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 4

이순(耳順)의 의미

이제 제 나이 이순이 되는 게 48시간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이순(耳順)이란 세상의 어떤 소리를 들어도 크게 놀라지 않는 경지를 말합니다. 얼마나 경천동지할 일들이 많습니까. 얼마나 목불인견의 일들이 많습니까. 그런 것들을 보고 듣는다 해도 이제 판단력이 크게 흐려지지 않는 시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이지요. 이 나이가 되면 과연 그럴까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60이 된다고 저절로 귀가 순해질 것 같지 않습니다. 그 보다는 이 나이는 좀 더 경계하며 살아가야 할 시기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이제 60이 되었으니 조그만 일에 흥분하지 말고 세상사를 있는 그대로 보아야겠습니다. 그런 눈을 갖도록 자제력을 터득해야겠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화가 미칠 수 있는 경계의 나이, 그게 이순입니다. 5년 전 나..

아련한 추억을 찾아-중부건어물 시장 탐방기-

점심을 간단히 해결하고 나 혼자만의 산책시간을 가졌다. 오늘 간 곳은 을지로 4가 근처, 중부건어물시장(중부시장).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아주 먼 옛날 생각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1973년 충청도 벽촌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다. 말 그대로 서울은 가까운 친척 하나 없는 사고무친한 곳. 아버지는 한국 전쟁 시 장교로 참전했고 전쟁 후엔 시골 면장을 하신 분이다. 나름 자존심이 센 분임에도 피치못할 이유로 식솔을 거느리고 낯선 서울 땅을 밟았다. 먹고 살기 어려워도 아버지 성품으론 감당하기 힘든 일이 장사다. 그런 아버지가 서울에 올라와 처음 손을 댄 일이 도심 한 가운데 건어물 시장에서 마른 멸치를 파는 것이었다. 뒤에 안 사실이지만 군대시절 친구 중 한 분이 멸치로 유명한 통영 출신이었던 모양이다. ..

코로나 상황에서 읽는 기후위기의 정체-조효제 교수의 <탄소사회의 종말>-

독서하기 힘든 때지난 수 십 년 간 내 몸에 체화된 것이 있다면 책 읽기다. 거의 강박증에 가깝다. 화장실 갈 때도 항상 손엔 책이 들린다. 지하철을 탈 때도, 비행기를 탈 때도 작은 가방엔 책 몇 권을 넣고 도착 때까지 단 몇 쪽이라도 읽는 게 굳어진 내 삶의 패턴이다. 그리고 그 책 중 무언가 강한 울림이 있는 것은 독서가 끝나는 대로 정리한다. 간단하게 정리할 때도 있지만 때론 200자 원고지 50-60장 분량 이상으로 정리하기도 한다. 이런 독서에 대한 강박증상이 인권위에 와서는 깨져 가고 있다. 무엇보다 집에 돌아오면 피곤하고 글자 보기가 어렵다. 책은 쌓여 있지만 손이 안간다. 시간이 있으면 책보다 영상을 대한다. 그러니 과거에 하지 않던 영화보기가 날로 늘어 간다. 올해만도 이리저리 본 영화..

너무 늦은 세운상가 탐방기

어쩌다 공무원이 되니 하루하루가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역시 교수에 비하면 일과가 빡빡하고 좀처럼 나홀로 시간을 갖기 어렵다. 그래도 점심 산책만은 바꾸고 싶지 않은 내 삶의 버릇이다. 직원들과 밥을 같이 먹고 나면 의례 홀로 산책 시간을 갖는다. 하루는 명동의 이곳저곳을, 다음 날은 충무로의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빈다. 코로나 시대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살아가는 지를 매일같이 목격한다. 오늘은 모처럼 혼밥을 했다. 갑자기 점심 약속이 취소되니 어찌나 반가운지(ㅎ ㅎ) 1년 전 내 모습으로 돌아가, 사무실에서 조금 떨어진 후미진 골목으로 들어가 국수 한 그릇과 김밥 한 줄로 간단히 점심을 때우니, 산책할 시간이 넉넉하다. 오늘은 어딘가를 가고 싶다. 발 걸음을 재촉해 도착한 곳은 세운상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