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세기의 명예훼손 재판을 영화화한 <나는 부정한다>

박찬운 교수 2024. 5. 25. 06:18

세기의 명예훼손 재판을 영화화한 <나는 부정한다>

 

 
좋은 영화를 보았다. 영화가 끝났지만 머릿속에 장면 하나하나가 떠오른다. 이런 영화는 훗날 추억하기 위해서도 간단하게라도 기록해 두는 게 좋다. 영화를 본 다음 이리저리 자료를 찾아 보고 이 글을 쓰는 것이니 영화 리뷰라기 보다는 이 영화에 대한 잡다한 관찰기다.
 
우리 말 번역으로는 <나는 부정한다>(Denial). 2016년 영국 감독 Mick Jackson이 만든 실화를 배경으로 하는 홀로코스트 관련 영화다. 나치의 만행으로 600만 명 유태인이 2차 대전 중 가스실에서 죽은 것은 공지의 사실. 인간의 악마성을 극단의 수준까지 보여준 인류 역사의 대재앙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이것을 기억하기 위한 영화가 수없이 만들어졌다. 할리우드의 명장 스필버그도 그 하나를 만들었으니 영화사에 빛나는 영화, <쉰들러 리스트>다. 이런 영화를 보면 우리의 양심이 마치 둔탁한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든다. 결코 인류 역사에서 재현되어서는 안 될 역사다. Nunca mas!(결코 다시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만행의 책임국인 독일을 비롯해 유럽의 여러 나라는 홀로코스트를 조금이라도 미화하거나 부정하는 것 만으로도 처벌을 한다. 그것은 표현의 자유로 누릴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세상에는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산다. 이 자명한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역사가가 나타나고 있으니 말이다. 그들은 히틀러의 책임을 부정한다. 히틀러가 유태인 학살을 승인한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더욱 홀로코스트가 있었다는 객관적인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아우슈비츠의 독 가스실도 유태인을 집단살해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당시 티푸스라는 전염병을 막기 위해 가스 소독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이런 홀로코스트 부정에 앞장서고 있는 역사가 중 하나가 영국인 데이비드 어빙(배우 티모시 스폴).
 
영화의 주인공은 데보라 립스타트 교수(배우 라이첼 바이스). 그녀는 미국 아틀란타에 소재하는 에모리 대학의 역사학자로 홀로코스트 연구가이다. 유태인 가문의 딸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유태인 역사에 관심을 갖고 자랐다. 홀로코스트를 연구하게 된 것은 그녀의 운명이었다. 어빙의 주장은 그녀의 눈을 의심케 하는 일들이었다.
 

영화의 주인공 데보라 립스타트 교수(1947-)

 
립스타트는 1993년 한권의 책을 낸다. 펭귄사가 출판한 <홀로코스트 부정>(Denying the Holocaust)이라는 책이다. 그녀는 이 책에서 어빙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어빙은 인종차별주의자이고 반유태주의자로서 홀로코스트에 관한 증거들을 의도적으로 왜곡해 그것을 부정했다는 것이다. 어빙은 이를 기다렸다는 듯 반격에 나선다. 립스타트가 강의하는 강의실에 찾아와 홀로코스트 증거를 내놓으라고 소리를 치며, 학생들에게는 증거를 가져오면 돈을 주겠다고 지폐를 흔든다. 어빙의 공격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립스타트가 역사가인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소송을 건다. 그것도 미국이 아닌 영국에서.
 
이렇게 해서 영국 사법사에서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Irving v. Penguin Books and Deborah Lipstadt 사건이 시작된다. 법정을 주 무대로 펼쳐지는 이 영화는 다큐 영화인지 극영화인지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세밀하다. 립스타트의 변호사(solicitor)는 안소니 줄리어스(배우 엔드루 스콧)는 프린스 다이아나의 이혼 사건을 대리한 유명 변호사, 펭귄사도 미디어법 전문 로펌을 대리인으로 선임한다. 여기에 미디어법 법정변호사로 유명한 리차드 램프턴(배우 톰 윌킨슨)이 결합하고 저명한 케임브릿지 대학 역사학 리차드 에반스 교수가 전문가로 동참한다. 영화에서 잠시 언급되지만 피고팀들은 이 사건을 프로보노 활동으로 맡은 모양이다. 그렇지만 변호사 비용을 제외해도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어가니 걱정이 안 될 수 없다. 300만불이 넘는 비용을 어떻게 할까. 립스타트를 돕는 펀드 레이징이 미국에서 벌어진 것 같다. 유태인들이 그 정도 돈을 부담하지 못할 리는 없지 않은가.
 
