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나의 나태함을 날려 버린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

박찬운 교수 2023. 11. 17. 05:18

나의 나태함을 날려 버린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다. 나라 거덜 날 것 같아 하루라도 빨리 물러나길 바랐던 이명박과 박근혜 시절이 그리울 정도다. 공정과 상식을 표방한 정권이지만 애당초부터 그것을 바랄 순 없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착잡하고 머리 속엔 좌절, 절망, 포기 같은 부정적 단어만 맴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자기 최면을 걸자, 결코 여기서 멈추지 말고 한 발이라도 앞으로 나아가자. 사람이 하는 일이니 분명 우리가 바꿀 수 있다.

영화 한 편이 나의 나태함에 경종을 울린다. 성실하게 산다고 자부했지만 이 영화를 보니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들어 몸이 예전과 같아 나도 이제 늙은 모양이라고 스스로 의기소침해 있었다. 아직 할 일이 많은 데 이 정도면 많이 했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자기 합리화를 했다. 이 영화가 내 삶을 점검하는 기회를 주었다.

최근(2023년 9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 이 영화는 전설적인 장거리 수영선수이자 저널리스트인 다이애나 나이에드(Diana Nyad, 1949년 생)의 삶을 다룬 스포츠 전기물. 이 영화는 여성 중심 영화다. 주인공인 나이애드(아네트 베닝)도, 그녀의 절친이자 코치인 보니 스톨(조디 포스터)도 여성이며, 감독 엘리자베스 차이 베사도 여성이다.(또 한 명의 감독 지미 친은 남성)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위대한 한 여성에 대한 헌사라고나 할까?

이 영화의 간단한 배경과 스토리는 이렇다. 나이애드는 어릴 때부터 물과는 뗄 수 없는 운명. 그의 이름 나이애드는 그리스어로 강(물)의 요정이란 뜻. 20대에 이미 그녀는 바다 수영 마라톤으로 수많은 신기록을 보유한다. 한번 바다에 들어가면 수십 시간 동안 수십 킬로미터를 수영했고, 급기야는 100마일(160킬로미터)를 넘기는 기록까지 보유한다. 그러나 그녀는 20대 마지막에 도전한 쿠바-플로리다 수영을 성공시키지 못하고 현역에서 은퇴해, 30년이 넘는 기간 스포츠 저널리스트로서 삶을 살아간다.

이렇게 살아온 나이애드가 나이 환갑이 되어 젊은 날의 꿈이었던 쿠바-플로리다 수영에 다시 도전한다. 누가 보아도 무모한 도전이다. 힘으로 펄펄 날던 20대에도 실패를 했는데 이제 할머니가 되어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수영에 도전을 하다니.... 그러나 그의 도전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처음에는 절친이자 파트너인 보니 스톨마저 반대를 했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그녀와 함께 한 보니는 그녀의 코치가 되어 그 무모한 꿈에 동참한다. 이 해역을 손바닥처럼 알고 있는 항해사 존 버틀렛(리스 에반스)도 이 불가능의 도전에 동참하니 드디어 드림팀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쿠바 하바나를 떠나 플로리다 키 웨스트를 향하는 이 대담한 도전이 쉽게 성공할 리가 없다. 2년 간 1차에서 4차에 이르기까지 바다에서 수십 시간 사투를 벌렸지만 결국 기상 악화, 거센 파도, 체력고갈, 독해파리의 공격 등으로 번번이 좌절을 맛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더 이상 도전할 힘도 명분도 없어졌다. 보니도 버틀렛도 떠났다. 나이애드는 혼자가 되었다. 하지만, 하지만... 그녀는 포기할 수 없었다. 하바나를 떠나 망망대해를 건너 키 웨스트에 도착해 백사장에서 발을 딛고 환호하는 사람들 품에 안기는 꿈을 버릴 수가 없었다.

2013년 8월 말 다섯 번째 도전이 시작되었다. 이제 그녀의 나이 64세. 나이애드를 떠났던 팀들이 다시 모였다. 그들도 나이애드를 통한 횡단의 꿈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던 것이다.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하바나를 떠나 플로리다로 향하는 뱃길은 여전히 어려웠다. 식인 상어가 출몰하고 체력은 고갈되어 꼼짝도 못하는 상황이 일어났다. 보니가 바다에 뛰어들어 마지막 격려를 한다. “이제 다 왔다. 저기 불빛이 보이지 않니, 바로 저기가 키 웨스트야” 나이애드는 마지막 힘을 낸다.

드디어 2013년 9월 2일. 나이애드는 수많은 사람들의 갈채 속에 키 웨스트에 도착한다. 하바나를 떠난 지 52시간 54분. 그녀는 거의 110 마일(177킬로미터)을 쉼 없이 수영해 온 것이다.

그녀가 키 웨스트에 도착해 사람들에게 한 말이 감동적이다. 결코 포기해선 안 됩니다. 무엇을 이루는데 늦은 나이는 없습니다. 수영은 고독하지만 팀이 필요합니다.”

나이애드를 연기한 아넷트 베닝과 보니를 연기한 조디 포스터 이 둘의 연기도 탁월하다. 이 영화 한 편을 찍기 위해 이들이 혼신의 힘을 다했다는 것은 영화 곳곳에서 알 수 있다. 수영하는 장면은 마치 실제 장면을 찍은 자료사진처럼 보일 정도로 극 사실주의에 가깝다.
(2023. 1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