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인생/사상

코로나 상황에서 읽는 기후위기의 정체-조효제 교수의 <탄소사회의 종말>-

박찬운 교수 2020. 12. 9. 05:49

 

 

 

 

 

 

독서하기 힘든 때

지난 수 십 년 간 내 몸에 체화된 것이 있다면 책 읽기다. 거의 강박증에 가깝다. 화장실 갈 때도 항상 손엔 책이 들린다. 지하철을 탈 때도, 비행기를 탈 때도 작은 가방엔 책 몇 권을 넣고 도착 때까지 단 몇 쪽이라도 읽는 게 굳어진 내 삶의 패턴이다. 그리고 그 책 중 무언가 강한 울림이 있는 것은 독서가 끝나는 대로 정리한다. 간단하게 정리할 때도 있지만 때론 200자 원고지 50-60장 분량 이상으로 정리하기도 한다.


이런 독서에 대한 강박증상이 인권위에 와서는 깨져 가고 있다. 무엇보다 집에 돌아오면 피곤하고 글자 보기가 어렵다. 책은 쌓여 있지만 손이 안간다. 시간이 있으면 책보다 영상을 대한다. 그러니 과거에 하지 않던 영화보기가 날로 늘어 간다. 올해만도 이리저리 본 영화가 100편이 넘는다. 이게 나이 탓인가, 환경 탓인가?


그럼에도 나는 독서의 유용성을 강조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좋은 책을 읽고 필요하면 정리해 놓아야 한다. 그것이 나의 지력을 유지시키며 변화하는 세상에서 내 쓸모를 조금이라도 연장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물론 억지로 할 것은 아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읽는 자세가 중요하다. 나는 그동안 잘해 왔다. 요즘 주춤할 뿐이다.


탄소사회의 종말  

지난 주말 모처럼만에 책 한 권을 완독했다. 조효제 교수가 쓴 <탄소사회의 종말>. 그동안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기후위기가 확연하게 머릿속에서 정리되었다. 기후와 인권이 연결되었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도 손에 잡혔다. 인권사회학자가 쓴 기후인권 입문서로 손색이 없다. 그동안 과학 기술의 영역이라고 생각해 온 기후문제가 인권사회학자의 펜대에 의해 새로운 언어체계로 바뀌었다.


이제 기후위기는 단지 남태평양 어느 섬 주민들이 해수면이 올라와 살 땅이 없다고 불평하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북극에서 빙하가 녹으면서 살 곳을 찾아 헤매는 불쌍한 북극곰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 기후위기는 우리 모두의 문제, 지금 당장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면 우리 후대의 앞날이 없는 위기 중 위기다. 곧 기후위기는 우리의 생명권과 건강권 그리고 평등권의 문제다. 지금 찾아온 코로나 팬더믹이 이 모든 상황을 말한다.


기후위기가 초래한 바이러스의 창궐! 그것이 진행되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피폐해지는지는 이제 설명이 필요 없다. 우리가 기후위기에 근원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면 이런 팬더믹을 일상적으로 경험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가 내년이 되고, 내년이 후년이 되는 삶을 생이 끝나는 날까지 견뎌야할지 모른다.


조효제 교수의 <탄소사회의 종말>은 출판 시점이 절묘하다. 그의 말에 의하면 원래 이 책은 코로나 팬더믹을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다만 집필 중에 코로나가 터져 결과적으로 출판시점이 코로나 한 가운데가 된 것이다. 이 책은 그가 지난 10여 년 간 기후위기를 인권으로 연결해 온 그 활동의 결정판이다.

 
한국 인권학의 대부 조효제 교수

나는 우선 조효제 교수의 성실함에, 그의 탁월한 인권관에 경의를 표한다. 우리 시대에 이런 인권연구자를 갖게 된 것은 축복이다. 그는 항상 깨어 있는 자세로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직시하고 그것을 인권으로 연결시켜 해결의 방안을 찾아온 구도자다. 그는 젊은 시절 영국에서 오랜 기간 NGO 활동을 하면서 옥스퍼드와 런던정경대학에서 인권사회학적 관점에서 인권을 보는 방법론을 터득했다. 국내에 들어와 성공회 대학의 교수가 된 이래 그의 학문적 성과는 꽃을 피웠다.


처음에는 세계의 주요한 인권서적을 번역해 우리들에게 인식의 지평을 넓혀 주었다. <세계인권사상사>. <거대한 전환>, <진보와 보수의 12가지 이념> 등이 그런 책이다. 나는 이미 이 책 중 몇 권을 대학원 교재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는 번역에만 치중한 것이 아니다. 번역의 시간이 한 동안 지속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그야말로 ‘조효제의 인권학’이 탄생했다. <인권의 문법>, <인권의 지평>, <조효제 교수의 인권 오디세이> 등이 바로 그런 책이다.


그에겐 그 흔한 스마트폰도 없다. 누구나 하는 SNS도 그에게선 찾을 수 없다. 그는 오로지 골방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그것이 완성되면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강연을 한다. 그리고 새로운 이슈를 찾아 다시 골방으로 들어가고 책을 쓴다. 이렇게 20여 년을 보내니 자연스레 대한민국 인권학 대부라고 불린다.


그는 동학으로서 내게 큰 귀감이다. 국가인권기구의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서 그가 제안한 것들을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가? 이것이 내게 주어진 임무다.

