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중앙아시아를 가다

중앙아시아를 가다(2)-돌 하나에서 실크로드의 옛 영화를 보다, 타슈켄트에서의 감상-

박찬운 교수 2024. 8. 9. 09:42

중앙아시아에 가다(2)

-돌 하나에서 실크로드의 옛 영화를 보다, 타슈켄트에서의 감상-

 
 

타슈켄트 아미르 티무르 광장 티무르 동상 앞에서 필자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 실크로드 역사에서 사마르칸트와는 그 중요도에 있어 비할 수는 없지만 이 도시가 동서문명 교류의 거점도시 중 하나였던 것만은 확실하다. 이 도시는 실크로드 역사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천산 산맥의 서쪽 끝에 위치하기 때문에 현재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 국경에서 멀지 않다. 타슈켄트는 우즈베키스탄 역사에서 2천 년이 넘는 도시로서, 8세기 이후 이슬람화되었고, 13세기 초 징키스칸에 의해 파괴되었다. 그후 여러 한국(Khanate)에 의해 지배되다가,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지배를 받게 된다. 러시아 혁명 이후 타슈켄트는 소련 중앙정부의 정책에 따라, 중앙아시아의 거점도시로 급속하게 성장돼, 소연방 전체에서 4번째 큰 도시가 되었다. 타슈켄트는 1991년 소연방에서 독립한 우즈베키스탄의 수도가 되었으며 현재 인구 3백만의 중앙아시아 최대도시이다.
 

타슈켄트는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의 국경에서 멀지 않다. 위의 붉은 표시만 보아도 과거 실크로드 선상에서 타슈켄트의 위상을 알 수 있다.

 
중국 실크로드 역사에서 타슈켄트에 대한 언급은 현장의 대당서역기에 나오는바, 그는 이곳을 Zhěshí 赭時 라고 소개한다. 현장은 서기 628년 어느 날 이식쿨을 거쳐 남하하면서 타슈켄트를 지났을 것이다. 그만큼 타슈켄트의 동서 교류의 역사는 길고 깊다. 하지만 내 눈에, 아닌 다른 분들의 기행기에 의하더라도, 이 도시에서 동서교류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유적지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아마도 지난 수 세기 동안 이곳에 많은 변화가 있다 보니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특히 1966년의 대지진은 타슈켄트의 중요 건축물 대부분이 파괴되는 피해를 보았으니, 이곳에 와서 실크로드의 흔적을 찾기는 난망한 일이다.
 

이맘 하즈라티 광장

 
이럴 때 할 수 있는 것이 역사적 상상이다. 실크로드 기행에서 필수적인 것이 상상력을 통한 과거로의 여행이다. 돌 하나를 보고 천 년 전 아니 2천 년 전의 궁전을 상상하고 지도상의 한 점에서 그 지역의 파노라마 뷰를 떠올릴 수 있다면 매우 신나는 여행이 될 수 있다. 그런 방식으로 본다면 타슈켄트는 너무나 말할 것이 많은 도시다. 북방의 도시로는 알마티비슈케크가 있고 남쪽으로는 사마르칸트가 있다. 수십 마리의 낙타와 말을 동원한 대상들이 하루에도 수 없이 성문을 들락날락하고, 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주변 모스크에서는 몇 시간에 한 번씩 아잔 소리가 도시 전체에 울려퍼지고 그 때마다 상인들은 메카 방향으로 절을 하며 안전한 여정을 기도한다.
 

이맘 하즈라티 모스크
이맘 하즈라티 모스크
이맘 하즈라티 모스크 내부의 홀. 장방형의 홀은 긴쪽이 약 80미터나 된다. 밖은 35도 이상의 고온이지만 이곳에 들어오는 순간 서늘하다. 건조한 기후라 그늘에만 가면 시원하다. 기도하는 곳이지만 쉬는 곳이기도 하다. 홀 이곳저곳에서 누워 있는 사람이 있다.

 
비록 지진 등으로  인해 남아 있는 고 건축물이 없지만 복원된 모스크는 곳곳에 산재해 있다. 거기서 실크로드 도시 타슈켄트를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더욱 우리가 방문한 이맘 하즈라티 콤플렉스는 티무르 제국 이후 만들어진 중앙아시아 이슬람의 상징적 장소(聖都 성도)이다. 이곳은 몇 개의 마드라스와 모스크가 모여 있는 곳으로 중앙에는 큰 광장이 있다. 특히 바라칸 마드라사에는 이슬람교 경전의 유일한 정본이라고 하는 오스만 본이 보관되어 있다. 이번 탐방에서 그것을 직접 보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그래도 그 사본을 사마르칸트(비비하눔)에서 본 것은 다행이었다. 이 코란은 7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메디나, 바그다드, 다마스쿠스에서 보관하다가, 티무르가 이라크를 정복하면서 사마르칸트로 오게 된다. 사마르칸트에 온 코란은 우리가 방문했던 비비하눔에서 보관되다가 러시아 혁명 후 상테스부르크로 옮겨졌고 우즈베키스탄이 구 소련으로부터 독립하기 직전인 1989년 현재의 바라칸 마드라사의 도서관에 보관된 것이다.
 

