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따뜻하고 용감한 벗, 내툰나잉, 우리 곁을 떠나다
오늘 저녁 부천 석왕사에서는 한 외국인의 추모행사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 내툰나잉. 난민이자 버마의 민주투사입니다.
그는 아웅산 수지 여사가 이끄는 NLD 한국 지부를 이끌었습니다. 2000년대 초 그는 NLD 친구들과 함께 난민신청을 했습니다. 당시 한국엔 난민으로 인정받은 외국인이 10명도 채 안 되었을 때입니다.
저는 당시 민변에서 난민지원활동을 하면서 그와 그의 친구들을 도왔습니다. 이들은 민변의 지원 아래 난민으로 인정받음으로써 불법체류자의 지위를 벗어났습니다.
그와 그의 친구들은 지난 십 수년간 한국에서 조국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 아시아 각국의 민주운동가들과 연대하며, 싸웠습니다. 이제 버마가 민주화되어 가면서 곧 귀국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지난 9월 4일 갑자기 세상을 떴습니다.
난민 문제가 세계적 화두가 된 이 때, 내툰나잉의 황망한 죽음은 그를 아끼는 사람들 모두에게 큰 슬픔을 주었습니다.
오늘 저는 행사에서 그와의 인연을 이야기하며 그를 추모했습니다. 그 추모사를 아래에 싣습니다.
내 친구 내툰나잉의 극락왕생을 기도합니다.
.....
내 친구 내툰나잉!
내툰나잉! 이 낯선 이름이 제 삶의 한 가운데로 들어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입니다. 버마 친구들이 한국에서 NLD 지부를 결성하고 난민신청을 하였을 때 우리는 운명적으로 만났습니다. 저는 당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난민지원을 시작한 변호사였습니다. 내툰나잉과 그의 친구들은 제게 두 번째로 찾아온 난민친구들이었습니다.
내툰나잉! 그는 제게 버마와 미얀마의 차이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버마의 민주화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버마의 젊은이들이 머나 먼 이곳 대한민국에 온 이유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제 머리 속에 있는 버마는 모두가 그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내툰나잉! 우리는 자주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밝은 미소를 나누는 친구였고, 마음이 통하는 친구였습니다. 저는 그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었습니다. 언젠가 고국으로 돌아가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만나, 버마의 내일을 위해 일하길 빌었습니다.
내툰나잉! 얼마 전이었지요. 우연히 2호선 건국대역에서 만났습니다. 밝은 미소로 곧 고국에 들어갈 것이라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여자 친구가 기다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 또한 언젠가 한 번 가겠다고 했지요. 우리는 버마의 이곳저곳, 특히 불교성지 바간을 함께 여행하자고 약속했습니다.
내툰나잉! 어찌 벌써 갔습니까? 무엇이 그리도 바빠 이렇게 황급히 갔습니까? 당신의 미소 뒤에 숨어 있었던 아픔을 보지 못해 미안합니다. 당신을 조금이라도 자주 보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저의 나태함을 후회합니다. 부디, 극락왕생하십시오. 당신은 그럴만한 충분한 자격을 갖춘 사람입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변호사, 전 민변 난민지원위원회 위원장)
(2015.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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