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정치

최저임금법 개정 논쟁에 대해

박찬운 교수 2018. 5. 31. 09:21

최저임금법 개정 논쟁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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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회에서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주요 내용은 그동안 최저임금에 포함되지 않은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에 산입시킨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 돈 전부를 최저임금에 산입시키는 것은 아니다. 상여금은 최저임금의 25%, 복리후생비는 최저임금의 7%를 각각 초과하는 금액을 최저임금에 포함시키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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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문제에 대하여 무조건 반대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럼에도 방향성은 맞다고 본다. 우리 임금체계는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복잡하고 왜곡되어 있다. 사용자와 노동자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에 따라 유리한 임금체계를 만들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우리도 이제는 임금체계를 단순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그래야 노동관계법이나 각종 세법의 적용이 용이하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최저임금에 사용자가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돈은 모두 원칙적으로 산입하는 것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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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세계적으로 볼 때 최저임금에 산입하는 임금의 범위는 나라마다 다르다. ILO마저도 이에 대해서 일률적인 기준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ILO 보고서에 의하면) 일부 유럽국가에선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손님에게서 받는 팁마저 최저임금에 산입하기도 한다(물론 이 경우엔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부분은 사업주가 보전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다른 나라의 예로서 해결할 일은 아니다. 우리의 경제적 상황에 맞춰 우리가 정할 문제다.

다만 그 원칙은 분명하다. 최저임금 제도의 목적이 노동자의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기 위해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최저) 임금을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니 만큼 그 취지를 살리는 방향으로 산입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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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개정안대로 시행된다면 최저임금을 올려 소득주도 성장을 하겠다는 정부의 당초 계획은 상당부분 후퇴했다고 보아야 한다. 개정안의 의도는,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포함해 연간 2500만원내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에겐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임금인상 효과를 주나, 그 이상의 임금노동자들에겐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효과를 주지 않는 것이다.

이를 A라는 사람을 통해 수치로 설명하면 이렇다.

-기본급 157만원(올해 월 최저임금을 받는 것으로 가정)
-매월 정기상여금으로 39만원(이 금액은 최저임금의 25%에 가까운 금액, 이런 상여금은 대체로 연 300%의 상여금을 받는 것을 전제로 12개월로 나눈 것임)
-차비 등의 명목으로 복리후생비로 10만원(최저임금의 7% 이내)
-총 월급 2,060,000원 (연 임금 24,720,000)

A의 경우는 내년에 최저임금이 10% 인상되면(월 최저임금 1,727,000원이 될 것임) 그 인상된 만큼의 임금 인상(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가 오르면 그만큼 더)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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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기본급은 같지만 상여금이 매월 기본급(최저임금)의 25%(연간 300%) 이상(올해는 월 40만원)이거나 복리후생비가 매월 기본급의 7%(올해는 월 10만원)를 넘는 노동자다. 이 경우엔 그 초과금이 모두 최저임금에 산입되기 때문에 사업주 입장에선 최저임금을 맞추기 위해 당분간 임금을 인상할 필요가 없다. 그동안 임금 노동자 중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바로 임금인상으로 연결되는 노동자 연봉이 대체로 3천만 원까지로 본다면 그 구간(2,500-3,000만원)에 해당하는 노동자는 이번 최저임금법 개정으로 상당기간 임금인상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이들 계층에겐 정부가 말하는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소득증대는 어렵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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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번 개정안으로 직격탄을 맞는 노동자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자료는 없다. 대체로 추산하건대 기십만 정도가 될 거라는 추산만 있을 뿐이다. 문제는 이들 노동자들이 대체로 비정규직이거나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기 때문에 자신의 힘만으론 임금투쟁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법이 강제해도 최저임금이 보장될까말까 하는 데 법마저 최저임금 바깥 대상자로 만들면 매우 어려운 처지에 빠질 것은 명약관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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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이번 최저임금법 개정은 방향성은 맞지만 디테일엔 문제가 있다.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서 저소득층의 소득증대를 목표로 한다면 위의 한계선상에 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면밀한 구제조치를 강구했어야 했다. 물론 사용자측의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반발도 무시할 순 없다.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조절하고 최저임금에 산입하지 않는 상여금과 복리후생비의 범위를 좀 더 늘려주는 방법(예컨대 연간 상여금이 최저임금의 400-500%, 복리후생비는 10% 이상)을 숙고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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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나는 현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이 저소득계층의 소득증대로 나타나 경제성장에 도움이 될지 매우 회의적이다. 임금은 사업주가 주는 것이므로 경제가 살지 않으면 아무리 법으로 강제해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대기업 노동자에겐 최저임금 정책은 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진짜 저소득 계층을 위해서 정부가 힘쓸 일은 조세정책과 재정정책 그리고 부동산정책이다. 세금을 더 거두어 복지재원으로 쓰고 공공부문을 일으켜 일자리를 늘려 나가야 한다. 나아가 부동산을 잡아 주거비 비용을 대폭 낮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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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런 정책 모두 정치의 영역에서 결정된다. 국회가 저 모양으로 있으면 정부가 하고 싶어도 못한다. 이 시기 우리가 안고 있는 가장 높은 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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