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정체성에 대하여
이런 글을 올릴 줄이야! 마치 자아비판을 하는듯하고, 종북논쟁에서 자기변호를 하는듯하여 영 마음이 좋지 않다. 그럼에도 한번은 치러야 할 통과의례라면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해 이 글을 쓴다.
내 페친 수가 4천 명이 넘었다. 증가속도로 보아 올 여름을 넘기면 한계수치에 접근할 것이다. 그것 때문인지 요즘 친구요청에 부쩍 보수적인 대응을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보니 5명이 친구요청을 해 왔는데, 전원 거절했다. 플필 사진이 없는 요청은 우선 거절했고, 사진이 있더라도 감이 이상한 경우도 모두 거절했다. 한 사람은 긴가민가해 우선 수락했다가 타임라인을 확인하니 역시 이상해서 즉시 페절하고 말았다.
내가 과거와 달리 페친요청에 보수적인 대응을 하는 게 오로지 페친 수 때문일까? 곰곰이 생각하니, 그것 외에도 요즘 마음속에서 자기검열이 강화된 게 분명하다. 나와 맞지 않은 사람들이 들어와 이상한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아서? 내 글을 곡해하고 이상하게 전파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런 마음이 분명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어제는 ‘격정토로(1) 나향욱의 탄생과 사드배채는 어떻게 가능했을까’라는 글을 포스팅했더니 일부 페친들이 내 담벼락에서 쓸데없는 사상논쟁을 벌였다. 전혀 예기치 않은 일이었다. 이제껏 그런 일이 없었는데 매우 유감스런 일이었다. 내 글 본론에는 유감이 없는 듯한데, 글 중 한 부분을 문제 삼아, 내 역사인식을 탓하는 것으로 보였다.
일부 페친들이 나에 대해 불필요한 오해와 쓸데없는 기대를 하는 것 같아, 이 기회에 분명히 나란 사람에 대해 소개를 해야겠다.
1. 나는 현실정치에 관여하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만일 그것을 좋아했다면 이미 정치의 길에 나섰을 것이다. 나는 의외로 마이크를 잡으면 자신감이 솟는 사람이고, 누구보다 대중연설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기에, 내 마음속에서도 현실정치 참여는 늘 숙제였다. 하지만 나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누구 말대로 저녁이 있는 삶이 필요했고, 자유스런 삶을 좋아하기에 한국에서 정치를 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2. 나는 현실정치보다는 문학, 예술, 역사, 정치사상, 여행 등에 관심이 많다. 사실 SNS를 하면서도 나는 내 전공분야 외에 이런 분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즐겼다. 페친들과 함께 만든 내 책 <빈센트 반 고흐, 새벽을 깨우다>를 읽어보시라. 그게 바로 나다.
내가 정치현실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국민적 도리로, 지식인의 최소한의 사명감 때문에 그렇게 했을 뿐이다.
나는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을 통해 변해가는 이 사회가 너무 걱정스럽다. 나라가 절단 나고 있다는 생각에 밤잠을 잘 수가 없다. 그래서 내 생각을 정리해 포스팅했는데, 이게 의외로 많은 페친들에게 공감을 주었다. 이런 일은 앞으로 내가 SNS를 하는 한 지속할 것이다. 아니, 살아 숨 쉬는 동안 내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라 생각하고 지속해 나갈 것이다.
3. 나는 법학을 공부한 이래로 내 정치적 입장을 헌법적 관점에서 정립해 왔다. 나는 우리 헌법이 자유민주주의를 넘어 사회민주주의를 포섭하는 매우 개방적인 사상체계를 구현한 규범으로 이해한다. 그런 이해 속에서 나는 북구라파 사회민주주의가 대한민국의 방향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갖고 산다. 그것은 내가 몇 년 전 스웨덴에서 1년간 연구년을 보낸 뒤 더욱 강화되었다. 내 글 속에서 복지정책이 유난히 강조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나의 표어 ‘나는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살고 싶다’는 사회민주주의를 내식으로 표현한 말이다.
4. 나는 이명박 정권 이후 정부의 대북정책을 강하게 비판해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북한의 체제나 그 주의주장에 호의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으로 오해해선 안 된다. 나의 보편적 인권관은 결코 북한의 전체주의적 체제와 거기에서 발생하는 인권유린과는 양립할 수 없다.
나는 이번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집단탈북 사건에서 정부의 행태를 강하게 질타하고 이들에 대한 인신보호구제신청을 한 민변의 입장을 지지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북한의 인권문제를 도외시한 얼치기 인권법 교수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이 문제는 보편적 인권의 문제이기 때문에 법률을 공부했고, 더욱 인권법을 전공하는 나로서는 간과할 수 없기 때문에 관심을 갖고 말하는 것이다.
나 또한 북한의 인권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한다. 다만 그 접근방법이 다를 뿐이다. 북한의 인권문제를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는 게 때론 북한당국을 자극해 그것을 더 악화시키는 측면이 있지는 않을까? 쓸데없이 북한을 자극하지 말고 조용한 가운데 북한을 변화시키는 게 궁극적으로 북한인권 개선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까? 이런 고민 속에서 북한인권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5. 나는 이제껏 어떤 정치권과도 어떤 운동권과도 함께 일한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적어도 어떤 특정세력을 일방적으로 옹호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많은 페친들과 함께 이 나라의 부조리에 대해 고발하고 그 시정을 요구할 뿐이다. 그런 정도의 사람이기에 특정 이념에 천착하는 사람들에겐, 그 인식이 철저하지 못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살아온 한계이자 특징이다. 이런 나를 비난할 수 있을까? 나는 단호히 그런 비난을 거부한다. 그것은 내 인생에 대한 모독에 다름 아니다.
(2016. 7. 10)
'삶의 여정 > 고독과 슬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는 해를 바라보며 꿈을 (0) | 2016.12.27 |
---|---|
연결의 행복, 연결의 불행 (0) | 2016.09.15 |
고 김창국 변호사님을 추모하며 (0) | 2016.04.07 |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 (0) | 2016.03.06 |
두 가지 슬프고도 감사할 일 (4) | 2015.1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