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권사에 길이 남을 한 사건에 주목하자
지금 이 나라 인권사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만한 사건이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나는 이 과정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들려온 소식으론 큰 기대를 걸기 어렵다. 자칫 며칠 내로 우리들 입에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조종을 울렸다‘고 말하는 사태가 일어날지 모른다.
사안은 지난 총선을 앞두고 입국한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집단탈북 사건‘의 13명 당사자들이 현재 국정원에 의해 불법구금을 당하고 있는지를 심판하는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잠시 민변이 어제 발표한 성명서 일부분을 그대로 인용한다. 이것만 읽어보면 이 사건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 수 있다.
“지난 4월 8일 총선을 앞두고 통일부는 중국 저장성 류경식당에서 일하던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13명‘의 집단 탈북 사실을 발표했다. 그간 탈북자들의 신변보호와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 탈북자들의 신원을 비공개해왔던 정부의 태도에 비추어보면 상당히 이례적인 발표였다. 그 뿐이 아니었다. 탈북했다는 여종업원들 가족의 반응 또한 통상의 경우와 달랐다. 여종업원의 부모들이 4월 18일 유엔인권이사회 의장과 유엔 인권최고대표에게 딸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서한을 보내고 판문점을 통해 남한으로 들어와 딸들을 만나겠다고 하는 등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한 것이다. 게다가 5월 9일에는 아직도 확인되지는 아니하였으나 탈북 여종업원 중 한 명이 북으로 송환을 요구하며 단식하다가 사망했다는 언론 보도까지 나왔다. 그에 따라 국정원의 탈북자들에 대한 수용이 과연 인권보호적 차원에서 적절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내외의 우려가 끊이지 않게 되었다.”(2016. 6. 21.자 민변 성명서)
이런 사정에서 민변 변호사들이 어렵게 북측의 가족들로부터 변호인위임장을 받아 인신보호법에 따라 법원에 구제신청을 했다. 이들을 법정으로 오게 해서 그 진상을 알아보자는 것이다. 이 얼마나 간단하고도 필요한 절차인가. 만일 그들이 지금 제기되는 의혹처럼 자신들의 의사에 반해 한국에 들어왔고, 국정원에 있는 것도 자신의 의사와는 다른 것이라면, 그것은 명백히 불법구금이다.
나는 국정원의 주장대로, 이들이 자진 탈북했고, 지금 이들이 국정원에 있는 것도, 순수하게 그들의 안전을 위해 부득이한 조치임이, 천하에 드러나길 바란다. 그 방법은 아주 쉽다. 국정원이 이들을 법정에 내보내 변호인을 만나도록 하고, 자유스런 분위기 하에서 법관의 심문에 응할 수 있게 함으로써 가능하다. 법대로만 하면 된다.
그런데도 국정원이 이들의 안전과 보호를 명분으로 법정에 보내지 않겠다고 하니 수상하기 그지없다. 지난 4월 입국할 때는 언론에 공개해 사진까지 찍히도록 했음에도 지금에 와서는 법적 절차에도 협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더욱 공개법정도 아니고 비공개 법정에서 심문하겠다는 것을 거부한다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어제 심문기일에 예상했던 대로 국정원은 이들을 법정에 내보내지 않았다. 우려스런 것은 믿었던 법원의 자세다. 어제의 법원 태도는 이 사건에 대해 인신보호절차에 따라 당사자들을 법정에 불러 불법구금 여부를 판단해야겠다는 의지와는 멀었다. 법원은 의당 재소환을 명하고, 국정원이 그것에 불응하면 인신보호법 위반이라는 것을 경고했어야 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법원은 그러지 않았다. 변호인들의 속행 및 재소환요청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심문절차를 종결하려 했다는 것이다. 얼마나 재판이 석연치 않았으면 변호인들이 담당재판부에 대해 기피신청까지 했을까.
대한민국이 언필칭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 어떤 형태든 불법구금의 의혹이 있으면 법원은 그 당사자들을 직접 불러 그 적부를 판단해야 한다. 그게 우리 헌법과 관련 법률이 요구하는 적법절차다. 인신보호법은 바로 이를 위해 만들어진 문명국가의 자존심이다. 이런 것을 못하면 대한민국을 더 이상 민주공화국이라 부를 수 없다.
만일 국가기관이 이런 법절차를 위반하여 법원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다면, 더 이상 볼 것도 없이, 법원은 불법구금임을 인정하고 당사자들에 대한 석방을 명해야 한다. 법원이 이런 당연한 사명을 다하지 않는다면 법원의 존재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인신보호법이란, 17세기 영국이 명예혁명을 거친 다음 만들어 인류사에 선물한, 인신보호절차에서 유래한 법이다. 이 법은 라틴어로 HABEAS CORPUS 라고 하는 데, 그것은 법관이 인신구금의 적법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구금된) 인신을 법관 앞에 내 놓으라‘(YOU HAVE THE BODY)는 뜻에서 유래한다. 그러니 우리 법원은 국정원에 대해 이렇게 딱 부러지게 말해야 한다.
“그 당사자들을 모두 법정으로 데리고 와라, 그들이 지금 불법구금 하에 있는지 아닌지를 우리 법원이 판단하겠다.”
이런 명령에도 국정원이 말을 안 듣는다? 삼권분립 하의 대한민국에서 사법부의 적법한 명령에 국정원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이야 말로 명백한 헌정질서 파괴다. 그 상황이 얼마나 엄중한 것인지, 그것을 내가 여기에서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
한마디로 ’국가 없는 무법의 사회‘가 도래하는 것이다.
(2016. 6. 22)
이 글은 신문 칼럼으로 정리되어 경향신문 2016. 6. 28. 자에 실렸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6272125005&code=99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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