어빙이 영국에서 소송을 건 이유는 명백하다. 미국보다는 자신이 이길 확률이 크다는 확신 때문이다. 그것은 영국의 명예훼손에 관한 법률이 미국이나 다른 나라와는 다르다는 데서 기인한다. 일반적으로 명예훼손을 이유로 소송(손해배상 등)을 건다면 원고가 그것을 입증해야 한다. 즉 이 소송이 미국에서 진행되었다면 어빙은 홀로코스트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 히틀러의 관여가 없었다는 점, 자신은 인종차별주의자나 반유태주의자가 아니라는 점, 피고 립스타트의 주장(그녀의 저서 Denying Holocaust)으로 역사가인 자신의 명예가 실추되었다는 점 등을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영국에서 명예훼손 소송을 하면 입증책임이 피고에게 전환된다. 쉽게 말해 피고의 주장(립스타트가 어빙을 비난한 것)이 정당하다는 것을 피고가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명예훼손과 관련된 영국의 오래된 판례법이다. 립스타트는 홀로코스트가 존재한단는 점, 원고 어빙이 고의적으로 증거를 왜곡해 홀로코트스의 존재를 부정한다는 점, 어빙이 인종차별주의자이며 반유태주의자라는 점, 어빙은 역사가로서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점 등을 입증해야 한다. 홀로코스트가 존재한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어빙이 증거를 왜곡했다는 것과 인종차별주의자, 반유태주의자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만일 이것을 제대로 입증하지 못하면 자칫 피고는 명예훼손으로 어빙에게 손해배상을 해줘야 하며, 이것은 대중들에게 홀로코스트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알려질 가능성도 있다.
 
실로 심각한 일이다. 50년이란 시간은 아무리 생생한 역사적 사실도 부정당할 수 있다. 피해 생존자들이 있어 그들이 증인으로 나오겠다고 조르지만 변호사들의 생각은 다르다. 실제 피해자들이라고 해도 50년 전의 일을 완전하게 재현할 수 없다. 자칫 조그만 사실 하나를 잘못 말한 것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판명되면 증언자는 거짓말쟁이가 되고 생존자들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된다. 이것은 어빙으로선 악마가 준 선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변호사들은 법정에서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오로지 역사적 사실을 입증하고 인종차별자요 반유태주의자인 어빙의 실체를 알리는 데 주력한다.
 

법정을 나오는 피고 팀들(영화). 중앙이 주인공 데보라 립스타트, 왼쪽이 안소니 줄리어스, 오른쪽이 리차드 램프턴

 
영화를 보면 피고변호사들의 냉철한 소송전략에 립스타트는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그녀도 영국 변호사들의 직업정신에 신뢰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이 사건은 하루 아침에 끝나지 않는다. 기록을 찾아보니 어빙이 소장을 낸 지 4년이 지난 2000년 1월에서야 첫 재판이 시작된다. 소송 제기부터 첫 기일까지의 시간은 길지만 재판이 시작되니 그 뒤부터는 일사천리다. 우리의 소송절차와는 판이한 영국식 집중심리제도 덕이다. 첫 기일 이후 3개월 동안 무려 32회 변론이 진행된 것이다. 그리고 결심. 한 달 뒤인 2000년 4월 판결이 선고되었다. 피고 승!
 
이 사건의 판결문은 300쪽이 넘는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판결문 원문을 찾아보니 명불허전 영국 사법사에 길이 남을 명예훼손 판결문이다. 재판장(Justice Gray)은 판결문에서 아우슈비츠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유태인들이 가스실에서 학살되었고 그것은 히틀러가 알거나 승인하는 상황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인정했다. 또한 원고 어빙이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의도적으로 각종 증거를 왜곡했음을 인정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재판관의 노고가 큰 사건이다. 저런 판결문을 작성하려면 한 달 동안 모든 시간을 거기에 쏟아 부었어야 했을 텐데, 단독판사로서 그 일을 어떻게 했을까. 영국 법관들의 성실함과 직업정신에 박수를 보낸다. 한 가지 놓치지 말 것은 판결 선고 전에 언론사 기자들에게 재판관은 300쪽이 넘는 판결문 사본을 배포하는 장면. 아마 영국 법원의 관행인 모양이다. 주요 사건에서는 법정에서 꼭 구두로 선고해야 할 결론 부분만 공란으로 한 판결문 사본을 선고 직전에 배포하는 것인데, 우리의 현실(선고 후 상당 시간 지나서야 판결문을 볼 수 있다)을 생각하면 신선하다. 속보가 생명인 언론에서 판결문 사본을 선고 현장에서 입수할 수 있다면 정확한 보도가 가능하지 않을까.

Irving v. Penguin Books Ltd. (uniset.ca)
 

Irving v. Penguin Books Ltd.

 

uniset.ca

판결문 제13장 마지막 문단(13.167)

"...어빙은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이유로 지속적이고 고의적으로 역사적 증거를 왜곡하고 조작했다. 같은 이유로 그는 히틀러를 부당하게 호의적인 시각으로 묘사했는데, 주로 유대인에 대한 그의 태도와 그에 대한 책임과 관련하여 그는 적극적인 홀로코스트 부정론자이다. 그는 반유대주의자이며 인종 차별주의자이며 신나치즘을 조장하는 우익 극단주의자들과 어울린다...." ( ... Irving has for his own ideological reasons persistently and deliberately misrepresented and manipulated historical evidence; that for the same reasons he has portrayed Hitler in an unwarrantedly favourable light, principally in relation to his attitude towards and responsibility for the treatment of the Jews; that he is an active Holocaust denier; that he is anti-semitic and racist and that he associates with right wing extremists who promote neo-Nazism....)


