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인생 98

한 가문을 넘어 모든 이의 역사가 된 가문 이야기 -서간도 시종기를 읽고-

한 가문을 넘어 모든 이의 역사가 된 가문 이야기-를 읽고-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내가 워낙 한미한 집안출신이라 그런지, 가문, 집안, 문벌...이런 유의 이야기 하는 걸 싫어한다. 나는 나대로 살고 싶지, 어떤 누구의 아들로, 어느 가문의 일원으로 살거나 평가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한 가문에 대해선 알아보고 싶고, 그 앎을 널리 전파하고 싶다. 이미 그 가문은 일개 가문을 넘어 우리 모두의 역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에게 감동 이상을 준 전설의 가문이기 때문이다. 우당 이회영 선생(1867-1932) 가문. 의 저자 이은숙 여사와 남편 우당 이회영 선생 우당의 북경 시절(1924), 앞 줄 맨 오른쪽 인물 우당 형제들은 조선 중기 명재상 백사 이항복의 자손으로 그 집안은 대대로 정..

글은 넘치고 행동은 과소한 시대 -'서준식의 생각'을 넘기면서-

글은 넘치고 행동은 과소한 시대-'서준식의 생각'을 넘기면서- 갑자기 서준식이 생각난다. 그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분명 이 땅의 어느 곳에서 변화무쌍한 대한민국을 바라보면서 깊은 시름을 하고 있을 텐데, 소식을 모르고 산지 십 수 년이 넘었다. 서준식? 이젠 많은 사람들 머릿속에서 희미한 기억으로만 남아 있을지도 모를 인권운동가. 그러나 내 기억 속엔 언제나 진실하고 신념에 가득 찬 사람으로, 입이 아닌 근육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절절히 보여준 사람으로 남아 있다. 잊혀져가는 그를 끌어내기 위해 이젠 그보다 더 유명해진 두 형제를 먼저 소개하자. 서준식의 형 서승. 한국에서 오랜 세월 동생 준식과 함께 비전향 장기수로 감옥 생활을 했다. 1990년 출옥해 일본으로 돌아가, 교토의 명문 ..

보수의 위기, 대한민국의 위기 -러셀 커크의 <보수의 정신>을 읽고-

보수의 위기, 대한민국의 위기-러셀 커크의 을 읽고- 대한민국 보수의 위기 이제 곧 선거철이 다가 온다. 다가오는 선거도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보수를 표방하는 측은 그런 대결구도가 표 받는 데에 유리할 것으로 생각해, 말끝마다 죽어가는 보수를 살려달라고 외칠지 모른다. 하지만 촛불혁명을 경험한 우리 국민은 이제 그런 선거구호에 현혹되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대한민국엔 제대로 된 보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도 언젠가 우리나라 정치판의 보수에 대해 이렇게 일갈한 바 있다. “지금 정치판에 나와 보수 혹은 보수 우파를 말하는 이들은 가짜다. 그들은 매국적이고, 전체주의 파쇼이며, 전근대적 부패왕조 추종자들이다. 그들은 보수를 가장한 파렴치한들이다. 진짜 보수가 살아 있다면 이들에게..

"방황하고, 태만하고, 죄를 지을 수 있다. 그러나 올바른 사람이 돼라."

"방황하고, 태만하고, 죄를 지을 수 있다. 그러나 올바른 사람이 돼라." 알브레이트 뒤러 성탄절입니다. 사위가 조용합니다. 오늘 같은 날은 늦잠을 자도 될 것 같습니다. 푹 쉬기 바랍니다. .저도 조금 더 자고 싶지만 일찍 깨고 말았습니다. 나이 먹어가면서 초저녁 잠은 많은데, 새벽 잠이 없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적응하면서 살뿐입니다. 조용히 일어나 묵상을 한 다음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책 한 권을 꺼냈습니다. 몇 년 전 완독한 레 미제라블. .빅토르 위고의 이 위대한 소설을 들척이며 밑줄쳐 놓았던 부분을 읽습니다. .제가 이 책을 읽은 것은 그 내용을 알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위고 나이 60이 되어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다 경험하고 쓴 이 책에서, 삶이란? 인간이란? 죄란?... 이런..

올챙이 시절의 일본과 이토 히로부미

올챙이 시절의 일본과 이토 히로부미 . 나는 인권법, 그 중에서도 국제인권법을 주 전공으로 연구한다. 박사학위도 국제법으로 받았다. 그런 연유로 시사적인 문제가 국제법 분야와 연관될 때는 특별히 관심 있게 보고 내 의견을 자주 피력한다. 박근혜 정부의 일본군위안부 합의, 이명박 정부의 UAE 비밀군사협정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 것도 그런 이유다. 두 사건은 우리나라 외교사의 대실책이며 국제법적 재앙이었다. .작년 가을 일본에 갔을 때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이 있다. 이토 히로부미(고단샤 학술문고). 문고판 책 표지에 이토를 ‘근대 일본을 창조한 사나이’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책을 사와 몇 달 동안 시간 있을 때마다 한 부분 한 부분을 음미하며 읽고 있는데, 오늘 아침 읽은 부분이 참 흥미롭다. .187..

