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인생 98

나를 또 울린 소설 <무국적자>

나를 또 울린 소설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나는 원래 눈물이 많은 사람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책을 읽으면서 왜 이렇게 눈물이 쏟아지는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의 감정선이 무너진 것은 아닌가. 내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해보지만 나오는 것은 또 눈물이다. 구소은의 를 읽으면서 한없이 울었던 내가, 일주일도 안 돼 또 다시, 그의 글을 읽으며 서글피 울었다. . 독서의 여운이 길다. 새벽녘 마지막 장을 넘긴 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이 떠오른다. 그 어느 사람도 이 시대의 영웅은 아니다. 어쩌면 (소설에서 말하듯)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의 삶이 내 가슴속으로 들어와 내 마음을 후빈다. 나도 그들처럼 이방인이요, 무국적자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줄거리이 ..

소설이란 무엇인가 -나를 울린 <검은 모래>-

소설이란 무엇인가 -나를 울린 - 2013년 제1회 제주 4.3평화문학상 수상작 나를 울린 오랜만에 많이 울었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일이 일어다다니... 영화를 볼 때는 자주 눈물을 흘리지만 책을 읽을 때 이렇게 소리 내 울은 적은 기억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흔치 않은 경험이다. 솔직히 말해 이 소설 책을 주문할 때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내가 곧잘 읽는 일간지 서평란에서 발견한 책도 아니고 믿을 만한 독서가의 추천을 받은 책도 아니었다. 그저 우연히 알게 된 무명작가(?)의 SNS 글을 보면서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소설가의 첫 작품이란 어떤 수준일까, 나도 만일 훗날 소설을 쓴다면 그 정도 필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있었을 ..

겸산 최영도 변호사는 누구인가(3)

겸산 최영도 변호사는 누구인가(3) -법률가를 넘어 시대의 지성을 추구하다- 음악감상가... 평생 음악을 듣다 미술 애호, 토기수집, 세계 여행과 더불어 선생이 몰입했던 취미는 클래식 음악감상이었다. 선생은 돌아가기 직전까지 기회가 될 때마다 가까운 지인을 자택으로 불러 음악감상을 함께 하셨다. 손님을 초대하면 상당한 시간을 들여 선곡을 하고 그것을 간단히 정리해 놓은 다음 음악을 틀기 전에 곡의 배경에 대해 설명을 하셨다. 나도 선생의 초대로 그 모임에 가 본 적이 있는데, 음악을 모르는 나로서도 격조 있는 선생의 설명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오래 전일 것이다. 내가 이런 질문을 드린 적이 있다. “변호사님, 어떻게 해서 음악감상을 취미로 하게 되었습니까. 전쟁을 경험한 세대들에게서 좀처럼 보..

겸산 최영도 변호사는 누구인가(2)

겸산 최영도 변호사는 누구인가(2)-법률가를 넘어 시대의 지성을 추구하다- 용산중앙박물관 내 겸산 최영도 전시관. 나는 2018년 6월 13일 선생의 발인 다음 날 박물관을 찾아갔다. 전시실 내엔 박물관에서 마련한 조화가 관람객을 맞고 있었다. 위 사진은 국립중앙박물관 겸산 최영도 관 모습, 아래는 전시품 중 하나인 통일신라시대의 . 선생은 1983년 이 토기를 구입하는 데 거의 작은 집 한 채 가격의 돈을 지불했다. 한 평생 토기 사랑, 아낌 없이 사회에 환원하다 용산중앙박물관을 가면 상설전시관 중 기증전시관에서 겸산 최영도 관을 만날 수 있다. 선생은 30여 년간 모은 토기 전량 1,719점을 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법률가 중에 예술을 탐미하는 사람이 꽤 있다. 그 중엔 고가의 서화나 도자기를 수집하..

겸산 최영도 변호사는 누구인가(1)

겸산 최영도 변호사는 누구인가(1) -법률가를 넘어 시대의 지성을 추구하다- 이 글은 민변이 발간하는 111호(2018. 12) 인물탐구 코너에 실렸다. 긴 글이라 3편으로 나누어 이곳에 싣는다. 겸산 최영도 변호사(1938-2018). 판사로 봉직하다가 1973년 유신정권 시절 사법파동의 주역으로 옷을 벗었다. 그 뒤 변호사로 인권변호에 힘썼고 대한변협 인권위원장, 민변 대표, 참여연대 공동대표 등을 거쳐, 노무현 정부에서 국가인권위원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 , 클래식 음악 에세이 , 유럽미술관산책 가 있다. 이 글은 한 사람과 그가 걸어온 길에 대한 헌사다. 겸산 최영도 변호사(이하 ‘선생’이라 호칭함, 이것은 존경의 염을 담아 부르는 경칭임). 선생을 잘 모르는 분들에게 어떻게 소개하는 게 좋을까..

