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단상

골프에 대한 단상

박찬운 교수 2015. 9. 27. 05:31

골프에 대한 단상



그림 같은 초원에서 운동하는 사람들... 아무리 보아도 신선놀음이다. 골프는 참 좋은 운동이다. 그런 골프를 왜 안할까?


대통령이 갑자기 골프 해금령(?)을 내렸다. 공직사회가 살판났다. 그동안 대통령 눈치 보느라 그 좋은 골프를 마음대로 치지 못했으니 얼마나 불편했을까. 대통령이 골프를 안 하니까-나는 그렇게 안다-고위 공직자들이 골프채를 잡으면 좌불안석이었던 모양이다. 근무시간 외에 자기 돈 내고 치면 대통령인들 뭐라 할 수 있겠는가. 그게 죄도 아니고... 그게 문제라면 전국 5백 개가 넘는 골프장은 뭐란 말인가.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공직자들의 골프가 대부분 갑을관계에서 친다니 그 부담은 고스란히 을이 부담할 터이다. 그게 바로 향응이고 뇌물이렷다. 공직자들이여, 그리도 골프가 좋은가? 나 같으면 그 치사한 것 하느니 당장 골프채 꺾어 버리겠다.


나는 이제껏 대한민국 땅에서 골프를 쳐 본 일이 없다. 그럼 대한민국이 아닌 곳에선 쳐봤단 말인가. 그렇다. 외국에선 몇 번 골프장에 가 본 일이 있다. 20여 년 전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 학교 캠퍼스 내에 골프장이 있어 몇 차례 구경차 가, 장작 패듯이 골프채를 휘둘러 본 적이 있다. 당시 학교에서 학생에게 받던 비용은 단 돈 5불이었다. 그 이후에는 국내든, 해외든 어디서도 골프채를 잡아 본 일이 없다.


내가 아무리 돈을 벌지 못한 변호사라도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되는 시절 변호사로 활동한 사람이다. 골프를 치기로 마음먹었다면 그까짓 골프장을 내 마음대로 못 다녔을 리가 없다. 20년 전 선후배 변호사들은 만나면 늘상 골프 이야기였다. 내 주변 변호사 중에서 나처럼 골프와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연전에 들은 이야기지만 사법연수생 중에는 연수원에 다니면서 그 바쁜 와중에도 골프를 배우는 친구들이 많다고 한다. 변호사 개업하면 비즈니스에 골프만한 것이 없다면서 서로들 배우려 한다는 것이다. 씁쓸하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변호사도 비즈니스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니 골프 치며 사교하는 걸 손가락질 할 수가 없다.


그러면 왜 나는 골프를 치지 않는가? 가끔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으로 그 이유를 내게 물어본다. 자주 받는 질문이라 오늘 그것을 해명해야겠다. 그런데 말을 하려니 조금 부담이 된다. 페친들 중에도 골프하는 분들ㅡ특히 변호사 선후배들ㅡ이 꽤 있을지 모르는데, 이 말이 상처가 되지 않을지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페북 하는 이유가 이럴 때 자유롭게 말하기 위한 것이니 혹시 불편하더라도 양해를 바란다.


첫째, 골프는 내게 사치스런 운동이다. 골프란 예나 지금이나 돈 없으면 칠 수가 없는 운동이다. 과거보다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도 웬만한 월급쟁이로서는 쉽지 않은 운동이다. 내 주변은 과거나 지금이나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이 사람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골프채 가지고 다니면서 거들먹거릴 수가 없다.


둘째, 골프는 대한민국에 맞는 운동이 아니다. 골프는 대중화에 한계가 있다. 대한민국의 골프장은 대개 산을 깎아 만드는 데 건설비용이 만만치 않다. 유지비용도 다른 나라와는 비교가 안 된다. 회원권과 이용료가 비쌀 수밖에 없다. 대중화의 근본적인 한계다. 요즘 골프장이 어렵다고 하는 데 그건 당연히 예견되었던 것이다. 비싼 골프장이 전국에 너무 많기 때문이다. 소득 양극화가 세계 최고인 이 나라에서 골프 치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지 않은가.


셋째, 골프장은 환경파괴의 주범이다. 골프장에 가면 아름다운 잔디에 넋을 잃는다, 마치 지상천국에 와 있는 기분이다. 하지만 그것은 삼림파괴와 대량 농약(제초제) 살포의 대가다. 골프장이 보기는 좋아도 주변 자연환경에 주는 악영향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넷째, 골프는 시간이 많이 드는 운동이다. 주변에서 보니 골프란 게 한 번 나가면 하루가 깨지는 운동이더라. 나는 그런 운동을 할 수가 없다. 읽어야 할 책, 써야 할 글이 너무 많다. 나는 솔직히 대한민국에서 공부하는 사람들, 특히 교수들이 골프 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다섯째, 골프는 내게 운동이 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선 골프를 치면 어쩔 수 없이 카트를 타고 움직여야 한다. 그게 무슨 운동인가. 나는 매일 1만보를 걷는다. 이 정도면 18홀 골프코스를 걷는 것 이상의 운동이다. 이만하면 되었지 그 이상 돈 들여 골프장을 출입할 이유가 없다.


이런 이유로 골프와는 담을 쌓고 살아 왔다. 앞으로도 골프를 칠 생각이 없다. 이 이야기, 골프장 주인들이 들으면 꽤나 섭섭할 것 같다. 식자층에서 나 같은 사람이 많아지면 골프장 영업에 위기가 올 테니 말이다. 그러나 어쩌랴, 이 코딱지만 한 나라에 골프는 맞지 않는다는, 내 신념엔 변함이 없으니.(2015. .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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