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고독과 슬픔

연결의 행복, 연결의 불행

박찬운 교수 2016. 9. 15. 13:00

연결의 행복, 연결의 불행

 

오늘이 추석이라고 하지만 사실 저에겐 느낌이 없습니다. 명절을 같이 보낼 가족 친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명절이란 사회적 제도라 그 사회와 떨어져 혼자 사는 사람에겐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런데 우린 이렇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저는 대한민국 사람이란 것을 잊지 않고 이 순간 추석을 이야기합니다. 친구들이여, 즐거운 한가위 되십시오!

 

연결! 이 문명의 시대는 우리 모두를 실시간으로 연결시킵니다. 물리적 거리란 의미가 없습니다. 지구 반대편에 있을지라도 저와 당신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연결의 물리적 계기는 전기와 전파입니다. 이 두 가지가 없다면, 이 두 가지를 다룰 수 있는 기술을 인류가 개발하지 못했다면, 나와 당신의 연결은 그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하겠지요. 그러니 이 둘을 다룰 수 있게 한 어느 과학자, 어느 기술자에게 찬사의 박수를 쳐야 할까요?

 

생각하면 꿈만 같습니다. 제가 런던의 거리를 이렇게 돌아다닐 줄이야, 책에서만 보던 버트런드 러셀과 버지니아 울프가 백 년 전 돌아다녔을 바로 그곳을 오늘 내가 서성일 줄이야, 그리고 그 감상을 실시간으로 이 연결이란 것을 통해 내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이리 말할 줄이야....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며칠 전 한국에 지진이 났을 때 바로 카톡을 해보니 먹통이었습니다. 전화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것도 답이 없었습니다. 순간적으로 불안과 초조가 밀려왔습니다. 몇 분 뒤 카톡 상대방에게 표시된 숫자가 지워지고 무사하다는 문자가 들어왔습니다. 다시 연결이 된 것이지요!

 

우리가 연결되었다는 것은 과연 축복일까요? 아니면 이게 온갖 불안과 걱정의 주범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까? 연결이 안 되었으면 우리는 오늘 상상 속에서나 만날 겁니다. 시간이 가면 망각이란 놈이 찾아와 그것을 방해하고 결국 우리는 조용히 일상에 적응하게 되겠지요. 그러니 불안도, 걱정도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될 겁니다.

 

21세기에 사는 우리는 어딜 가도 불안과 걱정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우리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우리는 함께 있기 때문에 당신이 느낀 그 지진의 공포를 나도 느낀 겁니다.

 

가끔 저는 이 연결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과거로 돌아가 당신과 나를 연결하는 것은 전기와 전파가 아닌 사랑의 실이길 바랍니다.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한국을 떠나기 전 우리가 함께 있을 때 맡았던 그 살 냄새입니다. 그래서 당신을 상상하고, 꿈속에서 안고 싶습니다. 망각이란 놈이 찾아와 그것을 방해하면 잠시 당신을 잊겠지요. 그러다가 당신으로부터 온 한 통의 편지! 그것을 보는 순간 저는 천하를 얻은 듯한 기쁨으로 하루를 살아갈 겁니다.

 

그게 지금 이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것보다 행복한 삶이 아닐까요?

 

문명의 시대, 2016915일 추석 명절, 런던에서 부질없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2016.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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