레 미제라블과 무상교육

레 미제라블과 무상교육 에 많은 페친들이 관심을 보이는 것에서 힘을 얻어 한 가지 이야기를 덧붙이고자 한다. 그것은 빅토르 위고가 이 책을 쓰면서 유난히도 무상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빅토르 위고가 레 미제라블을 쓸 당시 프랑스 나아가 유럽은 어떤 상황이었는가. 산업혁명의 여파로 사회의 부는 양극화되었고, 왕정체제와 신분제는 여전히 힘을 떨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평등을 주장하는 공산주의자의 출현은 역사의 순리이었다. 하지만 위고는 공산주의에는 명확히 반대했다. 그는 공산주의의 속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에겐 공산주의는 경쟁을 소멸시키고 부를 죽이는 이념이었다. “공산주의와 토지 균등법은 둘째 문제(분배)를 해결한다고 믿는다. 그것들은 잘못 생각하고 있다. 그것들의 분배는 생산을 죽..

대한민국 법률가 역사에 정의는 있었는가 -김두식의 <법률가들>을 읽고-

대한민국 법률가 역사에 정의는 있었는가 -김두식의 을 읽고- 김두식, 또 하나의 문제작을 낳다와우! 이런 책이 나오다니.... 신간 소개기사를 보자마자 주문을 넣었더니 저녁 늦게 책이 도착했다.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이 책의 진가를 단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만시지탄! 어찌하여 이런 책이 오늘에야 나왔던가. 이 나라의 법률가들의 뿌리를 이해하는데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라면 두 말 할 것 없이 시간을 투자할만한 책이다. 2018년 겨울 문턱에 들어서면서 나온 문제작, 김두식 교수의 (창비)이다. 김두식은 이제 이 시대가 낳은 빼어난 문장가 중 하나라고 부를만하다. 그는 을 비롯해 몇 권의 책을 통해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법률가 작가다. 특히 전작 은 특권의식으로 가득 찬 대한민국 법률가들을 이해하..

미국 건국의 진정한 일등공신, 알렉산더 해밀턴 -베개 같은 책 <알렉산더 해밀턴>을 읽고-

미국 건국의 진정한 일등공신, 알렉산더 해밀턴-베개 같은 책 을 읽고- 알렉산더 해밀턴(1755-1804) 오늘(2018. 9. 29) 오전 드디어 대작을 완독했다. 이 시대 미국의 최고 전기 작가라고 불리는 론 처노(Ron Chernow)가 쓴 (서종민·김지연 옮김). 1426쪽의 책이다. 이 책을 읽느라고 지난 2주 동안 극도로 절제된 생활을 했다. 집에 들어오면 바로 독서 모드로 전환, 취침 전까지 한 두 시간, 새벽 4시부터 아침 식사 전까지 또 한 두 시간을 할애해 읽었다. 특히 지난 추석 명절 때엔 두문불출 논문을 쓰다가도 하루 몇 시간은 이 책 읽는 데에 정성을 쏟았다. 빠른 속도로 읽었지만 족히 30시간 이상이 걸린 것 같다. 그리고 이 리뷰를 썼으니 40여 시간을 이 책과 보낸 셈이다. ..

독서와 나이

독서와 나이 추석 연휴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집중하던 논문 쓰기를 잠시 중지하고 책상 앞에 쌓아 놓은 책 중 한 권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나온 알렉산더 해밀턴 전기입니다. 책 두께가 제 베개 보다 두껍습니다. 무려 1400쪽. 일주일 전부터 틈틈이 읽고 있는데 끝까지 읽으려면 며칠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저 책을 다 읽으면 미국 초대 재무장관을 지낸 해밀턴뿐만 아니라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대부분에 대해 새로운 이해를 할 수 있을 겁니다. 미국 건국 초기 역사를 한 손에 쥐게 되는 것이지요, 그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뿌듯합니다. 나이 먹어가면서 실감하는 게 있다면 기억력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기억력 감퇴를 느낍니다. 저 같은 사람은 사실 기억력이 가장 중요한 재산인데 요즘 영 자신이 없습니다. 책..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낀다 -겸산 최영도 변호사 유고작을 읽고-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낀다-겸산 최영도 변호사 유고작을 읽고- 겸산 최영도 변호사의 유고작(기파랑) 고 최영도 변호사의 유작이 나오다며칠 전 연구실로 소포가 배달되었다. 책이었다. 보낸 이의 이름을 보자마자 내 입에서 나지막한 탄성이 나왔다. “아, 그 책이 나왔구나.” 지난 6월 우리 곁을 떠난 겸산 최영도 변호사(이하에선 존경의 의미로 ‘선생’이라 칭함)의 서양 미술관 순례 (보정판)가 나온 것이다. 나는 장례 식장에서 선생의 아드님이자 후배인 최윤상 변호사로부터 선생의 마지막 작업을 듣고 눈시울 붉혔었다. 겸산 최영도 변호사(1938-2018). 판사로 봉직하다가 1973년 유신정권 시절 사법파동의 주역으로 옷을 벗었다. 그 뒤 변호사로 인권변호에 힘썼고 대한변협 인권위원장, 민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