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홀로코스트에서 언어를 발명하다-영화 ‘페르시안 레슨스’(페르시아어 수업)-

박찬운 교수 2024. 10. 1. 10:30

 

홀로코스트에서 언어를 발명하다

-영화 ‘페르시안 레슨스’(페르시아어 수업)-

 

 
이 영화는 관객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가? 영화를 보고 나서 한참 생각했다. 머릿속에 강렬한 여운이 남는 것을 보면 뭐가 있어도 단단히 있는 영화다. 다만 그것을 딱 집어내기가 어렵다.
 
나치의 만행 홀로코스트를 그린 영화는 많다. 쉰들러 리스트, 피아니스트... 모두 내 심경을 흔든 영화다. 공통점은 영화가 끝나면서 마음이 무거웠다는 것.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독가스실에서 죽어갈 때 마음이 편할 수가 있겠는가. 이 영화도 그랬다. 그렇지만 영화가 끝날 때 한 번 크게 웃었다. 비극 속에서 희극을 보았기 때문이다.
 
영화 페르시안 레슨스(Persian Lessons)는 4년 전(2000) 코비드 19가 전 세계를 강타할 때 개봉된 영화다. 이 영화는 독일 극작가 볼프강 콜하세의 실화 기반 소설 ‘언어의 발명’을 원작으로 우크라이나의 바딤 피얼만이 메카폰을 잡은 독일, 러시아, 벨라루스 합작영화다. 나로선 친숙하지 못한 제작 국가이니만큼 이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을 알 리가 없다. 주인공 질(영화 속에선 가짜 페르시아인 레자)을 연기한 나우엘 페레즈 비스카야트는 아르헨티나 출신이고, 코크 대위를 연기한 라르스 아이딩어는 독일 출신이라고 한다. 영화가 나온 시기가 팬데믹이 한참일 때이니 흥행은 쉽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작품성 측면에선 이제껏 보지 못한 홀로코스트 영화라는 평가를 받기에 부족하지 않다.
 
영화를 봐야겠다는 독자의 의욕을 꺾지 않는 선에서 간단히 스토리 라인을 살피면 이렇다. 1942년 벨기에 출신의 유태인 질은 다른 유태인과 함께 나치에 잡혀 수용소로 끌려간다. 트럭 안에서 질은 자신이 갖고 있던 샌드위치 한 개를 페르시아어로 써진 책 한 권과 바꾼다. 그 덕에 페르시아인 행세를 할 수 있었던 질은 즉결 처분되어 죽어가는 유태인 속에서 살아남는다. 수용소에 도착한 질은 페르시아어를 배우기 원하는 나치 장교 코크를 만나 페르시아어를 가르친다. 코크는 전쟁이 끝나면 테헤란으로 가서 식당을 여는 게 꿈인 사람. 질은 페르시아어를 단 한 마디도 못하지만 죽음을 모면하기 위해 페르시아인 행세를 하며 하루에 몇 단어씩 가짜 페르시아어를 만들어 코크를 가르친다. 문제는 순간적으로 가짜 페르시아어를 만들 수는 있지만 만든 단어를 외울 수가 없다는 것. 만일 그것을 외우지 못해 가짜 페르시아인이라는 것이 들통난다면 그날로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때 질에게 희망이 생긴다. 코크의 도움으로 수용소에 들어오는 유태인들 명부를 만들게 되는데, 그들 이름을 앞뒤로 잘라 가짜 페르시아어 단어를 만들면 외우기가 훨씬 쉬워진다는 것을 안 것이다. 이렇게 해서 거의 3천여 단어를 만들어 코크를 학습시키자 코크는 그 단어를 이용해 시까지 쓸 수 있는 수준에 이른다.
 
전쟁이 끝나고 연합군이 들어와 수용소 생존자를 조사하면서 질에게 묻는다. 수용소에 있었던 유태인들의 이름을 아는 대로 말하라고. 질은 유태인 명부를 보라고 했지만 조사관은 명부는 이미 나치가 모두 태워버렸다고 말한다. 이에 질은 눈물을 흘리며 기억하는 유태인들을 하나씩 거명한다. 무려 3천여 명을. 한 명 한 명의 이름이 가짜 페르시아 단어의 주인공들이다.
 
비극 속의 희극은 코크가 테헤란으로 가기 위해 도착한 공항에서 일어난다. 코크는 독일인 신분을 숨기고 탑승을 위해 줄을 서서 조사하는 관리로부터 질문을 받는다. 바로 이 순간을 위해 2년간 페르시아어를 배운 것이다. 그런데 그의 유창한 페르시아어를 관리들이 알아듣질 못하고, 오히려 코크를 체포하고 만다. 이 장면에서 관객은 웃을 수밖에 없다. 2년간 배운 언어가 지구상에서 오로지 둘만 아는 언어였다니!
 
이 영화를 보면서 무엇보다 인간의 강한 생존 욕망을 느꼈다.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어처구니 없게 죽어가고 있다. 그렇지만 내 생명만은 어느 순간에도 버릴 수 없다. 어떻게 해서라도 지켜야 하는 것이 내 생명이다. 거기에 무슨 지고한 이유가 있을까. 그 원초적 욕망을 지키는 것에 체면이나 가식이 있을 수 없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수천 개의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외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 물릴 수 없는 한판 싸움을 할 때 기적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 영화의 본래적 의도는 아니겠지만 원작 소설명대로 언어가 발명되는 과정은 이 영화를 보는 또 다른 묘미다. 비록 주인공은 살기 위해 가짜 페르시아어를 만들어가지만 실제 언어도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사물을 가리키는 지시어가, 다음에는 감정을 뜻하는 또 다른 지시어가 탄생하고, 시간이 지나면 추상어인 개념어가 탄생한다. 우리의 언어 생활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머릿속에 지시어가 차곡차곡 쌓이면 어느 순간부터 여러 단어가 교배되어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어가 탄생한다. 사람이 언어를 만들었지만 사람은 언어로 생각하니 사람의 성장은 언어의 성장이기도 하다.
 
만일 이 영화가 실화를 배경으로 한 것이 맞다면 질은 분명 언어학자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 처절한 죽음 앞에서도 언어가 발명되는 희열을 맛보았다. 자신이 수천 개 단어로 이루어진 언어를 창조하고, 코크가 그것을 익혀 시를 써 읽는 것을 보았을 때, 한순간이지만 질은 악마가 인도하는 죽음의 길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2024. 10.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