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흐름에 동참하여 전면에 나서는 법률가’, 그가 대법관이 되어야 한다
이 공간에서 몇 번 이야기했지만, 우리 대법원의 구성문제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민주시민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다. 지금 대법원은 편향적인 구성으로 인해 이 사회의 갈등을 해결하는 게 난망한 상황이다.
우리 대법원은, 특정 대학 출신의 남성 법관이 지배하는 구조로, 이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에서 나오는 법적문제를, 적절히 해결하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소수를 대변할 것이라고 기대된 대법관도 한 둘 있지만, 이런 문화에선 단지 구색 맞추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다 보니 지난 몇 년을 돌이켜 보면 특정 정치적 사건에선 권력자의 눈치를 보았고, 소수자나 약자와 관련된 사건에선 그들의 인권을 외면하기 일쑤였다.
이제 대법관 임명절차가 연이어 진행된다. 올 9월로 임기 만료되는 이인복 대법관 후임 인선이 그 시작이다. 해가 지나면 대법원은 일대 인사 바람이 불 것이다. 무려 4명의 대법관이 바뀌고, 그 중에는 대법원장도 포함된다. 대법원에 새로운 피가 수혈되니 그 분위기도 바뀔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보인다.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되는 대법관에게서 어떤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그 나물에 그 밥이 될 공산이 크다. 희망하는 것은 최악의 후보자에 대해서는 여소야대의 국회가 동의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선방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이런 착잡한 생각을 하면서, 어제 오늘, 책 한권을 읽었다. 서울대 법대학장과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안경환 교수가 올 연초 출간한 <윌리엄 더글라스 평전>이다.
윌리엄 더글라스(1898-1980)는 미국 연방대법원 역사상 가장 진보적인 대법관 중 한 명이다. 월스트리트 변호사, 컬럼비아와 예일대 로스쿨 교수, 증권거래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약관 40세에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에 의해 대법관으로 임명되어 무려 36년 7개월 동안 재직했다. 사상 최장기록이며 역대 대법관 그 누구보다도 많은 다수의견과 반대의견을 쓴 인물이다. 가히 미국 사법사에서 진보 대법관의 아이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다.
오늘 나는 이곳에서 이 평전의 내용을 소개할 생각은 없다. 단지 이 위대한 법관이 말하는 한마디만 전하고 싶다. 그가 약관 40에 대법관이 되는 과정에 대해서 스스로 이야기한 것이다. 종신 대법관 9명으로 이루어진 미연방대법관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무리 능력이 있는 법률가라 할지라도 운 중의 운이다. 그렇다고 그게 단순히 운일 수는 없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누구도 대법관이 될 계획을 세울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역사의 흐름에 동참하여 전면에 나서는 것이다. 그리고 여타 조건을 충족시키는 경력을 쌓으면서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 자리는 백인남성에게도 확률은 백만분의 일 미만이다.”(100-101)
이 말 중 내 머리를 강타한 말이 무엇이었을까? 바로 이것 ‘역사의 흐름에 동참하여 전면에 나서는 것’. 누구도 되고 싶다고 해서 대법관이 되는 게 아니다. 임명받기 위해 정치적 운동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대법관이 되고자하는 법률가는, 그런 것과 상관없이 역사의 흐름에 동참하면서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것, 그러면서 대법관으로서의 소양을 쌓아가며 묵묵히 기다리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대법관도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실력 있다는 소릴 듣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더욱 임명권자와 무슨 연줄이 있다는 것만으로 임명되어서도 안 된다. 아무리 보수적인 정권 하에서도 대법관에 임명되는 법률가에겐 일정한 수준과 격이 있어야 한다.
바라건대, 대법관으로서의 능력을 갖고 ‘역사의 흐름에 동참하면서 전면에 나선 법률가’ 중에서 누군가가 천거되어야 한다. 그런 인물이 대법관으로 임명돼야 철학이 있는 대법원이 탄생하는 것이고, 그래야 이 나라의 정의가 세워진다.
이런 바람이 언제까지 우리의 꿈일 수는 없다. 하루빨리 이런 꿈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이 나라 정치질서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정권교체가 그 꿈을 이루는 전제조건임은 두 말하면 잔소리다.
(2016.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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