바라칸 마드라사.이곳 도서관에 그 유명한 코란 오스만 본이 소장되어 있다.

 

사마라칸트 비비하눔의 중정에 전시된 오스만본 코란 전시대(함께 여행한 최태현 교수 촬영)


수백 년 역사를 가진 모스크만 보다가 이곳에선 최신의 모스크도 볼 수 있다. 하즈라티 이맘 모스크인데, 2007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카리모프의 주도로 만들어진 모스크이다.
 

타슈켄트 지하철
지하철 플랫폼 벽면에는 우즈베키스탄 국민작가의 작품이 부조로 그려져 있다.
유리 가가린 등 소련 시절 소련의 우주항공 발전에 기여한 이들이 부조로 그려져 있다.
플랫폼 벽면에 유리 가가린의 얼굴이 부조로 그려져 있다.

 
타슈켄트가 구 소련 시절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잘 나가는 도시였다는 것은 여기저기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게 중앙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개통된 지하철이다. 역사에 들어가면 많이 낡았지만 과거의 영화를 느끼기엔 부족하지 않다. 한 역사 플랫폼엔 우즈베키스탄의 국민 작가의 작품이 부조로 새겨져 있고, 다른 역사에는 소련 최초의 우주인인 유리 가가린과 관련된 부조가 새겨져 있다. 1991년 이후 독립 이후엔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급속히 변모하고 있다. 급속한 경제 성장의 대가라 생각한다. 저녁 식사를 하고 도심 공원에 나가보니 불야성이다. 30층 이상의 고층빌딩이 즐비하고 중앙의 인공호수에선 분수쇼가 요란하다. 마치 라스베가스 벨라지오 호텔 앞에서 분수쇼를 보는 것 같다. 한국 관광객에게는 유난히 호감을 갖는 게 우즈베키스탄인이라고 하는데, 많은 현지인들이 한국 관광객을 보면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한다. 분수쇼의 테마곡이 흘러나오는데,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다.
 

타슈켄트 도심의 밤 풍경
도심의 힐튼 호텔
타슈켄트 도심부가 저렇게 된 것은 불과 지난 몇 년 사이라고 한다. 경제성장이 무서울 정도로 빠르다.
도심공원 내의 호수와 분수쇼

 
우즈베키스탄은 1991년 독립 이후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처럼 민족적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러시아적 요소를 제거하고 있다. 소련 시절 도시 한 가운데를 장식하고 있었던 레닌 동상은 사라지고 민족 영웅 티무르 대제의 동상으로 대체되었다. 사마르칸트에서는 도시 한 가운데에 티무르가 앉아 있었는데, 타슈켄트에선 말을 타고 있다. 언뜻 보아도 그 용맹함에 피가 끓는다. 앞으로 다시는 타국의 지배를 받지 않겠다는 우즈베키스탄인의 결의를 저렇게 표현했으리라.
 

타슈켄트 중심에 있는 아미르 티무르 광장의 티무르 동상, 1991년 독립 이전에는 여기에 레닌 동상이 있었다.
고려인 강제이주 경로(고려인이주15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타슈켄트를 돌아볼 때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우리 민족의 고난사이다. 1937년 스탈린은 극동지방에 사는 조선인, 곧 고려인 17만 명을 일시에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그 중 7만 명이 이곳 우즈베키스탄으로 이주되었고, 타슈켄트는 그들 중 가장 많은 이들이 이주한 곳이다. 일본의 간첩활동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하나, 고려인들이 당한 고초는 필설로 설명할 수 없다. 그들 중 수 백 명이 이곳으로 오는 기차 속에서 죽었다. 불결한 기차 안에서 먹을 것도 없이 주야장창 30일 이상을 왔다니 상상이 안가는 상황이다. 그들은 이곳에 도착해 집도 절도 없는 극한상황에서 토굴 생활을 하면서 황량한 중앙아시아를 일구었다. 타슈켄트 식당에서 쌀밥을 먹으면서 그들 덕에 이런 밥을 먹는다 생각하니 잠시 눈에 이슬이 맺혔다. (2024. 8. 8.)