 
인권사회학자가 왜 기후위기 책을 썼을까

<탄소사회의 종말>은 마치 제러미 리프킨의 종말시리즈가 연상되는 책이다. 아마 출판사에서 그 이미지를 노렸을지 모른다. 작명의 과정이야 어떻든 책을 읽으면서 괜찮은 작명이라 생각했다. 현재의 기후위기는 탄소자본주의의 필연적 결과니 이 위기를 종국적으로 극복하는 방법은 탄소사용의 종언이다. 탄소를 사용하며 온갖 경제성장을 해 온 우리 과거와 결별하는 것만이 가장 완벽한 해결책이니, 그것을 리얼하게 말해주는 것으로 책 이름만한 게 없다. 다만 이 책은 탄소사회의 종말을 과학기술적 관점에서 해결하는 방안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그런 문제는 과학기술자가 종국적으로 해결해야 할 영역이다.


이 책은 탄소사회 종언으로 가기 위한 일반시민의 동의와 참여, 지지를 끌어내는 책이다. 어떤 기후학자가 현재의 기후상태가 위기라고 말해도 그 해결은 그 스스로 할 수 없다. 기후위기가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제도와 법률이 바뀌어야 한다. 천문학적 돈이 필요하다. 정부의 상당한 예산이 그것을 위해 써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정치인들이 나서야 하고, 그 추동의 힘은 결국 시민의 몫이다. 결국 기후위기 해결의 열쇠는 과학기술자가 아니라 우리들 일상의 정치를 지배하는 정치인과 그 지지자들인 우리다. 조교수가 기후위기에 관해 책을 쓴 목적은 바로 이것이다.


일반시민들의 시각과 관점을 바꾸지 않고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길이 안 보이기 때문이다. 파리기후협약에서 일거에 탈퇴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계속 집권하는 한 기후위기의 해결은 어렵다. 그를 권좌에서 쫓아내 새로운 미국의 리더십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가 책에서 말하는 것

그가 이 책에서 강조하는 몇 가지가 있는데, 서문에서 그는 기후위기를 보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한다.

“(첫째), 기후문제를 과학적 패러다임으로만 접근하는 것을 넘어, 사회적 차원을 부각한다. 탄소자본주의적 생활양식, 인간의 사회적 배태성, 사회불평등, 젠더, 문화규범, 사회심리의 문제를 전략적으로 다루어야만 효과적인 기후행동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사회학적 상상력과 생태적 상상력을 동원하자고 제안한다.”(14-15)

무엇보다 이 책에서 저자가 핵심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기후위기를 인권의 시각으로 보자는 것이다. 역시 서문의 한 부분이다.

“(넷째) 기후위기를 지구, 생태, 빙하, 해수면, 북극곰의 문제로 프레임하기보다 사람들 자신의 인권문제로 프레임하는 것이 기후행동을 촉발할 수 있는 효과가 크다는 점을 강조한다. 인권담론이 인간중심적인 권을 넘어 자연과 지구의 권리를 포괄하는 넓은 개념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강조한다.”(15)

  기후-인권적 관점의 유용성에 대해선 본문 이곳저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핵심적 내용은 이부분이다.

오늘날 환경과 인권의 관계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인권운동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환경운동은 인권담론의 유용성을 인정한다.’ 인권의 관점에서 기후위기를 보면 기후정책을 마련할 때 어디에 우선을 두어야 할지에 관해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다. 어떤 인권이 침해되는지, 어떤 집단이 특히 취약한지가 뚜렷이 확인되기 때문이다.”(203)

기후위기를 인권의 시각으로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선 제5장에서 다섯 가지를 볼 수 있지만, 그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으면, 후기에 밝힌 몇 부분만이라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 다른 방법은 없다. 국제적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다른 나라들도 열심히 할 것이라고 믿고 기대하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바를 최선을 다해 수행하는 수밖에 없다.“(371)

우리 마음과 현실에 존재하는 각 부문 사이의 칸막이를 허물어야 한다. 기후위기를 주로 환경문제로 인식하고, 주로 환경부에서 다루고, 주로 환경운동가들이 주도하고, 주로 환경 전문기자들이 기사를 쓰고, 주로 지구과학/기상과학/해양학 서가에 책들이 모여 있는 한, 기후대응은 어렵다.”(371)

"환경뿐만이 아니라 경제, 산업, 언론, 여성, 인권, 사법, 복지... 시민사회, 이주, 국제개발... 학문 등 모든 분야에서 관심을 가지고 자기분야에서 할 수 있는 고유한 방식으로 힘을 보태야 한다.“(371)

인권에서도 시간의 지평을 길게 잡아야 한다는 견해가 많다. 눈앞의 직접적 차별과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그렇게 감수성을 강조하면서, 인간의 장기적 생존에 대한 감수성에는 관심이 없다면 시대적 적실성이 부족한 인권담론이 된다.”(372)

“‘착한 조상이 되려면 세대 간 정의 관념, 그리고 자신의 삶 후에도 이어지는 장기적 계획의 관점,  대성당 건축적 사고방식’(cathedral thinking)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졌다.”(373)

기후위기는 전문가, 정치인, 행정가에게만 맡길 수 없는 문제다. 모든 시민이 참여하고 발언해야 한다. 이 사태는 전문가와 지도자가 이끄는 대로 따르기만 하는 되는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과학의 기본 팩트를 존중하되 위기의 리스크를 가늠하고, 합의를 해석하고, 실천에 따르는 책임과 부담을 시민들이 민주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문제다.”(3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