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단상

추억의 사진 두 장

박찬운 교수 2017. 5. 7. 06:56


 

추억의 사진 두 장

 


2012년 겨울 스웨덴 룬드대학 방문학자 시절 베를린을 방문했다. 거리를 거닐다 우연히 들어간 곳이 훔볼트 대학.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제법 넓은 홀로 들어섰다. 2층으로 올라가는 정면 벽을 보니 뭔가 낯익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독일어 공부한 지가 하도 오래 되어 저게 그건가? 긴가민가했다.


 

2012년 겨울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서



그래서 학생 하나를 붙들고 저 글귀를 가리키며 "저게 무슨 뜻인가요?" 물어 보았다. 그런데... 중국친구인 것 같은데 머리를 긁적 거리며 하는 소리가 "저도 여기 유학생이라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는 게 아닌가. '제기랄 저것도 모르고 무슨 유학을 오나'

 

"아니, 저게 맑스의 그 유명한 테제? 뭐 아니요?"

 

그러다가 한 예쁜 여학생이 앞을 지나갔다. 내가 저걸 모르고 거길 나갈 리가 있나. 냉큼 다가가 학생을 잡고 물어보았다. "저게 무슨 뜻인지 설명해 줄 수 있습니까?"

 

드디어 제대로 된 독일인을 만났다.

 

", 저거요. 저게 바로 맑스의 '포이에르 바흐에 관한 테제'에 나오는 11번째 테제입니다. 이런 뜻이지요. 철학자들은 (지금까지) 세상을 다양하게 해석을 해왔다. 하지만 (이제) 중요한 것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그래, 내가 원했던 해석이 바로 그거였어!

 

나는 그 학생에게 한 가지 더 부탁을 했다. "내가 이 말을 찾아 여기까지 온 사람이요. 멋지게 저것을 배경으로 사진 한장 찍어줄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해서 찍은 사진이 첫 번째 사진이다.



2016년 여름 나는 런던대학 방문학자 신분으로 런던에 있었다. 어느 날 불현 듯 맑스의 무덤을 찾겠다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마침 그가 묻혀 있는 하이게이트 묘지가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맑스는 영국에서 34년을 살다가 1883314일 세상을 떴다. 그가 이곳에 묻혀 있는 것이다. 나는 맑스의 묘지 앞에 섰다. 잠시 묵념을 했다. 자세히 살피니 이 묘지엔 맑스 외에도 그보다 2년 먼저 간 그의 아내와 딸 그리고 그의 손주 내외가 묻혀 있다. 맑스의 가족묘인 것이다.


 

2016년 여름 런던 하이게이트 묘지에서



맑스의 사상에 관심을 갖든 말든, 그의 사상에 동의를 하든 말든, 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상가 중 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그가 생각하고 실천하고자 했던 노동해방은 아직도 진행형이며, 인류가 존속하는 한 영원한 꿈일 것이다.

 

그의 묘비에는 그가 평소 사용했던 두 말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만국의 노동자의 단결하라!" "세상의 철학자들은 이제까지 많은 방법으로 세상을 해석해 왔다. 하지만 문제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두 번째 사진이 바로 그 때 찍은 사진이다.

 

베를린과 런던에서 나는 이렇게 맑스를 만났다. 두 사진을 보고 있자니 내 머릿속은 그 때 그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 베를린과 런던을 활보한다. 과연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그것은 단순한 말도, 단순한 지식도 아니다. 그것은 행동으로 이어지는 지식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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