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언더커버’ 두 영화 이야기, <무간도>, <디파티드>

박찬운 교수 2022. 1. 8. 21:08

언더커버(undercover). 영영 사전을 찾아 해석하면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몰래 어느 조직에 들어가 스파이 노릇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하게 볼 수 없지만 미국과 같이 조직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나라에선 왕왕 사용되는 수사기법이다. 경찰관이 마피아에 잠입해 보스의 신임을 얻은 다음 정보를 빼내 보스를 비롯해 조직을 일망타진할 때 쓰는 기법이다.

그런데 언더커버는 꼭 수사기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때론 범죄조직도 수사기관에 스파이를 보낼 수 있다. 전과 경력이 없는 젊은 조직원을 경찰관으로 만들어 정보를 캐내 조직보호와 더 큰 범죄를 위해 이용하는 것이다.

언더커버는 영화의 주요 소재로 사용된다. 이를 소재로 한 작품들은 범죄영화의 한 장르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영화 중에서도 이런 영화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2013년 개봉된 이정재, 황정민 주연의 ‘신세계’도 대표적인 언더커버 영화다. 경찰(이정재)이 조폭에 잠입해 보스(황정민)의 오른팔이 되어 조직을 와해시킨다.

최근에는 시리즈 드라마로도 언더커버 물이 나와 넷플릭스 시청률 상위권에 올랐다. 8부작 시리즈로 나온 한소희 주연의 ‘마이네임’이 그것인데, 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잡기 위해 경찰로 잠입해 숨막히는 복수전을 펼치는 이야기다.

지난 20년 간 나온 범죄영화 중에서 이런 언더커버 영화의 고전이라고 불릴만한 영화가 몇 편 있다. 그 중에서 기념비적 작품을 고른다면 단연 홍콩영화 <무간도>(無間道)일 것이다. 영화 이름부터 심상치 않은데, 무간도는 불교의 무간지옥(無間地獄)에서 나온 말이다.

“무간지옥에 빠진 자는 죽지 않고 영원히 고통을 받게 된다.” 무간지옥은 18층 지옥 중 제일 낮은 곳을 칭하는 용어로, 가장 고통이 극심한 지옥을 일컫는다. 죽지 않고, 고통이 영원히 지속되는 공간인 무간지옥으로 가는 길이 곧 ‘무간도(無間道)’다.

<무간도>는 이중 언더커버 이야기다. 삼합회의 하급조직원 유건명(유덕화)은 보스 한침의 지령에 따라 경찰관이 된 다음 엘리트 경찰관이 되고, 같은 경찰학교 동기생인 진영(왕조위)은 경찰국의 조직범죄 담당 황지성 국장의 지령을 받아 가짜로 퇴학을 당한 다음 삽합회의 스파이로 잠입한다.

두 스파이는 10년 간 각자의 조직에서 성장하여 경찰과 삼합회에서 활약한다. 한침이 마약거래를 할 때 진영은 그 동태를 파악해 황국장에게 알리고, 유건명은 경찰 내에서 그 정보를 빼내 한침에게 알려 경찰의 일망타진을 무산시킨다.

이렇게 해서 경찰 내에서도, 삼합회 내에서도 스파이가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서로 색출 작전에 들어간다. 진영은 시시각각 조여드는 상황에서 위기를 맞고 황국장은 유건명의 정보제공에 따라 한침의 부하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다.

<무간도>의 이중 언더커버 설정은 헐리우드 감독들에게도 기회를 주었다. 봉준호 감독이 2020년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으면서 객석에 앉은 한 노감독을 가리키며 자신에게 큰 영감을 준 감독이라며 헌사를 한 적이 있다. 바로 마틴 스콜세지 감독. 이 사람은 유명세에 비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큰 운이 따르지 않았다.

그런데 마침내 2007년 한 작품을 통해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편집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다. 그 작품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맷 데이먼 주연의 <디파티드>.

재미있는 사실은 이 영화가 <무간도>의 리메이크라는 것. 디테일에선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은 <무간도>를 그대로 옮겼다. 배우가 헐리웃 최고스타로 바뀌고, 공간이 홍콩에서 보스톤으로 바뀌었을 뿐, 보는 즉시 저것은 <무간도>를 베낀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런 작품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는 게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아카데미 작품상이란 창작력이 없어도 원작을 헐리웃 스타일로 잘 바꾸는 능력만 있어도 된다는 것인가?

분명한 것은 미국 관람객들이 <무간도>를 보지 않고 <디파티드>만을 보았다면(아마 대부분 그랬을 것이다) 작품상을 주어야 한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그만큼 잘 만들었기 때문이다.

디테일에서 몇 부분을 바꾼 것(퀴넌의 파트너 디그넘은 무간도에선 볼 수 없는 역이고, 그에 의해 마피아 언더커버 설리반은 마지막 장면에서 죽는다. 이에 비해 무간도에선 경찰 언더커버 진영은 죽지만, 삼합회 언더커버 유건명은 마지막까지 살아남는다.)도 훌륭하다. 그런 차이가 원작을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게 한 것일까? (2022. 1.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