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두 영웅 이야기, '다키스트 아워', '핵소고지'

박찬운 교수 2021. 11. 14. 06:41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본 두 개의 영화가 머리에 남아 있다. 잊기 전에 잠시 정리해 보자.

실화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언제나 감동적이기에 이런 영화는 내 영화 버킷리스트의 맨 꼭대기에 위치한다. 며칠 전 본 두 개의 영화가 바로 그것들인데 모두 따로 정리해 놓을 만한 것들이다. 그런데 보고나니 이 두 영화는 함께 정리해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둘은 다르지만 어쩐지 강력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둘 다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다.


하나는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 2018년 개봉된 조 라이트가 메가폰을 쥐고 게리 올드만이 주인공인 전시내각 총리 윈스턴 처칠을 맡아 열연한 영화다.

또 하나는 핵소고지(Hacksaw Ridge). 2017년 개봉되었고 할리웃 배우 맬 깁슨이 감독으로, 앤드류 가필드가 비폭력주의자로 양심적 병역거부자(정확히는 병역에는 참가하나 집총은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 데스몬드 도스역을 맡아 감동을 선사한 영화다.

두 영화는 영웅의 이야기다. 윈스턴 처칠이 히틀러 나치로부터 영국(그리고 동맹국)을 전쟁으로부터 구한 위대한 전쟁영웅이라면, 데스몬드 도스는 이름 모를 일개 병사지만 쏟아지는 총탄 속에서 전우 75명을 구한 전장영웅이다.

한 사람은 전쟁이란 장기판 전체를 보면서 세상을 구원한 영웅이고, 또 한 사람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수 없는 장기판의 졸이지만 우리들의 마음속에 인간애를 각인시킨 영웅이다.

윈스턴 처칠(게리 올드만)

다키스트 아워는 비슷한 시기에 나온 영화 덩케르크와 뗄 수 없는 관계다. 1940년 5월 영국은 개전 이후 최대의 위기에 처한다. 30만 병력이 프랑스 해안 덩케르크에 갇혀 독일군에 쫓기는 독안의 쥐 신세가 된 것. 일단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영국으로의 철수를 감행하지만 그 많은 병력을 실어올 배가 없다. 다키스트 아워는 바로 이즈음의 영국 정가 이야기다.

챔벌린 내각으론 전쟁을 치를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새로운 전시내각이 구성되는데, 그 주인공은 강골이자 독설가인 윈스턴 처칠. 그러나 그에겐 많은 정적이 있다. 챔벌린, 할리팩스 그리고 국왕 조지 6세. 모두 그의 지도력을 의심한다. 이들은 무솔리니를 통해 히틀러와 협상을 하자고 그를 압박한다. 이 상황에서 처칠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핵소고지는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무엇인지 매우 리얼하게 보여준다. 주인공 도스는 제7 안식교회의 교인으로서 모든 폭력을 반대한다. 그러나 전쟁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만 안온한 삶을 살 수 없다고 결심하고 사람을 살리는 의무병으로 참전한 것을 결심한다.

훈련 중 도스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의무병도 훈련기간 중엔 총을 들어야 하지만 도스는 이를 거부한다. 집총거부에 따른 대가는 혹독하다. 동료들의 조롱과 따돌림 급기야는 항명죄로 군사재판까지 받는다. 1차 대전에 참전한 아버지의 도움으로 도스는 총을 들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의무병 참전을 용인 받고 전장으로 나간다.

데드몬드 도스(앤드류 가필드)

이제 그의 앞에 절대절명의 시간이 기다리는데.... 태평양 전쟁이 끝나가는 무렵 최대의 격전지 오키나와. 그는 이 전투에서 총을 들지 않고 한 명 한 명 또 한 명... 이렇게 전우의 목숨을 살린다. 하룻밤이 다 가기 전에 그가 살린 전우가 무려 75명. 그는 총을 들지 않고서 전쟁터에 나간 병사지만 전쟁영웅이 되어 미국 명예훈장의 주인공이 된다.

두 영화를 보면서 감동하는 이유는 영화의 스토리 자체가 크지만 주연 배우의 명연기나 촬영 방법도 한 몫을 한다. 다키스트 아워의 게리 올드만의 연기는 탁월하다. 실제 처칠이 살아 온 듯한 묵직한 연기다. 분장을 얼마나 잘했는지, 표정 하나하나가 환생 처칠 그 자체다. 명 문장가이자 명 연설가인 처칠의 다혈질적 성격과 행동묘사가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수준이다. 역시 아카데미도 이것을 높이 평가했는지, 2018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은 이 영화의 게리 올드만에게 주어졌다.

헥소고지는 전쟁영화의 정수답게 전투 씬이 압권이다. 빗발치는 총탄 세례 속에서 고지를 누비며 도스는 포탄이 터져 발과 몸통이 잘린 전우에게 몰핀을 놓고 업고 달린다. 지옥도가 있다면 그곳이지 다른 곳이겠는가. 이 영화 또한 201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두 부분 상을 받는다. 음향 부분과 편집 부분.

두 영화를 보면서 내내 생각에 잠겼다. 하나를 보면서는 수많은 사람을 죽게 하는 전쟁정치의 냉혹함을 느낀다. 한 사람의 결단에 수 천 수만의 사람의 생명이 결정된다. 인간사의 질서가 그렇다. 우리는 그런 피할 수 없는 질서 속에서 살아간다. 인간사회의 피라미드 맨 꼭대기에 위치한 한 사람이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세상사를 결정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따른다. 그것이 죽음의 행렬이 될지언정.

또 하나를 보면서 죽음의 행렬 속에서 과연 인간애란 무엇일까 하는 의구심을 갖는다. 전쟁은 무고한 생명을 무자비하게 앗아가는데 그 속에서 몇 명의 생명을 구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총을 들었을 때 죽음은 예정되었는데, 또 한 쪽에선 그와 관계없이 한 명의 생명이라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다. 그것이 박애요, 인류애라고 하면서.(2021. 1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