경일엔 아침 일찍 태극기 게양하는 것을 반세기 이상 한 번도 빠짐없이 몸소 실천하셨다. 이제부터 우리 집 국경일 태극기 게양은 아버지의 태극기로 교체될 것이다. 나는 그것이 아버지의 유지라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나만큼 태극기를 사랑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이 십 수년 전 미국유학 시절 우리 집 거실 벽 한가운데엔 태극기가 붙어 있었다. 한국에서 가지고 간 천 태극기를 그렇게 붙여 두고, 매일같이 태극기를 바라보면서, 대한민국을 잊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당시 내 머릿속엔 태극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가 있었다. 태극기를 끼고 산다고 해서 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