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단상

아버지의 태극기

박찬운 교수 2019. 6. 3. 05:34

아버지가 사용하시던 태극기

 

아버지 유품을 정리하면서 아버지의 손때 묻은 태극기를 발견하고 집으로 가지고 왔다. 우리 아버지는 태극기를 끔찍하게 여기셨다. 국경일엔 아침 일찍 태극기 게양하는 것을 반세기 이상 한 번도 빠짐없이 몸소 실천하셨다. 이제부터 우리 집 국경일 태극기 게양은 아버지의 태극기로 교체될 것이다. 나는 그것이 아버지의 유지라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나만큼 태극기를 사랑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이 십 수년 전 미국유학 시절 우리 집 거실 벽 한가운데엔 태극기가 붙어 있었다. 한국에서 가지고 간 천 태극기를 그렇게 붙여 두고, 매일같이 태극기를 바라보면서, 대한민국을 잊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당시 내 머릿속엔 태극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가 있었다.

태극기를 끼고 산다고 해서 애국자가 아님은 분명하다. 요즘은 더욱 그렇다. 주말에 시내에 나가보면, 태극기를 손에 들고 무슨 함성을 지르는 사람들을 자주 보지만, 내 눈엔 애국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다. 오히려 매국이 따로 없다. 집회가 끝나고 길바닥에 뒹굴고 있는 태극기를 보면 천박한 자들에 의해 태극기가 모독당한다는 생각마저 든다.

나는 지난 20년 간 가급적이면 태극기를 멀리하려고 노력했다. 태극기가 자칫 집단주의, 국수적 민족주의의 상징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국가기관 주최도 아닌 모임에서 국민의례를 할 때는 어찌나 마음이 불편한지, 끝나고 나면 관계자들에게 왜 이런 의식을 하느냐고 불평하곤 했다. 나는 모든 순간을 국민으로 살고 싶지 않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그저 인간으로 살고 싶을 뿐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그것이 이 사회를 위하는 진짜 애국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태극기가 없어도(아니 태극기를 최소한 사용해도) 우린 이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많다. 

매일 국가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고,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개인이 많을수록, 사회는 건강하고 성숙해진다.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인권을 존중하고 다른 사람의 아픔을 공감한다. 나는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진 공동체 대한민국을 꿈꾼다. 그저 목청껏 애국가나 부르며 태극기를 펄럭이면서 온갖 혐오와 배타의 언어로 남의 인격을 공격하는 사람들, 이들을 어찌 이 대한민국의 애국자라 부를 수 있겠는가.(2019. 6.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