이 영화는 영국 변호사들의 일상도 보여준다. 영국은 변호사가 사무변호사와 법정변호사로 분리되어 있는데, 현실적으로 어떻게 작동되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이 영화를 보면 그 의문이 많이 풀릴 것이다. 영미법의 배심재판에서 사법정의의 중심은 역시 법정이다. 그러니 배심원을 설득할 수 있는 유능한 법정변호사의 필요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법정변호사가 법정에서 완전한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선 그를 완벽하게 지원하는 법정 외 법률가가 필요하다. 그것이 사무변호사의 역할이다. 당사자를 처음 만나 사건의 실체를 확인해 법정으로 가기 전까지의 모든 일은 사무변호사가 담당한다.
 
이 영화에선 배심재판을 볼 수 없다. 이 사건은 배심재판이 아닌 벤치 트라이얼 곧 법관에 의한 재판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피고 변호사들의 주도면밀한 전략의 결과다. 피고 변호사들은 독설에 능하고 왜곡을 일삼는 원고의 책략에 배심원들이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에서 법관 재판을 유도한다. 다행스럽게도 원고가 이것에 동의 해주고 만다.
 
이 영화는 디테일 연기에 강한 영국 배우들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영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 보면 특정 직업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세밀함이 돋보인다. 의사 역을 맡은 배우는 실제 의사처럼 보이고, 변호사 역을 맡은 배우는 실제 변호사처럼 보인다. 이 영화에서는 피고의 법정변호사 리차드 램프톤 역을 맡은 톰 윌킨슨이 그렇다. 우리나라의 법정 영화에서 보기 드문 연기력이다. 우리나라 배우들의 역량도 빠지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순수한 배우의 역량이라기 보다는 영국 법률문화가 영화산업에 준 영향이라고도 보여진다.
 
설명이 없으면 그냥 놓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영미법의 증거절차인 디스커버리. 영화에 이 대목이 보일 때 법률가인 나로선 감회가 남달랐다. 피고 측의 젊은 변호사들이 어빙의 집으로 가서 그의 일기장을 점검하는 대목이 바로 그것이다. 피고 변호사들은 그의 기록에서 인종차별과 반유태주의의 흔적을 찾아내 이를 법정에서 유효하게 사용한다. 우리와 같은 절차에선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다. 상대가 가지고 있는 어떤 증거라도 접근할 수 있는 제도가 확보되지 않으면 저런 영화는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런던 왕립재판소(위키피디아)

 
이 영화의 주된 공간은 런던의 왕립재판소(Royal Court of Justice). 이곳도 눈여겨 볼만하다. 영국 사법제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영화는 재판소의 이곳저곳을 통해 비춰준다. 법정의 분위기도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법정에 들어오는 재판관과 법정변호사는 아직도 가발을 쓴다. 재판관이 자리에 앉기 전에 비서는 의자를 빼준다. 재판관이 방청객을 향해 꼿꼿이 서면 법정의 모든 사람은 재판관을 향해 목례를 한다. 서양 인사법에서 머리를 숙이는 예는 흔치 않은데 여기에선 예외다. 재판 과정을 지켜봐도 어디 하나 흐트러짐이 없다. 영국의 재판 모습은 한마디로 권위 그 자체다.
 

런던 왕립재판소의 중앙홀(위키피디아)

 
왕립재판소가 있는 건물은 19세기 말 빅토리아 여왕 시절에 런던의 여러 법원을 모아서 만든 통합 청사다. 영화의 재판은 이곳의 1심법원인 High Court(영화의 자막엔 이를 고등법원이라고 번역을 했지만 그것은 오역임)에서 진행된다. 왕립재판소는 내가 2016년 런던에 있을 때 몇 차례 방문한 곳이다. 영화가 내가 영국에 체류할 때 즈음 만들어졌으니 장면 하나하나가 내 기억과 정확히 일치한다. 영화에서 나오는 법원 중앙홀. 벽면엔 영국 사법사의 위대한 법률가들 초상화가 있다. 그 중 한 사람은 대형 조각상의 주인공도 있다. 누구일까? 블랙스톤(1723-1780)이다. 그는 재판관을 거쳐 옥스퍼드의 교수를 역임하면서 영국법을 학문화하는 데 공헌했다. 그가 쓴 영국법 코멘타리(Commentaries on the Laws of England)는 지금까지 영미 법률가들 사이에선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영국법의 경전이다.
 
(나의 런던 왕립재판소 방문기) 

 

영국이야기 14 위엄과 권위의 전당 Royal Court of Justice

영국이야기 14 위엄과 권위의 전당Royal Court of Justice 왕립재판소 입구 나는 변호사 시절 매일 같이 법정을 오갔다. 거기서 각종 송사를 경험하면서 법률가로서의 길을 걸었다. 그 시절 나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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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보니 길어졌다. 영화에 집중하지 못한 글이다. 런던의 왕립재판소에서 영국 법원의 권위와 전통을 목격한 기억이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내 기억용이니 크게 개의친 않는다. (2024. 5.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