절망의 종교, 대한민국 극우의 첨병이 되다

절망의 종교, 대한민국 극우의 첨병이 되다-윤정란의 를 읽고- 인류역사에서 수천 년의 생명력을 유지해온 몇 몇 종교를 우린 보편 종교라고 부른다. 보편 종교의 특징은, 개인적 차원에선 공포(그 원인이 자연이든 인간의 권력이든)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고 진리를 추구해 참다운 자유에 이르게 하는 한편, 사회적 차원에선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는 것이다. 어떤 종교든 이 보편성을 유지하지 못하면 언젠가는 인간 사회로부터 버림을 받고 인류사에서 퇴출될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의 기독교 그중에서도 개신교는 위기다. 대한민국 국민 중 천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개신교도라고 하지만 지금 보편 종교로서의 개신교의 의미를 살리고 있는 신자는 과연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개..

가인 김병로

가인 김병로는 누구인가-한인섭 를 읽고- 며칠 짬을 내 책 한 권을 읽었다. 아주 샅샅히 읽었다. 한인섭 교수가 쓴 . 900여 쪽에 가까운 대작이다. 저자가 오랜 기간 천착해 온 일제 강점기와 그 이후의 사법사(인권변호) 연구의 결정판이다. 방대한 내용을 주로 1차 자료에 의존하면서 독자적인 해석론으로 서술했다. 식민 시대의 항일운동, 그 중에서 가인 김병로를 포함한 애국지사의 활동에 대해서, 일반적 역사학적 관점에서 연구한 책은 적지 않지만, 그 운동과 인물을 오로지 ‘법’이란 앵글을 통해 분석한 법사학적 저술은 만나기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는 1910년대부터 1960년대 초까지를 다룬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사법사다. 3-4일 시간을 내 아주 철저히 읽었다. 마치 고시 공부하듯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

잔잔한 감동을 선물한 조용환 변호사의 <안데스를 걷다>

잔잔한 감동을 선물한 조용환 변호사의 1.한 해가 저물어가는 때 아름다운 책을 읽었다. 조용환 변호사가 최근 출간한 여행기 (진실의 힘).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인지 모르겠는데 독서와 관련해선 묘한 심리가 있다. 선물로 받은 책은 대체로 잘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도 자신의 필요에 의해 제 돈 주고 산 책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예외였다. 저자가 보낸 선물이지만 뭔지 읽어봐야겠다는 강한 욕구가 있었다. 저자에 대한 나의 특별한 기대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사람이 쓴 책이라면 뭔가 틀림없이 다를 거야.’ 드디어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나니 허전함과 함께 찐한 여운이 남는다. 어떻게라도 이 책을 소개해 보고 싶은데 사실 막막하다. 갑작스럽게 언어의 빈곤함을 느낀다. 요령있게 내가 받은 ..

뒤 늦은 독후감 -손정목의 <서울도시계획이야기> 전 5권을 읽고-

뒤 늦은 독후감-손정목의 전 5권을 읽고- 너무나 늦게 읽은 책주말을 온전히 독서에 투자했다. 손정목(1928-2016) 선생의 전 5권. 우연히 알게 된 책인데, 읽으면서 줄곧 이런 엄청난 책을 어찌해서 이렇게 늦게 읽었는지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책이 나온 지 어느새 14년. 출판사는 나와도 특별히 관계가 깊은 도서출판 한울이다(나는 한울에서 지난 20년 동안 전공서만 5권 이상을 출판했다). 나는 유럽 도시 어딜 가도 그 도시의 역사를 알기 원한다. 작년 런던에서 반년을 지낼 때는 시내 이곳저곳을 발로 더듬으며 그곳의 역사를 알아보았고 그것을 글로 정리하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정작 우리 것은 잘 알지 못한다. 은연 중 문화적 사대주의가 내 삶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부끄러운 일이다...

내 삶의 표상 겸산 최영도 -신작 ‘아잔타에서 석불사까지’ 출간에 부쳐-

내 삶의 표상 겸산 최영도 -신작 ‘아잔타에서 석불사까지’ 출간에 부쳐- 책 표지 아잔타 제1굴의 연화수보살(위), 석굴암 본존불(아래), 이 두 걸작이 선생이 반백 년간 발로 쓴 불교기행의 최종결정판이다. 하나는 불교 발상지인 아잔타에서, 또 하나는 동쪽 끝 경주 석불사에서 만난 것이다. 내 삶의 표상 겸산 최영도 이 글은 한 사람과 그가 걸어온 길에 대한 헌사다. 겸산 최영도 변호사(이하 ‘선생’이라 호칭함, 이것은 존경의 염을 담아 부르는 경칭임). 모르는 분들에게 선생을 어떻게 설명하는 게 좋을까. 4년 전 출판된 문명기행기 (네잎클로버) 서문에서 내가 선생께 드린 감사의 말씀을 옮기는 것으로 이 글을 시작하자. 겸산 최영도 변호사(1938-현재, 사진 브라보라이프). 판사로 봉직하다가 197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